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감동100배남편의깜짝휴가

입력 2008-12-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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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한테 요즘 사시 기운이 있어서, 얼마 전부터 아들하고 같이 안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돌 지난 아기라서,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한번 병원에 가려면 우유병, 기저귀, 물통, 장난감 거기다 요즘은 겨울이라 코트, 모자, 목도리까지 바리바리 싸 가지고 가야합니다. 가끔은 제 손이 문어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입니다. 추운 날 칼바람 맞아가며 애기 업고, 짐 싸들고 병원에 들어가면, 젊은 부부들이 여유롭게 진료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있습니다. 애기가 울면 아빠가 번쩍 들어서 안아주고, 애기가 칭얼대면 엄마가 우유병 꺼내서 물려주기도 합니다. 요즘은 이런 젊은 부부들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기가 아플 때, 엄마아빠가 같이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혼자 아기를 업고 온 저는, 머리는 바람에 날려 있는 대로 헝클어져 있고, 볼은 찬바람에 얼었다 녹아서 빨갛게 물들어 있습니다. 그 젊은 부부들 가까이 앉아 있는 게 부끄러워 늘 구석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런 제 자신이 너무 속상해서 남편한테 하소연을 했습니다. “나 혼자 병원 다닐 때 어떻게 하고 다니는 줄 알아? 아마 당신이 보면 깜짝 놀랄 걸. 누구는 애 아프다고 아빠가 월차까지 내서, 병원에 온다는데. 당신, 지금까지 애 데리고 병원 한번 간 적 있어? 만날 내가 다 알아서 하잖아∼, 난 뭐 남편 없는 과부야?” 하고 퍼부어 댔습니다. 사실 저도 잘 압니다. 남편이 월차 쓰고 나올 형편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가기 때문에, 아침에 얼굴 볼 새도 없고, 밤에도 느지막이 들어오는 남편입니다. 그런 거 다 아는데, 그 때는 왜 그랬는지 섭섭한 마음에 그런 소릴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날도 어김없이 병원에 가야 되는데, 아침에 눈을 떴더니 남편이 출근 안 하고 집에 있는 겁니다. 웬 일인가 싶어, “당신 왜 출근 안 했어? 설마 경기도 안 좋다는데 당신 잘린 거 아니야?” 하니까 “잘리긴 뭘 잘려∼ 오늘 우리 아들 병원 가는 날이잖아. 같이 가려고 반차휴가 냈어. 마음은 하루 종일 휴가 내고 싶지만, 병원 갔다가 오후엔 출근해야 돼” 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감동스럽던지, 비싼 선물을 사 주는 것보다, 깜짝 놀랄 이벤트를 해준 것 보다, 몇 배는 더 감동스럽고, 고마웠습니다. 그 날, 아기는 저희 남편이 업고, 저는 기저귀가방을 매고 제가 부러워하던 그 젊은 부부들 모습처럼 여유롭게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다녀오니까, 그동안 애 혼자 데리고 다니면서 고생했던 거요? 한순간에 싹∼ 사라졌습니다. 남편의 작은 배려로 그 날 하루 종일 얼마나 기분 좋았나 모릅니다. 글로나마 좀 늦긴 했지만 저희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속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 정말 몰랐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경기도 부천|황선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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