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50평 아파트 선물한 선수와 패밀리 비즈니스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2-03-10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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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임동혁(오른쪽)이 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의 홈경기에서 스파이크를 시도하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대한민국 여자골프가 강한 숱한 이유 중 하나로 ‘패밀리 비즈니스’를 꼽는다. 유난히 진입장벽이 높은 대한민국 골프의 현실에서 유망주가 성장하려면 가족의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어느 아버지는 주유소를 처분했고, 누구는 딸의 레슨비 때문에 잘 다니던 좋은 직장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당겨서 썼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여자골프선수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자처하며 누구보다 연습에 매진한다.


대한민국의 다른 학원스포츠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선수 가족의 지원과 희생의 바탕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타고난 신체조건이라는 또 다른 진입장벽이 있는 배구 또한 부모들의 열성과 지원으로 힘들게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와 정성어린 지원까지 받아 프로팀에 입단한 대다수의 선수들은 감사를 잊지 않는다. V리그의 많은 선수들이 소년소녀가장 역할을 도맡는 이유다.


대한항공 임동혁도 그렇다. 9일 23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이미 50평형대 대형 아파트를 충북 제천의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꼭 성공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처럼 열심히 선수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면 성공의 길도 일찍 열린다.

대한항공 임동혁(17번)이 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의 홈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후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7~2018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임동혁은 빨리 돈을 벌어 가족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일찍 프로행을 택했다. 2013~2014시즌 2라운드 6순위 정지석에 이어 대한항공의 2번째 고졸신인이었던 그는 성공신화를 차근차근 써내려가고 있다.


고교시절 최고의 선수였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일단 몸이 완전하지 않았다. 웨이트트레이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프로에 입성했다. 당시 그를 지도했던 박기원 감독은 “고등학교 때 체력훈련으로 산을 타는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어떻게 트레이닝기구를 사용하는지도, 어떤 무게와 자세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기억했다. 박 감독은 일단 그가 프로에서 한 시즌을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을 줬다.


팬들은 ‘왜 기대주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느냐’며 V리그의 선수육성 시스템을 자주 비판한다. 유망주가 팀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많은 부분이 필요하다. 기량이 우선이지만 몸과 마음, 정신적 성숙도 뒷받침돼야 한다. 조그만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대한항공 임동혁. 스포츠동아DB



임동혁은 다행히 이런 과정을 시행착오 없이 잘 견뎠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기에 한눈을 팔지도 않았다. 입단 이후 3시즌 동안 101득점을 기록했던 그에게 지난 시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외국인선수 비예나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잡았고, 그간 준비해온 것들을 마음껏 보여줬다.

지난 시즌 123세트에서 506득점을 올렸던 임동혁은 V리그 5년차인 2021~2022시즌에도 아직 주전은 아니다. 외국인선수 링컨과 라이트 한 자리를 나눠야 한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임동혁과 링컨을 편견 없이 기용하고 있다. 기준은 간단하다. 코트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면 계속 뛸 수 있다. 9일 한국전력과 5라운드 홈경기에선 3세트부터 주전으로 나선 임동혁 덕분에 대한항공이 귀중한 승점 2를 챙겼다.


임동혁은 여전히 성공에 목마르다. 대한항공의 챔피언결정전 직행과 우승까지 그가 힘을 쥐어짜내야 할 경기가 많아질수록 가족도 더 편해질 듯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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