[스토리 발리볼] 대한항공 34세 틸리카이넨 감독 영입 막전막후

입력 2021-05-06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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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대한항공에 첫 통합우승을 안긴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이 출국했다.

사흘 뒤인 4일 대한항공은 새 외국인감독으로 34세 핀란드 국적의 토미 틸리카이넨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준비된 각본처럼 착착 일을 진행시킨 대한항공은 시즌 막판부터 조용하면서도 은밀하게 새로운 외국인감독을 선임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해왔다.

1년 전. 대한항공은 V리그 남자배구 팀 최초의 외국인감독을 선임하면서 산틸리와 1년 계약을 했다. 서로의 신뢰관계가 있어서 계약기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외국인선수는 팀과 맞지 않거나 기량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지만 감독은 다르다. 시즌 도중에 쉽게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도 없고 바꾸기도 쉽지 않다. 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검증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구단 관계자는 1년 계약의 배경을 설명했다. 합의는 어렵지 않았다.


산틸리 감독은 대한항공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선입견 없이 모든 선수를 원점에 놓고 파악했다. 주전 비주전을 가리지 않고 실전위주의 훈련을 통해 다양하게 기용한 결과, 대한항공은 시즌 내내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한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긴 시즌 도중에 간간이 불협화음도 들렸다. 각자가 해온 방식과 문화적 차이가 만든 해프닝은 결국 해피 엔딩이 됐다. 서로가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했고 구단이 중간에서 조율을 했다. 또 통합우승이라는 좋은 결과가 나쁜 기억을 덮었다. 산틸리 감독으로서는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최고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껏 해본 뒤 두둑한 우승보너스를 받고 터키리그의 팀과 새 계약까지 맺었다.

후임 감독을 찾던 대한항공의 레이더에 들어온 후보는 총 5명.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는 3명과 일본에서 뛰는 2명이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유럽리그의 후보자들은 미적거렸다. 이런 가운데 나고야 울프독스에서 4년째인 틸리카이넨 감독이 계약을 끝낸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대한항공은 다양한 경로로 접촉했다. 한때 폴란드 대표팀 감독행이 유력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일본 지사를 통해 감독의 성향과 능력을 직접 확인했다.



본격적인 접촉을 시작했다. 오겠다는 의사는 확인했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계약 협상에 들어가려고 하자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직 V리그의 시즌이 종료되지 않았는데 지금 계약 얘기를 하면 현직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면서 미루자고 했다. 챔피언결정전이 끝날 때까지 대한항공은 기다렸다. 영입발표도 “산틸리 감독이 출국한 뒤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4일까지 기다렸다. 협상과정에서 그의 매력을 많이 확인했다. 주관과 배구철학이 확실했고 똑 부러지게 얘기했다. 34세의 나이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23세에 코치생활을 시작해 25세에 핀란드 국가대표팀 감독, 일본 V리그에서 4년을 경험하는 등 초보 감독은 아니었다.

“선수는 선수답게 감독은 감독으로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프로답게 할 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구단에 말했다. 구단은 2년 계약을 제시했다. 정점에 있는 선수단과 계약기간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달라는 당부를 했다. 감독은 그런 부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4일 끝난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때도 그는 선정의 기준이 확실했다. 저 선수가 “파워가 있다”거나 “잘 하게 보인다”는 접근방식이 아니었다. “외국인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공격의 효율성, 인성, 안정성과 꾸준함”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 기준으로 뽑은 것이 호주의 링컨 윌리엄스였다. 일본 V리그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일찍 끝나자 여유시간을 이용해 대한항공과의 모든 경기를 봤다는 틸리카이넨 감독은 현재 핀란드에서 한국행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그 과정이 끝나면 10일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와서 선수들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구단관계자는 얘기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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