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의 다리를 건너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에 빠졌던 ‘영웅’의 이야기…뮤지컬 베토벤 시즌2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19]

입력 2023-04-2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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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스토리, 디테일…많은 부분이 달라진 ‘시즌2’
카이, 뼈대가 훤히 드러나는 시원시원한 해석의 ‘베토벤’
윤공주, ‘토니’의 인간적 아픔을 손에 잡힐 듯 잘 그려내
막이 오르기 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먼저 무대에 올랐습니다. 무대가 꽉 찹니다. 이 정도면 베토벤 교향곡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신감과 자부심, 여기에 살짝 ‘귀여운 과시’마저 느껴졌습니다.

이윽고 피트로 내려간 단원들이 악기를 조율합니다.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공연 전, 특유의 웅성웅성한 조율소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집니다. 다시 한번 이 작품의 ‘진심’이 만져지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 베토벤의 시즌2.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옮겨왔습니다. 시즌1이 건네준 바통을 움켜쥐고 시즌2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즌2는 시즌1으로부터 상당 부분 수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추가된 넘버도 있고, 스토리의 개연성을 보강했으며, 디테일에도 손이 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들이 작품이 갖고 있는 무게를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시즌1의 감동은 그대로 가져오면서, 음악과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습니다. 저는 시즌2를 좀 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베토벤과 안토니 브렌타노의 러브라인도 설득력이 세졌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의 그러데이션이 한결 촘촘해진 느낌입니다. 시즌1에서 안토니의 넘버 한 곡으로 설명해야 했던 많은 것들을 좀 더 친절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시즌1보다 캐릭터들의 색깔도 진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베토벤의 동생인 카스파 반 베토벤, 그리고 안토니의 남편 프란츠 브렌타노입니다. 카스파의 경우는 넘버도 추가된 것 같군요. 인물의 ‘맛’이 달라졌습니다. 두 캐릭터 모두 주인공의 주변에서 한두 발짝씩 중심으로 더 들어섰습니다.

베토벤과 토니(원래는 안토니지만 베토벤은 토니라고 부릅니다)의 사랑은 참 아슬아슬하면서 아름답죠.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만날 때마다 하늘은 석양으로 짙붉게 물이 듭니다. 저는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석양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석양은 더없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불타오르지만, 우리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내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석양은 두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토니는 마음의 평화를 중요시 하는 사람입니다. 극 중에서도 두어 번 ‘마음의 평화’와 관련된 대사가 나옵니다.

베토벤이 그런 토니에게 말합니다. “나는 평화를 주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베토벤의 말은 두 사람의 사랑을 예견한 것만 같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는 토니가 누리고 있던 일상의 평화를 깨버리고 맙니다.

물론 토니의 평화로운 듯 보이는 삶은 실체가 아닙니다. 그는 시누이 베티나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지요. 그리고 베티나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이 고백은 토니의 삶이 파괴되는 기폭제가 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토니와의 위험한 사랑에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던 베토벤은 자신의 동생 카스파의 사랑에는 왜 그렇게 인색했을까요. 결국 그렇게 후회할 거면서 말이죠.


말년의 베토벤이 카스파에게 사과하는 장면도 명장면입니다. 눈여겨보면 그랜드 피아노가 뚜껑이 열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피아노는 베토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죠. 쓰러진 피아노는 음악을 잃은 베토벤의 현재를 드러냅니다. 사랑도 음악도 잃은 베토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즌1은 박은태 ‘베토벤’. 시즌2에서는 카이 ‘베토벤’을 만났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두 사람이 보여주는 ‘베토벤’은 많이 다릅니다. 박은태 ‘베토벤’은 상당히 박력이 있는 베토벤이었죠. 괴짜로서의 베토벤 캐릭터성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의도적으로 다소 ‘뻣뻣한’ 베토벤을 그렸습니다.

카이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전면에 세워놓았습니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베토벤은 그 다음입니다. 귀족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모차르트의 느낌마저 납니다.

캐릭터의 묘사도, 넘버도 시원시원한 해석입니다. 뼈대가 햇빛 아래 훤히 드러나 한 줌의 의구심도 없는 베토벤입니다. 마치 토스카니니의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 것 같습니다.


윤공주 ‘토니’는 토니의 아픔이 잘 드러납니다. 시즌1 조정은의 ‘토니’에게서 발산되었던 강력한 기품은 덜 했지만 윤공주 ‘토니’는 불행한 결혼생활, 천재 음악가와의 벼락같은 사랑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좀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자녀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앞에 무너지는 사랑. 토니의 선택은 관객을 설득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가 시즌2에서 좀 더 부각되었다는 이야기는 앞서 했습니다. ‘카스파’는 이해준, 윤소호, 김진욱 배우가 맡고 있는데 이날은 윤소호 ‘카스파’였습니다. 알코올 중독에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형과 함께 자랐지만 카스파는 형과 달리 따듯한 인간미를 지닌 인물입니다.

평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형과 척을 지게 되지만 만년에 이른 형과 다시 화해를 하게 되지요. ‘카스파’는 비틀린 베토벤의 인생에 작지만 힘 있는 등불 같은 존재입니다. 윤소호의 미성은 ‘카스파’의 선함을 한결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날 ‘토니’ 못지않게 눈에 띄었던 여성 캐릭터는 최지혜의 ‘베티나’. 베토벤과 토니의 사랑을 파국으로 향하게 만드는 방아쇠가 되어버렸지만, 미워하기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이 역은 최지혜와 전민지가 맡고 있지요.

‘영웅’으로 시작해 ‘월광’이 쏟아지는 다리를 건너, ‘운명’처럼 사랑을 만나 ‘열정’의 사랑을 하지만, 결국 ‘비창’을 지나 ‘장엄미사’로 막을 내리는 이야기.


그토록 기다렸던 ‘환희의 송가(Ode to Joy)’는 영웅의 부활과 같은 커튼콜이 되어서야 울려 퍼질 수 있었습니다.

이상 ‘천둥의 남자’ 베토벤의 이야기였습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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