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경고신호가 들어온 한국배구가 선택할 길은

입력 2021-07-14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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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배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알고 싶으면 대한배구협회(KVA)의 등록현황을 보면 된다. 5월14일 기준으로 발표한 등록선수 현황에 따르면 13세 이하(초등학교)~16세 이하(중학교)~19세 이하(고등학교)~대학교 등록선수는 각각 366명, 375명, 324명, 200명이다.

여기에 103명의 실업선수, 132명의 프로선수가 있다. 여자는 295명, 241명, 186명, 62명의 초중고대학 선수와 45명의 실업선수, 107명의 프로선수가 있다.

이들이 소속된 남자부 초중고대학 팀은 각각 35개, 28개, 24개, 14개다. 여기서 나온 선수들이 9개의 실업, 7개의 프로팀으로 간다. 여자는 남자보다 적은 28개, 21개, 17개, 4개의 초중고대학 팀이 있다. 실업은 5개, 프로는 이번에 페퍼저축은행이 창단해 7개 팀이 됐다.



초등학교는 주로 4~6학년으로 선수가 구성됐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한국배구가 가진 선수공급 인프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해마다 100명 정도의 남녀 배구 꿈나무들이 성장해서 프로팀과 국가대표팀으로 가는 구조다. 이런 척박한 텃밭을 가지고도 여자배구는 올림픽본선에 3회 연속 진출하고 메달까지 꿈꾼다. 물론 비정상이 오래갈 수는 없다. 갈수록 줄어드는 결혼 숫자와 떨어지는 출산율을 감안한다면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유소년 꿈나무를 발굴하고 키워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말은 하지만 없는 사람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다.

사실 다른 나라의 프로리그는 유소년 선수 숫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리그가 필요한 선수를 선택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유소년 선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유독 대한민국만은 예외다. 그래서 프로리그가 유소년 리그까지 걱정하고 좋은 텃밭을 유지하기 위해 지원도 해왔다. 하지만 유소년배구 육성에 들인 투자에 비해 효과는 턱없이 적었다. 그 과정에서 지원금이 투명하게 사용됐는지 의문도 들지만 하여튼 프로구단에서는 투자에 점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좋은 선수공급마저 계속 줄어들어 리그의 경쟁력이 위태로워지면 프로구단은 다른 선택지를 찾아봐야 한다.

프로구단들의 이익단체인 V리그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장기계약을 맺은 방송중계권과 타이틀스폰서 등을 감안한다면 선택할 방법은 많다. 사실 좋은 토종선수가 꾸준히 공급되지 않아도 해결책은 있다. 팀당 1명으로 제한된 외국인선수 출전의 빗장을 열면 된다. 지금 몇몇 남자구단에서 그 얘기가 슬슬 나오고 있다. 아직은 구단마다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공통의 이익이 된다면 의견통일은 어렵지 않다. 오래 전 이탈리아리그 여자배구도 이 방법을 썼다. 각 팀이 무제한으로 외국선수를 영입한 효과는 컸다. 우선 팬들의 반응이 좋았다. 시즌마다 우승팀이 달라지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후 순차적으로 제한을 두긴 했지만 경쟁력 있는 외국인선수 카드는 리그의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 전단계로 사용 가능한 것이 아시아쿼터다. 지금은 팬들이 국내선수를 육성하고 2군부터 운영하라고 외치지만 구단은 적은 돈을 들여서 효과가 좋은 방법을 원한다. 여기에 구단이 외국인 꿈나무선수를 자체적으로 육성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은 신인드래프트 규정에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것만 빼면 일은 쉬워진다. 각 구단이 자체 육성한 외국혈통 선수의 권리만 서로 보호해주기로 약속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미 몇몇 고교 대학에서는 이 방법을 쓰고 있다.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몽골 국적의 선수들이 지금 학교배구에 많이 있다. 이들이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받는 학교지원금이 쏠쏠하기에 이를 노리고 영입을 추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줄 돈이라면 차라리 우리가 직접 하겠다고 구단이 나서는 순간 판은 순식간에 뒤집어 질 것이다.

싫건 좋건 변화는 필연적이다. 단지 우수한 선수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 그 변화를 가속화할 뿐이다. 그게 싫다면 아마추어 지도자들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의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성공사례도 많다. 소수의 유소년들을 선발해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이 그 것이다. 여자배구의 신흥강국이 된 태국은 이 방법으로 국제대회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일본도 최근 이 방법을 택해 청소년대회 우승과 VNL 4강의 결과를 냈다. 선택은 배구인과 구단의 몫이다. 굳이 토종선수라서 보호해주고 좋은 대접을 해줘야할 이유는 갈수록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토종 선수들이 갖춰야할 경쟁력이 무엇인지 유소년 지도자들도 잘 생각해봤으면 한다. 요즘 학생배구를 보면 기본기는 없고 오직 경기에 이기기 위한 요령과 방법만 할 줄 아는 선수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프로팀은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를 더 원한다. 많은 선수들이 프로에 지명 받아도 일찍 도태되는 이유는 기본기 부족 때문이다. 학교배구와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빨리 찾아올 수 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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