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짝’ 사건후 우울증…절에서 4년 생활” [화보]
박재민의 화보가 공개됐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비보이이자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VJ로 데뷔한 박재민. 이내 연기와 예능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신선한 이미지로 다양한 행보를 이어갔다. 유머러스한 입담과 전문 운동선수 못지않은 피지컬 그리고 개성 있는 외모까지. 까다로운 입맛의 대중들에게도 그의 존재는 제법 특별한 ‘레시피’였다.
그렇게 상승 가도를 타던 그에게 불어온 단 한 차례의 ‘오보’는 커다란 폭풍이 되어 다가왔고 커다란 홍역을 앓은 그는 거짓말처럼 대중들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런 그가 ‘배우 박재민’으로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종전에 이어오던 행보에서 ‘배우’로서의 외길로 선회한 그. 그렇게 단단하게 자신을 제련해온 그와 bnt가 패션화보로 만났다. 총 3가지의 콘셉트를 남다른 프로포션으로 매끄럽게 진행한 그는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진중하고 면밀하게 꺼내어보였다.
드디어 bnt와 화보를 진행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는 그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로 화려한 베이지 컬러의 슈트를 꼽았다. 평소 운동밖에 몰랐던 그라 어두운 계열, 때 타지 않은 옷을 즐겨 입었기에 이러한 화려한 의상이 어색하지만 꽤 맘에 든다고.
초등학교 시절엔 성악, 중학교 시절엔 비보이, 대학교 시절에는 농구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어느 방면이 던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능력을 지녔다. 몸담았던 것 마다 각종 상을 휩쓸었으며 춤추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내걸었던 서울대 진학을 4개월 만에 120점이나 올렸을 만큼 그는 언제나 목표를 반드시 이뤄냈다.
오로지 춤을 추기 위해서였던 대학교 입학 후 다시 비보이를 시작한 그는 결국 습관성 탈골이 심해져 비보이를 못하는 상황이 되어 비보이 전문 MC를 아르바이트 식으로 하던 중 한 케이블TV의 VJ로 발탁이 되기도 하고 비보이 소재의 영화나 광고에 출연하며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연기를 시작했던 것은 2008년 한국에서 로케를 한 최초의 미국 헐리웃 영화에 캐스팅 되면서다. 비보이 영화였기에 비보이를 할 줄 알고 연기와 영어가 되는 사람을 필요로 했기에 미국에서 태어나 6년을 살았고 평소에도 영어를 그 뒤로도 곧잘 해 캐스팅이 됐고 조폭 두목으로 출연하게 됐다. 모든 싸움을 춤으로 연기하는 그런 영화였다고.
하지만 개봉 직후 영화 ‘빅쇼트’에서도 다뤄졌던 주택 모기지론의 문제가 심화되어 출연료도 못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촬영 다하고도 한국 제작사가 없어졌고 소속사도 없었던 그에게는 굉장히 큰 상처였지만 많은 배움이 있었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또 연예계가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줬던 것은 바로 ‘짝’ 사건이다. 당시 여자친구와 소원해져 헤어진 직후 ‘짝’ 연예인 특집을 찍게 됐는데 촬영을 마치고 그 친구에게 ‘짝 프로그램을 찍고 왔는데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다시 만나보자’고 얘기했고 좋은 답변을 받아 다시 만나게 된 것.
하지만 한 달 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생각지도 못한 채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는 얘기를 친한 기자 친구에게 말했고 ‘나이도 있는데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장난스레 털어놓은 것을 ‘짝’이 방송되자마자 결혼 기사로 배포해 18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할 정도로 파장이 컸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4년 전 ‘짝’ 기사가 나온다며 그 이후로 소속사에서 계약 해지를 당하고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 다섯 개를 그 주에 바로 하차하게 됐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오래했던 드림팀도 잘리고 예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우울증이 심해져 여자친구와도 이별한 뒤 절에서 생활하게 됐다. 2평 남짓한 방에서 지낸 지 벌써 4년이나 됐다고.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여전히 2G폰을 쓰고 있다’는 질문에 많은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했던 SNS는 와이파이가 되는 집이나 절에서 자기 전에 조금씩 하지만 스마트폰을 그 외에는 쓰지 않는다며 연락도 모두 2G폰으로 하는데 카톡보다는 문자, 문자보다는 전화, 전화보다는 만나려고 해요. 아날로그적인 걸 좋아한다는 그.
