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루시드폴 “최고 학벌 연예인? 손발이 오그라들죠”

입력 2012-01-05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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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뵙게 돼서 전라남도 영광입니다.”

말장난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서울대 화학공학과, 스위스 로잔공대 출신 박사 뮤지션이 있다. 작지 않은 체구의 이 남자는 지난달 23일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하이디폴’로 변신했다. 치마에 새빨간 볼 터치를 하고 특유의 낮은 음색으로 ‘크리스마스 폴카’를 불렀다. 정작 본인은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고학력’이 자막으로 나왔다.

지적인 호기심과 예민한 감수성, 그리고 ‘한 번도 쉰 적 없는’ 목소리를 가진, 바로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37)이다.

섬세한 음악세계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해 온 루시드폴이 2년 만에 5집 ‘아름다운 날들’로 돌아왔다. 그것도 다채롭게. ‘레 미제라블’, ‘국경의 밤’ 등 기존의 따뜻한 감성은 여전히 머금고, 삼바, 쿠반 볼레로 등 자신이 평소 즐겨듣는 남미 음악을 살짝 곁들었다. 가사는 전보다 내면으로 파고든다.

루시드폴은 주황색 바지에 비니를 푹 눌러쓰고 등장했다. “역시 패션피플”이라고 칭찬을 건네자 “밤늦게까지 콘서트 준비를 했다”며 머리도 못 감았다고 쑥스러워 했다.

- 지난해 힘든 일을 꽤 겪었다는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저 혼자 유난을 떤 거 같아 민망해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잖아요. 앨범 작업에 돌입했던 건…재작년(2010년)엔 라디오와 방송을 계속 했지만 음악적 성과가 있었던 건 아니었잖아요. 불안감이 들었어요. 밑천이 없어져 가나 싶고. 지난 7월 꼬박 집에서 보현이랑(루시드폴의 애완견, 최근 인터넷 도박에 빠졌다(?)고) 지내면서 곡을 만들었어요. 굳이 그럴 건 아니었는데. 자신을 밀어붙이고 싶었어요.”

- 아코디언, 비올라, 첼로 등 새로운 악기들도 나오고, 루시드폴 고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풍성해졌습니다.

“지인 70%가 ‘기타에 노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뛰어넘고 싶었어요.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 게 좋은가 하는 고민도 있었고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봤어요. 제 깜냥으로 안 되는 부분은 도움을 받았어요. 도움 주신 분들이 굉장히 많지만, 특히 (유)희열이 형, 재즈피아니스트 조윤성 씨, 1인 밴드 푸디토리움 김정범 씨, 이 세 분이 가장 적극적이셨죠. 좋은 기운의 사람들과 함께해 녹음하면서 오히려 충전된 기분이에요. 참 고마워요.”


- ‘고등어’라는 곡도 있었고, 블로그와 가사집 이름도 ‘물고기 마음’입니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은 ‘어부가’고요. 특별한 생선사랑은 어디서 시작되나요?

“저에게 생선은 먹을거리 이상의 의미예요. 어머니도 바다 사람이세요. 어린 시절, 일요일이면 아버지가 저를 깨워 포구에 데려가셨어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생선을 잡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렸죠. 해산물을 사서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해주신 요리를 온 가족이 나눠먹었죠. 어렸을 때 종종 외가댁에 놀러 간 기억도 있어요. 할아버지가 큰 대야에 전어를 담아 온 광경이 기억나요. 술 한 잔 걸친 삼촌들과 전어 맛도 모르면서 먹던 꼬마 무리. 공감적인 그런 느낌들이 있어요. 백석 시에도 먹거리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거예요. 요리 잘하냐고요? 그럼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요리 잘해요.”

- 김연우나 소속사 선배 정재형 등이 예능에서 다양한 활약을 해주고 있는데요.

“형들을 보고 있으면 좋아요. (김)연우 형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형의 좋은 모습을 발견하고 좋아해주니까 저도 좋아요. 재형이 형 같은 경우도 유쾌하고 솔직한 그 모습 그대를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요. 형들 모두 그런 에너지를 받아서 공연도 많이 하고, 음악적으로도 좋은 활력을 받는 것 같아요. (본인의 예능 출연은 어떤지 묻자, 손사래 치며) 전 방송이 편하지 않아요. 잘 모르겠어요. ‘유희열의 스케치북-더 만지다’ 코너를 할 때도 짧은 분량이지만 집에 오면 허탈하고. 라디오나 음악 프로그램이라면 언제든 좋아요.”

