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의 수(數)포츠] 우먼파워는 어디까지 왔나 (상)

입력 2022-03-08 13:2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포츠에서 남녀 선수의 운동능력 차이에 대한 궁금증은 늘 숙제로 남아있다. 육상, 수영, 역도 등 신체능력이 중요한 종목에선 그 격차가 뚜렷하다. 다만 1980년대를 주름잡은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는 남자 선수 못지않은 괴력으로 여전히 육상 여자 단거리의 최강자로 기억되고 있다. 동아일보DB

‘총알 탄’ 볼트에 91.3% 육박…조이너의 ‘풀리지 않는 비밀’

100m 각 9초58·10초49 세계新
‘단거리, 남자 유리’ 이론 깬 괴력
세상에서 ‘가장 빠른 여자의 역설’

수영 자유형 50m 남녀차 88.3%
자유형 1500m 94.6%로 좁혀져
사격 10m·20m권총선 여자 우위
《영화 ‘머니볼(2011년)’은 실화다. 내용을 줄이고 줄이면 이렇다. 만년 꼴찌이자 스몰마켓 팀 오클랜드. 희망이 없던 팀에 빌리 빈이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센세이션이 일어난다. 빈은 세이버 매트릭스(야구 수학)와 머니볼(저비용 고효율) 신봉자. 사생활, 부상, 나이, 인기는 물론 타율, 홈런까지 기존의 스카우팅 리포트는 찢어버려라. 대신 출루율을 앞세운 OPS(출루율+장타력) 타선을 완성하라. 오클랜드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시즌 동안 5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머니볼 기적을 이뤄낸다.

수(數)포츠는 스포츠에서 겉으로 드러난 성적보다 숨어 있는 진짜 숫자를 찾아 씹고 뜯고 즐기는 칼럼으로 주1회 게재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절대 수식으로 스포츠를 꿰뚫어 보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다. 기자가 스포츠부장 마지막 해 초여름에 선을 보였으니 머니볼 개봉보다 반년쯤 빨랐다. 수를 다룬다고 해서 겁낼 이유는 없다. 스포츠 초보도 약간의 인내만 있다면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스포츠동아 독자라면 마니아가 대부분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수포자(수포츠를 포기한 사람)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한 번 달려보자》

스포츠기자를 하면서 품었던 궁금증 하나. 운동능력에서 남녀 차이는 과연 얼마나 날까. 종목별, 부문별 편차는 어떨까. 여성이 이기는 역전현상은 없을까.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온종일 검색해봐도 무릎을 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구름 잡는 이론과 학설은 넘쳐나지만 구체적 숫자가 나온 것은 전무하다. 수포츠의 갈 길은 험난하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수포츠가 아니다.


●기록경기 육상부터 보자

육상의 꽃인 100m와 200m 세계기록은 난공불락이다. ‘번개’ 우사인 볼트가 13년간, ‘달리는 패션모델’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34년간 근처에 오는 것조차 허용치 않고 있다. 100m는 볼트가 9초58, 그리피스 조이너가 10초49로 둘의 차이는 91.3%(남자÷여자) 수준이다. 200m는 볼트가 19초19, 그리피스 조이너가 21초34로 89.9%이니 더 벌어진다.

아쉬운 것은 두 선수 모두 200m에서 기록 단축이 쉬울 거라 기대됐지만 이루지 못했다. 스타트보다 가속과 코너링 능력이 중요한 200m는 남자의 경우 100m 기록의 두 배보다 빠르고, 여자는 조금 더 나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볼트는 0.03초, 그리피스 조이너는 0.36초를 넘겼다. 볼트는 너무 빨리 축구장으로, 그리피스 조이너는 1998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거리에 따른 남녀 차이는 어떨까

100m에서 1만m까지 스타디움에서 뛰는 트랙경기는 400m(90.4%), 800m(90.0%), 1만m(90.2%)에서 볼 수 있듯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기자는 이렇게 믿고 싶다. 순발력과 근력이 중요한 단거리일수록 남녀 차이는 벌어져야 마땅한데, 그리피스 조이너란 위대한 여성이 왜곡현상을 일으켰다고.