디지털에 익숙해지면 결국 우리가 감동을 주는 방법은 사람의 눈을 보면서 아날로그로 감동을 시켜줘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디지털화가 되면 대중들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까먹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교류하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선 스마트폰을 안 쓰는 게 제겐 더 좋은 것 같다고 전한다.
현재는 서울종합예술학교라는 곳에 무용예술학부에 비보이 전공 이론 교수로 재직하며 6년 째 비보이 역사, 교습법, 인체기능학, 인체생리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연기자, 교수 등으로 생활하면서 지금도 비보이 활동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남남북녀’에서도 공연을 했었고 가수 박효신의 콘서트는 데뷔한 이후에도 비보이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문자가 왔는데 10월부터 콘서트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무대에 오르지 않을까 라며 그와의 우정을 과시했다.
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스트레스는 운동, 비보이, 후배들에게 강의하며 풀어요. 또 강의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다시 연기로 푼다며 쉴 틈 없이 바쁘게, 또 열심히 삶을 살고 있는 그의 면모를 보여줬다.
배우로서 롤모델은 윌스미스를 꼽았다. 멋진 배우이자 가수이기도 하면서 감독이기도 하고 멋진 아빠이자 남편이기도 하고 사회 공헌도 많이 하고. 제가 닮고 싶은 모든 걸 갖고 있다고.
최근에는 짝 사건이 터지고 다섯 개의 방송에서 하차 했을 때도 유일하게 거둬 주었던 감독님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비디오스타’에 출연하면서 재기 후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픔이 있었던 터라 조심스레 묻는 연애 질문에는 아직 사실 조심스럽지만 이상형으로 착한 여자를 꼽으며 약간 외모도 보지만 그건 한참 나중 문제고 ‘급구’라며 잘못 나간 기사 때문에 유부남인 줄 알고 접근도 잘 안하시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현재 연기에만 몰두할 것이고, 현재 12월에 서울대동문연극단에서 준비하고 있는 연극 연습으로 생활을 보낸다는 그는 “앞으로 배우 박재민이 인기 많은 연예인, 대박 작품으로 회자 되는 것 보다는 ‘그 사람 참 괜찮은 인간 이었다고 멋있었다’고 기억되고 싶다”고 전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박재민의 화보가 공개됐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비보이이자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VJ로 데뷔한 박재민. 이내 연기와 예능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신선한 이미지로 다양한 행보를 이어갔다. 유머러스한 입담과 전문 운동선수 못지않은 피지컬 그리고 개성 있는 외모까지. 까다로운 입맛의 대중들에게도 그의 존재는 제법 특별한 ‘레시피’였다.
그렇게 상승 가도를 타던 그에게 불어온 단 한 차례의 ‘오보’는 커다란 폭풍이 되어 다가왔고 커다란 홍역을 앓은 그는 거짓말처럼 대중들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런 그가 ‘배우 박재민’으로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종전에 이어오던 행보에서 ‘배우’로서의 외길로 선회한 그. 그렇게 단단하게 자신을 제련해온 그와 bnt가 패션화보로 만났다. 총 3가지의 콘셉트를 남다른 프로포션으로 매끄럽게 진행한 그는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진중하고 면밀하게 꺼내어보였다.
드디어 bnt와 화보를 진행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는 그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로 화려한 베이지 컬러의 슈트를 꼽았다. 평소 운동밖에 몰랐던 그라 어두운 계열, 때 타지 않은 옷을 즐겨 입었기에 이러한 화려한 의상이 어색하지만 꽤 맘에 든다고.
초등학교 시절엔 성악, 중학교 시절엔 비보이, 대학교 시절에는 농구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어느 방면이 던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능력을 지녔다. 몸담았던 것 마다 각종 상을 휩쓸었으며 춤추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내걸었던 서울대 진학을 4개월 만에 120점이나 올렸을 만큼 그는 언제나 목표를 반드시 이뤄냈다.
오로지 춤을 추기 위해서였던 대학교 입학 후 다시 비보이를 시작한 그는 결국 습관성 탈골이 심해져 비보이를 못하는 상황이 되어 비보이 전문 MC를 아르바이트 식으로 하던 중 한 케이블TV의 VJ로 발탁이 되기도 하고 비보이 소재의 영화나 광고에 출연하며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연기를 시작했던 것은 2008년 한국에서 로케를 한 최초의 미국 헐리웃 영화에 캐스팅 되면서다. 비보이 영화였기에 비보이를 할 줄 알고 연기와 영어가 되는 사람을 필요로 했기에 미국에서 태어나 6년을 살았고 평소에도 영어를 그 뒤로도 곧잘 해 캐스팅이 됐고 조폭 두목으로 출연하게 됐다. 모든 싸움을 춤으로 연기하는 그런 영화였다고.