- 지난 10월 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습니다. (자연인 조윤석은 소주에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는 부산 ‘싸나이’다)

“다시는 안하려고요. 마운드를 가는데 ‘뭐꼬?’라는 야유와 알 수 없이 낮고 깊은 소리들이 들렸어요. 부산에서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선수들 타율도 다 외우고 아마 야구까지 꿰고 있어야 하는데 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어렸을 때 야구선수 이름을 익히면서 한자를 배운 정도? 예전 신문엔 사람 이름이 한문으로 표기됐잖아요. 어머니에게 물어보면서 한자를 익혔어요. 유학 갔을 때도 KBS 예능 ‘1박2일’과 프로야구로 위로받았어요. 연구실에서 눈치 보면서 유투브 찾아보고, 네이버 중계 보고. 달콤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학위 심사 끝나고 집에서 눈치 안보고 편안하게 ‘1박2일’과 야구 보던 시간이에요.”

- ‘약을 만들던 남자가 이제 마음의 약을 만들고 있다’고 유희열 씨가 말한 적 있어요. 루시드폴에게 ‘치유의 음악’은 뭔가요.

“브라질 가수 카르톨라요. 그 분 음악을 좋아해요. 저희 집 천장이 분홍색, 벽이 초록색인데 카르톨라가 설립한 삼바학교 망게이라의 상징색이에요.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브라질 팬이 저에게 카르톨라 티셔츠를 보내주신 적도 있고요. (그 뒤로도 설명이 한참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될 때 약이 되요.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지 않지만, 위안이 되고 해소가 되는 느낌이에요.”

-무엇이든 좋아하면 깊게 좋아하는 스타일인가요.

“사람이든, 취미든 좁고 깊게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좋아하다’, ‘친하다’는 표현에 신중해요. 그렇다고 ‘오타쿠’ 수준은 아니고, 좀 허술해요. 브라질 음악 관련 DVD가 50개 정도 있는데, 사실 엄청난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보고 있음 뿌듯해요.”

-좋아하는 브라질 뮤지션을 시코 부아르케(68)를 이야기할 때 눈이 반짝입니다. 닮고 싶은 뮤지션인가요.

“반짝반짝 거리는 눈빛이 참 좋아요.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 뮤지션이죠. 한편으로 닮고 싶고. 음악이 좋기도 하지만,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도 좋아요. 아직도 기타를 메고 무대서 서는데, 참 멋있어요. 저도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싶어요.(역시 굉장히 긴 설명이 이어졌다)”

- 가사집 ‘물고기마음’은 절판이에요. 또 책을 내실 생각은 없나요.

“제안이 꽤 왔지만, 다 고사했어요. 저는 글 쓰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아직도 크게 변함은 없어요. 만약에 쓰게 된다면 시나, 시나리오, 동화처럼 창작물을 쓰고 싶어요. 에세이나 수필 등은 블로그도 있고,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 참, 소개팅은 잘 되고 있나요. 10월 말쯤에 KBS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유희열 씨가 “소개팅의 실패를 맛봤다”고 했는데.

“그게 말이죠, 한 번 했어요. (정)재형이 형이랑 술을 먹다가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소개팅을 하게 됐는데, 하필 그날 몸이 안 좋아서…. 어색했어요. 그 이야기를 했더니 (유)희열이 형이 놀린 거예요.”

- 정말 음역이 미까지만 되는 건가요?

“(웃음) 악을 쓰면 파까지 가능해요. 시끄러운 반주에선 할 수 있어요. 반 키를 낮추고 공연한 적도 있었어요. (김)동률이는 이해 못하겠지만. 뭐, 1곡을 녹음하는데 동률이는 10시간 걸리고, 저는 1시간이면 하지만요.”

-루시드폴 음악은 야근자의 전용음악이란 말도 있어요. 그만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뜻 같아요.

“재킷 작업 때문에 미술을 하시는 분 작업실에 간 적이 있어요. 저녁 시간대였는데,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Kings of Convenience) 음악이 흘러나오더라고요. 작업을 할 때 도움도 됐고요. 전 제가 음악을 하니까 작업을 하면서 음악을 들을 일은 없지만, 제 음악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힘을 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봤어요. 그렇게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면 보람된 일이겠구나 싶었어요.”

- 마지막으로 5집 앨범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4집 앨범만큼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4집 앨범 땐 좀 초조했는데 지금은 덜해요. 오래 음악을 하는 게 목표인데 큰 힘이 될 거 같아요. 설령 그렇지 못해도 상관없고요.”

사진제공=안테나뮤직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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