도로를 달리는 로드 경기는 양상이 다르다. 하프마라톤은 남자 57분31초, 여자 1시간2분52초로 91.5%. 마라톤은 남자 2시간01분39초, 여자 2시간14분04초로 90.7%다. 여자 선수의 경쟁력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앞의 기록은 남녀가 같이 달린 혼성대회 기록이다. 남자 페이스메이커들이 여자 선수를 둘러싸고 뛴다. 이 때문에 국제육상연맹은 혼성대회와 여자대회 세계기록을 따로 관리한다. 여자만 뛴 대회의 세계기록은 하프가 1시간05분16초, 풀코스가 2시간17분01초다. 거의 3분씩 늦다. 이 경우 남녀 수준차는 각각 88.1%, 88.8%로 확 벌어진다. 남녀가 따로 뛰는 경보 50km는 남자 3시간32분33초, 여자 3시간59분15초로 88.7%이니 비슷하다.

결국 트랙보다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이 남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으로 정리된다. 반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종목은 아니지만 100km는 남자가 6시간9분14초, 여자가 6시간33분11초로 93.9% 수준이다. 이는 남자 선수들이 기록보다는 순위경쟁에 치중한 결과로 보인다.

우사인 볼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육상 필드 경기에선 훨씬 차이가 난다

높이뛰기는 남자가 2.45m, 여자가 2.09m로 85.3%(여자÷남자)다. 멀리뛰기는 84.0%(남자 8.95m, 여자 7.52m), 장대높이뛰기는 81.9%(남자 6.18m, 여자 5.06m)로 더 벌어진다. 필드가 트랙보다 순발력과 근력이 더 중요하고 종합적인 운동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창던지기는 73.4%(남자 98.48m, 여자 72.28m)로 절정에 이른다.

흥미로운 점은 포환던지기는 남자 23.37m, 여자 22.63m(96.8%)로 큰 차이가 없다. 해머던지기도 남자 86.74m, 여자 82.98m(95.7%). 원반던지기는 여자(76.80m)가 남자(74.08m)를 앞선다. 그러나 이는 남녀가 사용하는 포환, 해머, 원반의 무게와 직경이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수영, 거리 늘어날수록 격차 줄어

자유형 50m 세계기록은 남자 20초91, 여자 23.67로 88.3% 수준. 반면 800m는 93.3%로 좁혀진다. 수영의 마라톤인 자유형 1500m는 94.6%. 선수들이 막판 스퍼트 전까지 순위경쟁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배영은 자유형과 거의 똑같은 패턴이다. 반면 평영과 접영은 남녀 차이가 좀더 난다. 에너지 소모량이 많기 때문이다. 평영은 50m에 이어 100m에서도 88.7% 수준이다. 접영은 100m가 89.1%, 200m가 89.4% 수준이다. 참고로 수영 4종목의 스피드는 자유형이 가장 빠르고 접영∼배영∼평영의 순이다.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종목은 역도


남녀 유일하게 체급 단위가 같은 69kg 이하급 남자 세계기록은 인상 166kg, 용상 198kg이다. 여자는 인상 128kg, 용상 158kg. 남자가 드는 무게의 77.1%, 79.8%밖에 들지 못했다. 무제한급에선 차이가 더 벌어진다. 라샤 탈라카제는 지난해 12월 세계선수권에서 인상 225kg, 용상 267kg을 들어 8월 도쿄올림픽에 이어 또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타타냐 카시리나(인상 155kg, 용상 193kg)는 그의 68.9%, 72.3%에 불과하다.


●차이가 거의 없거나 역전된 종목은 없을까

사격은 10m 공기 소총과 권총, 25m 권총 등에서 여자가 남자 세계기록을 앞선다. 양궁은 전체적으로는 남자가 약간 앞선다는 게 정설이지만 대회 때면 역전이 자주 일어난다. 이밖에 컬링, 승마 같은 경우는 성대결을 해볼 만하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멘탈 스포츠에서도 여자 선수가 강세를 보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바둑에선 루이나이웨이 9단이 2000년 동아일보 국수전에서 우승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자 프로의 실력은 남자 시니어 프로와 비슷하거나 약간 아래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달로 100개월 연속 국내 여자랭킹 1위를 기록 중인 최정 9단은 세계대회 6번을 포함해 22번이나 우승했지만 혼성대회에선 2019년 참저축은행배 4강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다. 남녀 통합 랭킹은 29위. e스포츠인 스타크래프트에선 여자 게이머가 우승한 적은 없다.


장환수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angpab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