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심리전 달인’ 곽윤기, 리더의 교과서가 따로 없다 [강산 기자의 비하인드 베이징]

입력 2022-02-07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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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기(33·고양시청)는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대표팀의 최고참이다. “올림픽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강조했던 그는 지난달 30일 현지에 도착한 뒤로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곽윤기는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의 대미를 장식할 남자 5000m 계주 멤버다. 부상 등의 변수가 없다면, 후배 김동욱(스포츠토토)과 함께 쇼트트랙대표선수들 중 가장 늦은 11일에야 첫 레이스에 나선다. 이 일정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후배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도 있다. 2010년 밴쿠버대회, 2018년 평창대회 등 이미 2차례 올림픽을 경험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하며 멘탈 치유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장을 찾은 취재진에게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선수들도 많이 주목하고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말 마디마디에 진심어린 후배 사랑이 느껴졌다. 핑크빛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는 등의 톡톡 튀는 행동도 후배들에게 편안히 다가서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6일 베이징캐피털실내빙상장에서 진행된 공식 훈련 직후 중국에 유리한 노골적인 편파판정과 관련한 그의 발언에서도 후배 사랑이 여실히 드러났다. 표면적으로는 5일 혼성계주 2000m 준결선 2조에서 3위로 골인한 중국이 배턴 터치 없이 2바퀴를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실격 판정을 받지 않고 결선에 올라 금메달까지 따낸 데 대한 분노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후배들의 투쟁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심리전의 측면도 엿보였다. 곽윤기는 “중국의 우승 과정을 보면 억울하다. 받아들여야 하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또 안타깝고 미안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중국과는 바람만 스쳐도 실격”이라던 자신의 작심 발언에 분노한 중국 팬들의 소셜미디어(SNS) 메시지를 갈무리한 뒤 ‘중국의 응원을 받는 중’이라고 메시지를 남긴 데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경험이 있다. 비난에 무딘 편이다. 혹시라도 내가 아닌 후배들이 그런 상황을 겪을까봐 욕설 메시지를 공개했다. 후배들이 상처받고 기가 죽을까봐 ‘다같이 응원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5일 2000m 혼성계주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해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배들을 대신해 직접 취재진 앞에 서고, 기를 살리는 리더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후배들을 보호하며 전면에 나서되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것은 ‘좋은 리더’의 필수조건이다. 그 조건을 충분히 갖춘 곽윤기를 당연히 선수들은 잘 따를 수밖에 없다.

무조건 당근만 주는 것은 또 아니다. 후배들이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는 게 곽윤기의 진심이다. “(국가대표가) 너희들의 자리니 견뎌야 한다”, “빙질이 불안하다고 소극적으로 스케이트 날을 다루지 말고, 더 자신 있게 하라”는 등의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정신적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많은 이들이 따르는 리더의 조언은 성장의 밑거름이다. 곽윤기는 그럴 자격이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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