하지만 개봉 직후 영화 ‘빅쇼트’에서도 다뤄졌던 주택 모기지론의 문제가 심화되어 출연료도 못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촬영 다하고도 한국 제작사가 없어졌고 소속사도 없었던 그에게는 굉장히 큰 상처였지만 많은 배움이 있었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또 연예계가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줬던 것은 바로 ‘짝’ 사건이다. 당시 여자친구와 소원해져 헤어진 직후 ‘짝’ 연예인 특집을 찍게 됐는데 촬영을 마치고 그 친구에게 ‘짝 프로그램을 찍고 왔는데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다시 만나보자’고 얘기했고 좋은 답변을 받아 다시 만나게 된 것.
하지만 한 달 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생각지도 못한 채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는 얘기를 친한 기자 친구에게 말했고 ‘나이도 있는데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장난스레 털어놓은 것을 ‘짝’이 방송되자마자 결혼 기사로 배포해 18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할 정도로 파장이 컸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4년 전 ‘짝’ 기사가 나온다며 그 이후로 소속사에서 계약 해지를 당하고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 다섯 개를 그 주에 바로 하차하게 됐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오래했던 드림팀도 잘리고 예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우울증이 심해져 여자친구와도 이별한 뒤 절에서 생활하게 됐다. 2평 남짓한 방에서 지낸 지 벌써 4년이나 됐다고.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여전히 2G폰을 쓰고 있다’는 질문에 많은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했던 SNS는 와이파이가 되는 집이나 절에서 자기 전에 조금씩 하지만 스마트폰을 그 외에는 쓰지 않는다며 연락도 모두 2G폰으로 하는데 카톡보다는 문자, 문자보다는 전화, 전화보다는 만나려고 해요. 아날로그적인 걸 좋아한다는 그.
디지털에 익숙해지면 결국 우리가 감동을 주는 방법은 사람의 눈을 보면서 아날로그로 감동을 시켜줘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디지털화가 되면 대중들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까먹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교류하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선 스마트폰을 안 쓰는 게 제겐 더 좋은 것 같다고 전한다.
현재는 서울종합예술학교라는 곳에 무용예술학부에 비보이 전공 이론 교수로 재직하며 6년 째 비보이 역사, 교습법, 인체기능학, 인체생리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연기자, 교수 등으로 생활하면서 지금도 비보이 활동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남남북녀’에서도 공연을 했었고 가수 박효신의 콘서트는 데뷔한 이후에도 비보이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문자가 왔는데 10월부터 콘서트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무대에 오르지 않을까 라며 그와의 우정을 과시했다.
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스트레스는 운동, 비보이, 후배들에게 강의하며 풀어요. 또 강의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다시 연기로 푼다며 쉴 틈 없이 바쁘게, 또 열심히 삶을 살고 있는 그의 면모를 보여줬다.
배우로서 롤모델은 윌스미스를 꼽았다. 멋진 배우이자 가수이기도 하면서 감독이기도 하고 멋진 아빠이자 남편이기도 하고 사회 공헌도 많이 하고. 제가 닮고 싶은 모든 걸 갖고 있다고.
최근에는 짝 사건이 터지고 다섯 개의 방송에서 하차 했을 때도 유일하게 거둬 주었던 감독님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비디오스타’에 출연하면서 재기 후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픔이 있었던 터라 조심스레 묻는 연애 질문에는 아직 사실 조심스럽지만 이상형으로 착한 여자를 꼽으며 약간 외모도 보지만 그건 한참 나중 문제고 ‘급구’라며 잘못 나간 기사 때문에 유부남인 줄 알고 접근도 잘 안하시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현재 연기에만 몰두할 것이고, 현재 12월에 서울대동문연극단에서 준비하고 있는 연극 연습으로 생활을 보낸다는 그는 “앞으로 배우 박재민이 인기 많은 연예인, 대박 작품으로 회자 되는 것 보다는 ‘그 사람 참 괜찮은 인간 이었다고 멋있었다’고 기억되고 싶다”고 전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