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멍멍이가물어온‘짝사랑’반장과의짧은행복

입력 2009-03-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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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제가 초등학교 때 일입니다. 우리 집 개 이쁜이는 항상 절 쫓아서 같이 학교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항상 이쁜이가 못 보는 틈에 냅다 가방을 들고 학교로 뛰어갔는데, 교실로 들어서면 반 친구들이 “와!” 하고 웃습니다. 얼른 뒤돌아보면 언제 따라왔는지 이쁜이가 제 뒤에 있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아∼ 챙피해∼ 이렇게 학교 다니느니 학교를 그만 둘까봐’라고 고민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이쁜이가 학교 오는 게 싫었습니다. 그 때 전 반장을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쁜이 때문에 반장이 혹시 날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선 모든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이라 교실에 이쁜이가 있는 걸 늘 허락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실험실로 이동해 수업하는 자연시간까지 같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별명은 자연스레 ‘개 엄마’가 돼버렸습니다. 어느 날은 제 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리던 반장이 갑자기 절 부르며 막 달려오는 게 아닙니까? 심장이 쿵쾅거리고 갑자기 호흡이 빨라졌습니다. 반장은 “야, 개 엄마! 지금 니네 집 개! 학교 뒤편에 어떤 형들이 막 괴롭히고 있어. 빨리 따라와”라고 하는 겁니다. 정말 6학년 오빠들이 이쁜이를 둘러싸고 발로 차기도 하고, 귀를 잡아당기기고 낄낄 웃으며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전 동정심을 유발하며, 슬픈 목소리로, “반장. 이제 어떡해? 우리 이쁜이 어떡해?” 하면서 등 뒤에 바짝 붙자 반장이 갑자기 아주 멋있게 “형들!! 지금 개한테 뭐하는 거야.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불쌍하지도 않아” 이러면서 고함을 쳤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하지만 오빠들이 화가 나서 “넌 뭐야? 야, 너 맛 좀 볼래?” 하면서 무섭게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쁜이가 오빠 중 한 명에게 달려들었고 저와, 반장, 이쁜이는 무사히 도망쳐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이쁜이는 첫째 시간엔 제 옆에, 둘째 시간엔 반장 옆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걸 본 반 친구들이 반장에게 ‘개 아빠’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난 개 엄마, 반장은 개 아빠 이렇게 저는 짝사랑하는 반장과 이쁜이를 자식으로 두고 부부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부부연’은 졸업과 동시에 끝났습니다. 반장이 졸업 후 연락이 끊겼고, 이쁜이도 시골 이모네로 보내졌는데 어느 복날 없어졌다는 소식만 들렸습니다. 지금도 우리 이쁜이 생각하면 제 옆에 웅크리고 앉아 같이 수업 듣던 그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대구 달서|서현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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