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이 왼쪽으로 옮겨졌다.
엄청난 전투 발발이다. 양쪽 진영에 진격의 사이렌이 왕왕 울리고 있다.
형세는 오리무중. 이런 곳에서 치명적인 상해를 입는 쪽은 오늘 패장의 멍에를 뒤집어써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의 눈빛이 살벌해지고 있다.
<실전> 백1로 느니 흑은 2로 이어 두었다.
마음 같아선 <해설1> 의 흑1로 받고 싶다.
하지만 백은 기다렸다는 듯 백2로 단수치고 4·6으로 백진을 수습할 것이다.
김기용에겐 안 된 얘기지만 이건 흑이 불리한 싸움이 된다. 흑6으로 젖힌 수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수가 패착이었다. 패착이 아니라 해도‘준패착’은 된다. 이 수가 나빠서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좋은 수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좋은 수’는 <해설2>의 흑1로 붙이는 수다. 이 수가 발견된 것은 바둑이 두어지고 나서도 며칠이 흐른 뒤였다. 발견자는 서봉수 9단. 이 수를 바둑판 위에 놓으며 한 마디 했다.
“이 거면 바둑 끝났어.”
이 수순의 하이라이트는 흑9로 가만히 빠지는 수다. 이렇게 되면 전투는 수상전이 된다.
그리고 이 수상전은 흑이 한 수 빠르다. 그 얘기는 백이 죽는다는 뜻이다.
이 수를 까맣게 모르고 있는 김기용은 흑6·8를 두어 놓고 속 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
때로는 모르는 게 보약인 것이다.
바둑은 여전히 미세하다.
후지쯔배 우승자를 맞아 아직까지는 신인왕이 잘 버티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