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연예계를 빛낸 ‘언니들의 힘’

입력 2021-12-3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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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종영한 엠넷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에서 우승을 차지한 홀리뱅. 이들은 방송을 통해 특유의 카리스마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10대부터 40∼50대까지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사진제공|클래스101

차가운 현실 위로한 할머니 윤여정
세상과 맞짱뜬 ‘원 더 우먼’ 이하늬
가상과 현실 넘나든 걸그룹 ‘에스파’
춤꾼들의 치열한 삶 ‘스우파’‘스걸파’
‘언니들이 다했다!’

70대 노장 윤여정부터 걸그룹 에스파까지…. 아니, 화제 속에 시청자를 만나고 있는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까지. 빛나는 여성 스타와 캐릭터가 한 해를 꽉꽉 채웠다.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젠더 이슈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골을 메우려 땀 흘려 뛴 이들이야말로 대중의 아픔을 위로하는, 진정한 의미의 ‘스타’라 불릴 만하다.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고 끝 간 데 보이지 않을 만큼 벌어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건 2022년 또다시 새롭게 등장할 여성 스타와 캐릭터가 현실이라는 땅 위에 두 발 탄탄히 딛고 서는 까닭이다.


● 차가운 현실을 위로하고 풍자하다

“원더풀(Wonderful), 원더풀이란다.”

시작은 ‘할머니’ 윤여정이 건넨 따스한 위로의 손길이었다. 미국영화 ‘미나리’에서 1980년대 척박한 미국 이민생활에 지쳐가는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하든. 김치에 넣어 먹고, 찌개에 넣어 먹고”라며 미나리에 빗댄 위무의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풍상의 긴 세월을 견뎌 살아온 경험치로 할머니는 능히 그럴 힘을 지녔고, 전 세계는 캐릭터의 매력에 푹 빠져들며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으로 보답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상을 더욱 살아갈 만한 공간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힘도 이들에게 있었다. SBS 드라마 ‘원 더 우먼’의 검사 이하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의 한소희 등이 그랬다. 비리 재벌가의 범죄를 징벌하고, 마약조직의 어둠을 파헤치는 복수의 힘으로 이들은 세상을 향해 달려 나아갔다.

그렇다고 여성들의 시각이 늘 진중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티빙의 화제작 ‘술꾼도시여자들’의 이선빈·한선화·정은지, 스물아홉 세 여성은 갖은 사회적 편견과 폭력을 낄낄거리며 한바탕 푸지게 풍자했다. 찰진 욕설과 대사는 현실감을 더했고, 세 여성의 모습은 또래들의 공감 속에 차가운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게 했다.


● 열정적인 그들

‘트렌드 세터’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룹 에스파(aespa)는 이른바 ‘케이팝 4세대 스타’의 맨 앞줄에 서서 감각적인 유행의 물결을 이끌었다. 멤버 카리나·윈터·지젤·닝닝은 각기 자아를 투영한 또 다른 ‘멤버 아이(ae)’와 함께 메타버스 공간을 무대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었다. ‘여덟 멤버’가 함께 성장하며 악의 존재를 쫓아 ‘광야’로 떠나간다는 이들의 서사는 강렬하고 현란한 몸짓으로도 세상의 무대에 나서는 모습이기도 했다.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현재 방영 중인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스걸파)는 격렬해서 더욱 열정적이고, 현란해서 더욱 강렬한 여성 브레이크댄서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프로춤꾼들마저 치열한 경쟁의 무대에서 탈락해야 하는 차가운 상황을 바라보며 시청자들은 안타까움과, 그래서 치열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동시에 안았다. 이런 ‘최선의 삶’은 비록 아프지만 또 새롭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연기자 방민아는 열정적이고 현란한 ‘스걸파’들과는 또 다른 10대의 내면을 그려내며 호평 받아 미국 뉴욕아시안영화제와 부산영화평론가평론가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청룡영화상으로까지 이어갔다. 그와 함께 심달기, 한성민도 차가운 거리에 선 10대 여성들의 흔들리는 예민한 감정을 제대로 토해냈다.


● 이제 새로운 연대의 힘으로

이들 10대가 겪어내야 하는 ‘최선의 삶’을 지나온 세 자매는 자신들을 ‘계집애들’이라 비겁하게 ‘뒷담화’하며 폭력적 성차별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꼰대’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영화 ‘세자매’의 문소리·김선영·장윤주는 가부장의 폭력이 남긴 생채기로 결코 평화로운 내면을 가질 수 없는 ‘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렸다. 영화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꼽은 올해의 작품 10편의 목록에 올랐고, 문소리와 김선영은 청룡영화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등을 거머쥐었다.

문소리는 “정말 배우들이 내면의 에너지로 호흡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그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의 불씨 모양 트로피를 바라보며 “이 불씨가 하나둘 모여 좀 더 큰불이 된다”면서 “환한 불을 꺼트리지 않고 더 키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불씨는 연대의 이름으로 다시 불린다.

비록 최근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 제작진의 편집 조작 파문이 찬물을 끼얹고 말았지만, 여성들의 열정과 ‘팀워크=연대’라는 미덕은 “언니들의 싸움”(‘스우파’ 우승 크루 훌리뱅의 리더 허니제이)을 넘어 “내가 원했던 거, 내가 보고 싶었던 거, 이것!”(프라우드먼 립제이)이라는 그들의 말이 여전히, 틀리지 않음을 말해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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