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재호. 사진제공 | 두산 베어스
그러나 두산 베어스 김재호(38)는 한국 나이로 불혹을 앞둔 지금도 유격수로 뛰고 있다. 최근 2년간(2022~2023년) 이따금씩 3루를 맡기도 하지만 지난해 34이닝, 올해 2이닝으로 극히 드물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진 단 한 번도 유격수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두산이 7년 연속(2015~2021년) 한국시리즈(KS) 무대를 밟았을 때도 팀의 주전 유격수는 그의 자리였다. 그 상징성이 워낙 컸던 터라 다른 포지션을 맡을 일이 없었다.
지난해 유격수로 팀 내 최다 580이닝을 소화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주전 유격수로 출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격수로 팀 내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수비는 물론 체력 부담도 워낙 큰 포지션이라 다른 선택을 할 법도 하지만, 김재호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코칭스태프의 확실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영락없는 ‘베테랑 유격수’의 표본이다.
김재호는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운을 뗐다. 지금도 경쟁력이 있지만, 전성기 시절 김재호의 유격수 수비는 KBO리그 최고 수준으로 꼽혔다.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속도가 매우 빠른 데다 백핸드 캐치 이후에도 안정적인 1루 송구로 손쉽게 아웃카운트를 늘리곤 했다. 그는 “내가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며 “젊었을 때처럼 빠지는 공도 악착같이 잡아서 송구하는 플레이는 못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빨리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핸드 캐치 직후 1루로 송구하는 동작은 김재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지금은 전성기 때의 강력한 송구를 보긴 어렵지만, 바운드를 시켜서라도 어떻게든 1루수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다. 김재호는 “예전처럼 백핸드로 잡아서 강하게 던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며 “타구를 잡고 나서 빠르게 송구의 타깃을 봐야 하는데, 그 동작이 예전 같지 않다.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다 보니 최대한 글러브에서 공을 빠르게 빼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 김재호. 스포츠동아DB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큰 힘을 보태고 있다. 2일까지 44경기에서 타율 0.307(101타수 31안타), 홈런 없이 11타점, 출루율 0.397의 성적을 거뒀고, 3차례 결승타로 승리에 직접 기여했다. 공·수 양면에서 힘을 보태고 있으니 기회가 줄어들 이유도 없다. 그는 “작년에는 수비만 했다. 어깨 통증 때문에 공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수비를 강화하기 위한 운동을 했다”고 돌아보며 “올해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격 쪽에서 최대한 내가 커버해야 경쟁력도 생긴다. 후회 없이 해보자고 다짐하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마지막까지 유격수로 뛰고 싶다는 의지는 그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재호는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마지막까지 유격수로 버티고 싶다는 욕심이 있으니까 수비를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 여전히 수비 영상을 많이 보며 연구하고 있다. 꾸준히 연구해야 나중에 코치를 하더라도 후배 선수들에게 뭔가를 알려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느껴졌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