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남편의손톱때는아름다운훈장

입력 2009-03-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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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애를 씻기고, 손톱을 깎아주려고 했는데 어찌나 손톱 깎기를 싫어하는지 갖은 사탕발림을 해도 계속 도망만 다녔습니다. “너 지금 손톱 밑이 까맣지? 그게 다∼ 벌레야 벌레∼ 과자 먹을 때, 손 안 씻고 밥 먹을 때 다 들어 간다”라고 엄포를 놓자, 딸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순순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다음날 딸애가 자기 아빠한테 뭐라 그러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뭔 소린가 들어봤더니 “아빠! 이렇게 손톱 밑이 새카마면 아빠가 벌레 다 먹는 거야. 이 까만 게 벌렌데, 이거 안 잡으면 아빠 뱃속에 온통 벌레가 기어 다닌다∼ 아빤 그것도 몰라?”이러면서 제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잠 든 남편 손을 보니, 손톱 밑에 새카맣게 때가 껴 있는 겁니다. 웬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그건 바로 기름때였습니다. 컴퓨터 보며 일하는 사람이 무슨 기름때인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기름 만질 일이 있었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답니다. 이후 자꾸 남편 손으로 눈길이 가게 됐습니다. 유심히 보니 어떤 날은 좀 더 까맣고, 또 어떤 날은 좀 덜한 것 같아 도저히 궁금함을 못 참고 먼저 물어봤습니다. “요즘 도대체 뭘 하기에 늦게 들어오는 거야? 손톱 밑은 왜 그래? 당신 기름 만질 일 있어?” 하니까 무안한 듯 손을 감추며 “회사 일이 많아서 그렇지 아무것도 아니야” 하면서 얼버무렸습니다. 전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결국 남편이, “사실은 나 회사 마치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 조금씩 해”라고 했습니다. “뭐? 주유소? 아니 당신이 그걸 왜?” 하니까 “내가 당신 걱정 할까봐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요즘 회사사정이 별로 안 좋아. 직원 모두 월급 감봉시켰거든. 안 그래도 월급이 적아서, 당신 빠듯하게 사는 거 내가 아는데 감봉 됐다는 얘긴 차마 못 하겠더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나 저 모르게 ‘투 잡’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잔소리만 했습니다. 제가 더 아끼고 살 테니 아르바이트 그만 하라고 했는데, 처음 며칠만 힘들고 한 달 다 되어가니까 이제 할 만하답니다. 낮에는 회사 일, 밤에는 주유소 일 고생 많은 저희 남편을 위해 저는 시장에 가서 내복을 두 벌 사왔습니다. 봄이 왔다고 해도 저녁엔 찬바람이 부니 우리 남편 좀 더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남편에게 이 얘기 꼭 전하고 싶습니다. “여보. 당신 손톱 밑에 낀 때 벗기려고 박박 문지르지 마! 우리 딸 말대로 벌레가 아니라, 멋진 훈장이니까. 당신이 있어 다행이고, 또 든든해. 고마워요 여보!” 대구 달성|이희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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