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거실에서 낭만을 펼치다…유시연의 테마 콘서트 XVI [공연리뷰]

입력 2021-10-15 2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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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테마 콘서트는 언제나 설렘과 기대감을 선사한다. 더구나 그 기대가 충만함과 기쁨으로 어김없이 관객의 내면을 채운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2002년부터 시작된 테마 콘서트를 통해 유시연은 클래식음악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클래식음악에 다가가려는 일반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흔히 보이는 연주의 눈높이를 낮춘 음악회가 아니었다. 클래식음악의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관객의 감성을 끌어낸 정교한 기획력의 산실이었다.

2021년 10월 7일, 16번째 테마 콘서트 ‘슈만의 거실에서’가 실제로 슈만의 거실에서 펼쳐졌다. 처음으로 공감각적 연출을 시도한 이번 공연에서 해설과 영상은 음악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매체였다.

사실 클래식음악은 소리가 만들어내는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주회에서 등장한 해설과 영상은 음악을 뛰어 넘어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관객은 19세기 낭만주의 시기 슈만의 거실에서 음악가들이 실제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작곡가와 동시대인으로 동행했다.

관객은 6개의 곡이 연주되기 전에 매번 작품이 지닌 의미를 유시연의 차분한 해설로 들을 수 있었다. 무대 전체를 휘감은 각각의 영상은 때로는 처연하고, 때로는 찬란하고, 때로는 장엄한 파노라마를 구현했다. 나아가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지극히 섬세하고 예리한 감성이 피아니스트 박수진과 긴밀히 호흡을 맞춘 후 그 다채로운 낭만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관객에게 한 단어로 메시지가 전달됐다.



행복, 사랑, 위로, 추억, 회상, 꿈, 판타지. 즉 클래식음악이 들려주는 낭만, 그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낭만, 그 낭만이 언어로 규정되는 세 갈래의 공감각적 구성이 동시에 존재한 것이다. 이 모든 구성은 관객과 함께 느끼고자 의도한 유시연의 감성이 낭만의 정서와 일치해 나온 결과였다.

일례로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한 브람스, 이 세 음악가의 만남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를 시작으로 슈만 부부의 로망스를 거쳐 슈만의 피아노 4중주로 마무리되는 레퍼토리는 세 음악가의 사랑과 우정, 슬픔과 기쁨의 순간을 서로 다른 색깔로 표현한 낭만 그 자체다.

첫 곡 브람스의 스케르초(F.A.E.소나타)를 한 번 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 피아니스트 클라라의 반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찬란한 장면인가! 창문 밖에는 건물이 보이고 벽에는 슈만의 초상화와 클라라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고풍스런 벽걸이 시계, 의자, 화분, 테이블은 낭만시기 슈만의 거실에 앉아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참으로 정교하게 세팅돼 있다.

이어진 곡 ‘헌정’이 연분홍 벚꽃이 흩날리는 사랑의 낭만을 보여주었다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선사한 슈만의 ‘로망스’는 눈 내리는 고요한 달밤 아래 낭만과 사랑을 추억하는 곡이었다.

특히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1번은 연주자들의 탁월한 음악성을 바탕으로 음악회의 하이라이트이자 낭만의 절정으로 표출됐다. 3악장에서 무한한 사랑을 품은 대자연의 세계, 4악장에서 강렬한 울림이 우주의 별빛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신비로운 영상은 진정 낭만이 신비로운 판타지임을 상상하도록 이끌었다.

이렇듯 슈만의 거실에 참석한 관객은 슈만과 브람스 음악을 공감각적으로 체험하며 낭만이 무엇인지, 그들의 음악이 왜 낭만적으로 다가오는지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음악을 통해 감동을 받고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클래식음악의 본질을 지키면서 참신한 시도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시도한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열정이 돋보였다. 그렇기에 이번 공연은 지금까지의 테마 콘서트 여정에서 미래지향적인 행보를 내딛는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다.

오지희(클래식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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