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라이드’ 박성훈 “편견과 맞서 싸운 성소수자들로 인해 나도 변화”

입력 2015-09-24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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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변화무쌍해야한다. 선(善)이 됐다가 악(惡)이 되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다가 지질해지기도 하며 심지어 남자가 됐다가 여자가 되기도 한다. 변신을 하고 연기를 하는 자들의 할 일이라고 하지만 녹록치 않은 일은 분명하다. 특히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역할이라면 어떨까. 그는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심해야 할 것이며 그 인물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배우 박성훈이 그랬다. 연기를 하다 보니 갇혀있던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 소재가 ‘동성애’였을 때는 더욱 그랬다.

“개인적으로 꺼려하긴 했어요. 교회를 다녔기에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배웠고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냥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고 연기를 하려니 연기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스스로 거짓말도 하고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해하려는 그릇을 넓히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두결한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김조광수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분이 편견과 맞서 싸운 이야기를 듣고 또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갖고 있던 편견에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죠.”

생각의 변화를 갖고 그가 다가간 것은 ‘프라이드’였다. 성소수자들을 향해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억압, 그리고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얻는 사랑과 용기, 포용과 수용 등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는 이야기를 다룬 ‘프라이드’는 ‘두결한장’과는 또 달리 볼 수 있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대한민국 안에서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등 기본적인 메시지는 닮았을 거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초연 공연을 봤는데 대사가 좋았어요. 그 당시에도 나름대로 저 다운 ‘올리버’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프라이드’의 등장인물은 ‘내가 성소수자야’라는 것보다는 인물을 한 사람으로 다뤄서 좋았어요. 게다가 1958년도와 2015년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게 효과적이기도 하고 극 중 심어놓은 장치도 조직이 단단하고요. 그래서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있지만 제 연기와 선배들의 연기를 차곡차곡 쌓는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맡은 ‘올리버’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다. 1958년 동성애를 억압하는 시대에도 그는 필립에게 서슴지 않고 고백을 하고 2015년에는 자유로운 연애와 성생활을 즐기는 인물이다. 다른 시대, 비슷한 성향이지만 다른 인물을 만들어가고 있는 박성훈은 “연기를 하다 보면 두 시대의 ‘올리버’는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영혼을 지닌 사람 같다”라며 “당위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성에 집착하는 현재의 올리버의 트라우마를 1958년 올리버에게서 찾고 있다. 두 시대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영혼의 본질을 같이 놔두고 연기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올리버’는 어떤 사람들과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편안한 사람들과 있으면 말도 많이 하고 까불지만 안 편하면 과묵해지기도 하고. 외향적이지만 신중한 인물이기도 해요. 제 성격이 ‘올리버’와 비슷해요. 속은 투정도 부리고 칭얼대고 싶어요. 아직 철이 안든거죠.(웃음) 근데 겉으로는 그러지 못해요. 그래서 활달하지만 외롭게 보이는 ‘올리버’가 저는 좋아요. 저랑 닮아서요.”

박성훈이 ‘프라이드’를 하며 신경 썼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대사’다. 번역극에 구어체도 아닌 원작이라 대사를 전달이 원활하게 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는 “번역과 각색을 하시는데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더라. 기본적으로 대사의 양도 많고 서양문학에서 볼 수 있는 운율 같은 것을 한국어로 가져왔을 때 느낌이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어떤 한 단어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대사 속 글자와 쉼표들과 싸우는 게 쉽지 않았어요. ‘프라이드’를 하면서 ‘언어’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본 것 같아요. 덧붙여 한국말이 구수하고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국립극단 창극 ‘청’을 봤는데 위에 영어 자막이 뜨더라고요. 전라도 방언으로 배우가 ‘누리끼리하기도 하고 노르스름한 게’라고 했는데 영어로는 그냥 ‘옐로우(Yellow)’라고 뜨더라고요. 안타까운 게 그 ‘누리끼리’하고 ‘노르스름’이 풍부한 표현인데 그냥 ‘옐로우’인거잖아요. 그게 참 안타깝더라고요.”

그가 ‘프라이드’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편견이란 틀을 깨고 나오듯, 관객들 역시 ‘성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을 조금씩 지워나가주길 바란다. 그는 “이 작품은 ‘동성애가 좋다’라고 권장하는 작품이 아닌 소수자들을 향한 이해를 바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는 성소수자들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소수자들을 향한 이야기인 것 같다.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흑인들이 인간취급을 못 받은 게 말도 안 되게 당연했다. 와스프(WASP·앵글로색슨계 미국 신교도를 줄인 말로 흔히 미국 주류 지배계급을 칭하는 말)라는 것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인종차별이 남아있긴 하지만 현재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모든 인식과 편견이 바뀌어 가는 과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을 인정하고 작품을 본다면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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