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귀여운웬수’우리손녀딸

입력 2008-04-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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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쭉 살다가 2년 전에 아들내외가 사는 근처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며느리가 저를 찾아오더니 마치 어려운 얘기를 꺼내듯 부탁을 하는 겁니다. “어머니 제가 사실은 다음 주부터 일을 새로 시작하게 될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아이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도저히 제가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하는 겁니다. 제가 사실은 남편을 먼저 잃고, 시골에서 이곳으로 혼자 이사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내외는 더 미안해하는 것 같았는데, 사실 혼자 외로웠기 때문에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어이쿠. 나야 고맙지. 우리 예쁜 공주랑 있으면 이 할미야 행복하지”하면서 그때부터 7살짜리 제 손녀를 맡아주게 됐습니다. 손녀딸도 “할머니! 할머니!”하면서 얼마나 저를 잘 따르던지…. 하도 예뻐서 없는 돈에 옷도 사주고, 머리핀도 사줬습니다. 정말 돈이 없어서 그렇지 있으면 뭐든지 다 사주고 싶더군요. 무조건 예뻐만 하지 않고, 제가 공부도 가르쳐줬습니다. 유치원 끝나고 오면 동화책도 읽게 하고, 받아쓰기 연습도 시키고, 덧셈, 뺄셈처럼 간단한 산수공부도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손녀가 유치원에 다녀오더니 절 보자마자 막 우는 겁니다. 그러면서 “할머니! 할머니가 가르쳐준 글자 틀렸잖아! 할머니 때문에 100점 못 받았잖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글자가 틀렸느냐고 물었습니다. 손녀딸이 “레몬은 ‘ㅓ’ 쓰고 ‘ㅣ’ 쓰는 건데, 왜 ‘ㅏ’ 쓰고 ‘ㅣ’ 쓰는 거라고 그래? 할머니 때문에 90점 받았잖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건 외국어니까 둘 다 써도 괜찮아. 둘 다 맞는 거야” (사실은 ‘레몬’이 맞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 대사전’에 ‘레몬’만 등록되어 있음) 하고 알려줬더니 우리 손녀가 “아니야! 할머니 글자 잘 모르지. 이제 할머니한테 글자 안 배울 거야!” 하고 울었습니다. 정말 속상했지만 그래도 제가 “100점 못 맞아도 괜찮아. 90점도 잘 한 거야” 하고 위로해줬는데, 우리 손녀가 “아니야! 할머니 미워! 할머니 바보!” 이러는 겁니다. 바보라는 말에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엉덩이를 한대 때려주고, “할머니한테 바보가 뭐야! 말 예쁘게 해야지” 했더니, 손녀가 아주 온방을 뒹굴면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나중에 며느리가 와서야 울음을 그쳤는데 며느리 보기 민망하지 뭡니까. 손녀딸 하는 짓도 너무 얄미웠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또 손녀를 봐주는데, 손녀한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형을 사주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마침 아는 동네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참 인상도 선하시고, 제게도 잘해줘 제가 좋은 말벗이라고 생각하던 분이었습니다. 우리 손녀가 저랑 그 할아버지가 얘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할머니! 이 할아버지 사랑해?” 이러는 겁니다. 그 때 그 할아버지 안사람 되시는 분도 옆에 계셨는데, 얼마나 당황스럽고, 죄송하던지 저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어머 죄송합니다. 우리 손녀가 실수를 했어요” 하고 사과를 하고 급히 돌아서려는데, 이번에 우리 손녀가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저희 할머니처럼 이가 나왔다 들어갔다 해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레몬 쓸 줄 모르세요?” 이러더군요. 주위에 계시던 다른 분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 창피해서 아이를 데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는 그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너무 민망해서 일부로 다른 길로 돌아갑니다. 예쁜 원수가 돼 버린 우리 손녀 딸, 그래도 제게 컴퓨터 쓰는 걸 가르쳐줍니다. 이 글도 거의 5일에 걸쳐서 써봅니다. 없는 솜씨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손녀딸! 건강하게 예쁘게 잘 자라다오. 행복한 아침 | 정한용, 왕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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