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가뜩이나 어깨 무거운 배구 여제, 정치까지 묻히지 맙시다

입력 2021-08-11 12: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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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17세였던 2005년부터 16년의 태극마크. 인생의 절반을 국가대표로 보냈다. 그간 한국 배구의 상징으로 수없이 많은 명장면을 연출해냈다. 이미 무거울 대로 무거웠던 배구 여제 김연경(33·상하이)의 어깨. 여기에 정치 등 배구 외적인 짐을 더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2020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메달 이상의 감동을 느꼈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박정아, 김희진 등 주축 선수들 향한 뜨거운 박수가 아직까지도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8일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우리의 자랑 열두 선수의 이름을 국민과 함께 불러주고 싶다. 특히 김연경 선수에게 각별한 격려의 말을 전한다”며 축전을 보냈다.


이 축전은 9일 대표팀 귀국현장에서 논란이 됐다.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유애자 대한배구협회 홍보부위원장은 김연경에게 포상금 액수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고, 문 대통령과 대한배구협회장 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거듭 얘기했다.


팬들이 단단히 뿔나는 것도 당연했다. 여자배구가 이룬 성과와 무관한 정치권에서 숟가락을 얹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특히 그간 여자배구를 향한 아쉬운 지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뒤 김치찌개 회식이라는 촌극이 벌어졌으며, 2017년 그랑프리 땐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와 이코노미 반반 배정하기도 했다. 남자배구가 전석 비즈니스였으니 비교가 선명했다.


김연경은 언제나 후배들 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총대를 멨다. SNS에 샐러리캡 제도 개선 등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선수 입장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여자배구가 지금 단계에 오른 덴 김연경이라는 존재와 영향력의 지분이 상당하다. 김연경이 대표팀 은퇴를 선뜻 못 박지 않는 것도 결국 책임감 때문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정재계가 스포츠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면, 적어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지원을 보내는 게 먼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안산을 비롯한 양궁 대표팀에 격려와 위로를 건넸을 때 긍정 여론이 다수였던 것도, 그간 정 회장이 양궁에 쏟은 투자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내내 배구를 많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셨기에 4강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김연경의 귀국 인터뷰 첫 답변이었다. 김연경이 지금 가장 감사한 대상은 열렬한 응원을 보낸 배구 팬, 국민들이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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