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유자왕과 파파노 경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https://dimg.donga.com/wps/SPORTS/IMAGE/2024/10/04/130154701.1.jpg)
피아니스트 유자왕과 파파노 경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10월 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유자왕이 고른 쇼팽 협주곡 2번
파파노 경과 런던심포니의 말러 1번
많은 것이 완벽 “모두가 즐거웠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클래식 관람은 꽤 오랜만. 유자왕과 런던심포니, ‘오페라 지휘의 명장’ 안토니오 파파노. 여기에 말러 1번이라는데 달려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쯤 되는 라인업이라면, 밥 먹던 숟가락 딱 내려놓고 신발을 신어야 한다.유자왕이 고른 쇼팽 협주곡 2번
파파노 경과 런던심포니의 말러 1번
많은 것이 완벽 “모두가 즐거웠다”
1부 첫 곡은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콘서트 서곡 E장조’. 시마노프스키가 1905년, 그러니까 23세 때 작곡한 초기작이다. 아직 작곡가의 개성이 터지기 전, 20대 시절의 초기작의 경우 평가와 인기가 박한 편인데 이 곡은 예외다. 물론 초연 후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단원들의 손과 입을 부드럽게 풀기에는 과분할 정도의 레퍼토리라는 생각이다. 사실 연주회에서 듣기는 처음이었다.
이윽고 피아노가 들어오고, 유자왕 등장. 치렁치렁한 화이트 드레스를 끌고 우아하게 나타나 주었다. 언제 보아도 “오늘은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감을 갖게 하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연주자 중 한 명이다. 여기서 ‘보여줌’은 ‘들려줌’을 포함한, 좀 더 확장된 감각이다.
지난번엔 두다멜과의 조합이라 그야말로 기대에 부풀어 예술의전당으로 달려갔지만, 현대곡을 연주하는 바람에 어깨가 처져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여담이지만 유자왕은 구스타보 두다멜, LA필과 이날 연주한 현대곡(존 애덤스 ‘마귀가 좋은 선율을 다 가져야 합니까’) 녹음으로 오푸스 클래식 상을 받았다.
![런던심포니를 지휘하는 안토니오 파파노 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https://dimg.donga.com/wps/SPORTS/IMAGE/2024/10/04/130154708.1.jpg)
런던심포니를 지휘하는 안토니오 파파노 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유자왕의 쇼팽은 어쩐지 많이 낯설다. ‘유자왕’하면 역시 라흐마니노프가 익숙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륨이 작은 연주다. 피아니스트도, 오케스트라도 조곤조곤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카의 질주를 내심 예상해 보았지만 웬걸. 빙판 위의 피겨스케이터처럼 매끄럽고 우아한 유자왕의 쇼팽이다.
이쯤에서 밝혀두는 런던심포니 사운드에 대한 개인적인 컬러감은 무채색이라는 것.
노랗고 빨간 원색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사운드로, 때때로 잔뜩 투명해져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린다. 특히 이날의 현이 그러한데, 이런 개성은 협주곡에서 더욱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날 프로그램에 대해 유자왕이 굳이 쇼팽을 고집했다는 후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유자왕의 쇼팽은 확실히 ‘기성복 쇼팽’은 아니다.
유자왕의 피아니즘을 기교로만 판단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렇다고 그를 서정, 감성의 연주자 쪽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다.
그가 음반과 무대에서 보여주는 마법 같은 셈여림은 숨 가쁘게 움직이는 이퀄라이저의 그래프를 보는 것 같다. 무엇을 연주하든, 그 음악은 유자왕이다. 이날의 쇼팽 협주곡에서도 유자왕은 스스로를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그 냄새는 쇼팽의 향수처럼 곳곳에 뿌려졌다. 쇼팽을 연주해도, 이건 유자왕이다.
![말러 교향곡 1번 연주를 마친 후 관객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에 인사하는 파파노 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https://dimg.donga.com/wps/SPORTS/IMAGE/2024/10/04/130154719.1.jpg)
말러 교향곡 1번 연주를 마친 후 관객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에 인사하는 파파노 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연주만큼이나 개성적인 그의 ‘철푸덕’ 인사도 정겹기만 하다. 유자왕은 차돌처럼 단단한 경추와 요추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2부는 기다렸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1부에서 젠틀했던 이 런던의 신사 오케스트라는 말러의 악보를 펼치면서 셔츠의 팔을 걷어붙였다. 전완근이 불끈하며 솟아올랐다.
이날 오전 인사동에서 사 온 듯, 편안해 보이는 의상을 입고 나온 파파노 경은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성큼성큼 음악을 그려 나갔다.
파파노는 런던심포니의 사운드를 독특한 방식으로 쌓아나갔는데, 저음부터 고음까지 집을 짓듯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독일 지휘자들과 달리, 거리에 따라 음을 짚단처럼 세워놓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덕분에 악기들의 소리는 1km 밖에서부터 1m 앞까지, 입체적인 사운드의 궁창을 만들어냈고, 이는 말러 1번의 음악적 효과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대단한 박력을 보여준 연주로, 객석의 환호성과 박수는 확실히 1부보다 거대해져 있었다. 많은 것이 완벽했던 연주. 오케스트라 곳곳을 누비며 연주자들을 격려하는 파파노는 이 뜨거운 커튼콜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런던심포니의 투명한 소리 저편 뒤로 살짝 올라간 말러의 입꼬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