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장자연 사건 취재한 SBS 기자, “장자연씨 사죄드립니다”

입력 2011-03-17 14:12:58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사진 출처=취재파일에 글과 함께 개제된 사진


故 장자연 편지에 대해 취재한 SBS 우상욱 기자가 SBS 홈페이지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글을 남겨 화제가 되고 있다.

SBS 취재파일에 ‘故 장자연 씨께 엎드려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남겨진 그의 글에는 취재를 하며 남겨진 의구심들과 수사 결과에 따른 자신의 심경이 소상히 담겨있다.

우상욱 기자는 “어떻게 3년 넘는 일상을 세세하게 기록한 2백 30페이지짜리 편지를 조작할 수 있죠?”라며 “필적감정 전문가도 속일 만큼 완벽하게 필체를 흉내 내서 그렇게 자세한 내용을 일시까지 맞춰서 기록할 수 있죠?”라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에 토를 달 뜻은 없습니다. 국내 최고 권위의 기관이 내린 유권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음모론을 펼치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명백한 물증을 구하지 못한 제 무능력을 탓할 뿐입니다.”라며 자신의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장 씨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한 유가족과, 자신을 응원해준 모든 사람들, 마지막으로 고 장자연 씨 앞에 죄송하다며 사죄의 글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미약함에, 무능함에 실망했더라도 희망의 끊을 놓지 말라”며 자신 역시 끝까지 부딪히겠다는 각오도 드러냈다.

이 글에 네티즌들은 “정의를 위해 힘내라”, “아직 언론이 살아있다”, “장자연씨도 고마워 할 것이다”라며 응원의 글을 남겼다.
※다음은 우상욱 기자가 남긴 글의 전문.

저는 아직도 악몽을 꾸는 듯합니다. 어서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만 들 뿐입니다. 도무지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어떻게 3년 넘는 일상을 세세하게 기록한 2백30 페이지짜리 편지를 조작할 수 있죠? 절절한 고통과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져 함께 마음 아파해야 했던 그 호소들을 어떻게 상상으로 지어낼 수 있나요? 행동에 갖가지 제약을 받는 수형자가 어떻게 고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해 그렇게 자세한 내용을 습득해, 일시까지 맞춰서 기록으로 꾸며낼 수 있을까요? 그것도 필적감정 전문가도 속일 만큼 완벽하게 필체를 흉내 내서 말입니다. 빙의라도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아닌가요?

그보다 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이 편지의 출처입니다. 가정을 해봅시다. 전모 씨가 고 장자연 씨의 열렬한 팬이라서 편지를 위조해서라도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회적 충격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 씨의 필체를 연습하고 당시 사건을 조사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2백30쪽에 이르는 방대한 편지를 위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어디에 보내겠습니까? 당연히 언론사에 제보를 하겠죠. 그래야 세상에 공개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 씨는 대신 재판부에 탄원서로 제출했습니다. 그 때문에 지난해 10월 재판부에 건네진 이 편지는 반년 가까이 재판 기록에 편철된 채 세상의 이목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재판 기록에 슬쩍 끼워놓아 미끼를 드리운 채 어느 언론사가 찾아내 보도할 때까지 기다린다? 참으로 불가해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에 토를 달 뜻은 없습니다. 국내 최고 권위의 기관이 내린 유권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음모론을 펼치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잘못을 인정할 뿐입니다. 편지를 뒷받침할 만한 다른 명백한 물증을 구하지 못한 제 무능력을 탓할 뿐입니다. 장 씨가 전 씨와 편지를 주고받았을 만한 분명한 정황을 확인하지 못한 제 미숙함을 책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고 장자연 씨의 유가족께 무릎 꿇고 사죄드립니다. 보도를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장 씨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가해자들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된데 대해 눈물로 용서를 구합니다.

저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사죄드립니다. 썩고 병든 세상의 저 밑바닥에는 여전히 정의가 살아 숨 쉬고 있어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보여드리지 못한 죄송함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제게 비난과 질타를 가하던 분들께도 사죄드립니다. 잘못이 잘못인지 모르고 죄책감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무뎌진 양심에 '책임'이라는 날카롭고 선명한 기억을 새겨놓지 못해 원통하고 부끄럽습니다.

마지막으로 고 장자연 씨 앞에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영면에 든 영혼을 다시 심란하게 해드린 까닭은 오로지 고인이 죽음으로써 고발한 우리 사회의 잘못을 무엇 하나 고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만큼은 그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수확 없이 괜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만 오르내리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하지만 장자연 씨 사건의 본질과 실체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술과 성 접대로 괴로워하던 한 여배우의 석연치 않은 죽음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2년 전 이미 들었던 내용과 겪었던 경험이었음에도 SBS의 보도가 또다시 큰 파문을 몰고 온 것은 우리 사회가 장 씨의 죽음에 대해 여전히 크나큰 정신적 부채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번 보도를 하면서 저는 마치 조그만 구멍 하나, 틈 하나 찾을 수 없는 강고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바위에 부딪힌 계란, 그것이 제가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크고 높고 단단한 벽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산산이 깨지고 부서졌습니다.

하지만 그 벽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사회적 열망 또한 느꼈습니다. 저는 무능하고 허약한 계란이었을 뿐이지만 저보다 더 당차고 강력한 저항이, 더 뜨겁고 거센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아지고 합쳐져 바위를 쪼개는 폭포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저의 미약함에, 무능함에 실망하셨더라도 희망의 끈은 놓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고칠 수 있다는 희망만 품고 있다면 그 높고 단단한 벽도 반드시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절망감에 겁을 먹고 물러서지만 않는다면 부조리의 벽도 갈라지고 터질 것입니다. 저 역시 깨지고 부서진 몸일지라도 다시 추슬러 그 벽에 끝까지 부딪히겠습니다. 그것만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진심어린 사죄일 것입니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