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형 자취 따라” 육성선수→리더 신화, LG 문화 완성한다 [스토리 베이스볼]

입력 2021-12-23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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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지명에 실패해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100층쯤 되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누군가가 50층 안팎에서 유리하게 시작한다면, 육성선수들은 맨 아래 계단부터 밟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바닥부터 캡틴까지 오른 신화의 주인공 둘이 LG 트윈스에서 만난다. 김현수(33)의 발자취를 따라 성장한 박해민(31)의 쌍둥이 군단 합류. 이들은 LG 문화를 집대성할 적임자들이다.

닮은꼴, 육성선수 출신의 리더

2022시즌 LG 외야는 김현수~박해민~홍창기로 꾸려질 전망이다. LG는 외부 프리에이전트(FA)로 박해민을 데려온 데 이어 ‘팀 리더’ 김현수까지 눌러 앉히는 데 성공했다. 향후 4년간 둘의 FA 보장액만 146억 원(김현수 90억+박해민 56억)에 달할 만큼 대형 계약의 연속이었다.

구단이 FA를 잡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량이 좋은 선수를 데려와 팀 성적을 올린다는 대명제가 우선이다. 여기에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까지 해줄 수 있는 카드라면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2021시즌 LG와 삼성 라이온즈의 주장을 각각 역임했던 김현수와 박해민은 그 증거다. 기량은 물론 팀 문화를 구축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인성과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다.

신일고 2년 선후배인 둘에게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2021년 주장이었다는 사실 외에도 육성선수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는 점까지 닮아있다. 김현수는 신일고를 졸업한 2006년 두산 베어스, 박해민은 한양대를 졸업한 2012년 삼성에 육성선수로 합류했다.

프로의 출발점은 늦었지만 만개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현수는 데뷔 첫해 1경기, 2년차에 99경기 출장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렸고, 3년차인 2008년 타격왕(0.357)에 오르며 정상을 밟았다. 박해민 역시 2년차인 2013년 1군 데뷔전을 치렀고, 2014년 119경기에서 타율 0.297, 65득점, 36도루를 기록하며 3년 만에 팀의 주축으로 우뚝 섰다.

신일고 출신에 육성선수 입단, 3년차쯤부터 만개한 외야수. 여기에 리더십이라는 공통점까지 더해진다. 김현수는 FA 2년차였던 2019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LG 주장을 맡았다. 류지현 LG 감독은 올 시즌 내내 “김현수는 우리 팀 문화를 새로 구축하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해민도 마찬가지. 손가락 인대가 파열돼 수술 소견을 받았음에도 이를 악물고 2주 만에 1군에 복귀했다. 후배들은 야구는 물론 개인적 고민이 있을 때도 박해민을 찾았다. 삼성 관계자들이 박해민의 FA 이적을 아쉬워한 것은, 단순히 기량을 갖춘 중견수 한 명의 이적보다 더 큰 공백을 느꼈기 때문이다.

발자취 따르던 후배, 자신 따르는 후배들 만들 차례

박해민은 올 여름 2020도쿄올림픽에서 ‘김현수 예찬’에 한창이었다. “배구에 김연경이 있다면 야구엔 (김)현수 형이 있다. 내가 뭘 할 필요 없이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신다”는 말에는 존경심 이상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박해민은 LG 이적이 결정된 당일(14일)에도 스포츠동아와 통화에서 한 가지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구단에서 (김)현수 형을 잡아주셨으면 좋겠다. 워낙 좋아하는 선수다. 사실 ‘현수 형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야구를 했다. 나보다 실력은 월등히 좋지만 육성선수로 시작해 가는 길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많이 보고 배우고 싶었다. 현수 형도 FA라 여러 생각이 있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앞으로 같이 야구하고 싶다.”

당시만 해도 김현수의 계약이 발표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적 첫 날 자신의 각오를 밝히기에도 바빴을 박해민이지만, 신중하면서도 진지했다. 김현수의 계약이 발표됐을 때(17일) 박해민이 누구보다 기뻐한 이유다.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해서 졸업도 1등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가 김현수고 박해민이다. 후배들에게 ‘내가 지금은 바닥이어도 열심히, 잘한다면 올라갈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의 값어치는 상당하다. 육성선수 신화의 두 명은 이제 LG에서 제2의 김현수, 제2의 박해민을 만들 차례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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