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청구인 장동익 씨가 막냇동생에게 진심을 털어놨다.
25일 방송된 채널A ‘아이콘택트’에서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 씨가 막냇동생과 눈맞춤을 가졌다. 사건을 담당한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이 스페셜 MC로 함께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도로상에서 차량에 타고 있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되고 함께 있던 남성은 격투 끝에 도망친 사건이다. 당시 장동익 씨는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장동익 씨는 친한 친구가 사건 장소 근처에서 불법 운전면허 교습소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공범으로 지목돼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당시 딸 아이가 2살이었다. 장동익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찰들은 장동익 씨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을 가했다.
장동익 씨는 “나흘간 고문당했다”며 당시 경험담을 이야기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장동익 씨는 1급 시각 장애로 인해 자신이 쓴 진술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고문의 고통으로 허위 자백을 써 내려간 진술서를 인정했다. 장동익 씨는 “(고문당하는 상황에서) 범인이라면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하더라. 그때 손가락 움직인 게 후회됐다. 움직이지 않았다면 내 고통으로 끝났을 텐데“라며 자책하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후 장동익 씨는 2013년 모범수로 감형됐지만, 같은 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삶을 바친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하며 희망과 고통이 한 번에 찾아왔다. 그러나 장동익 씨는 꼭 살아나가 살인자 가족이라고 낙인찍힌 가족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장동익 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살인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힌 장동익 씨 가족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에 눈맞춤방에 소환된 막냇동생 장성익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동생은 기둥 같았던 형 장동익 씨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장동익 씨 수감 이후, 어머니에게는 형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장동익 씨를 위해 매일 밥상을 차렸고, 수천 장의 사건 기록을 보유해 재심 청구를 앞당겼다. 동생 역시 그런 어머니를 도와 20살 때부터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며 평범한 일상들을 포기해야 했다고. 동생은 자신의 사정도 모르고 힘들게 면회를 하러 갈 때면 잔소리만 하던 형이 야속했다며 속마음을 전했다.
동생은 재심이 결정되고 “몇십 년간 안되던 게 하루 만에 되니까 멍했다”며 허탈했던 당시를 고백했다. 재심 재판을 마치고 모두가 기뻤던 순간, 장동익 씨가 종종 하던 잔소리에 동생은 무의식적으로 폭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박준영 변호사 역시 그날 폭발한 동생의 모습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족 고통은 더 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눈맞춤방에서 마주한 형제, 형 장동익 씨는 동생이 갑자기 울분을 폭발한 이유를 전혀 몰랐고, 이에 동생은 “형은 나를 얼마나 아냐”고 물었다. 형을 대신해 형수 남편으로, 조카 아빠로도 살아왔던 동생은 “난 막내였던 적이 없다”며 “내가 왜 그랬던 것 같아?”라고 질문했다. 장동익 씨는 동생의 폭음을 걱정해서 했던 소리였지만 동생은 “내가 그럴 사람 아니잖아. 난 잔소리로 들린다”고 전했다.
동생은 “집안 때문에 힘들어도 이야기를 못 했고, 혼자 술로 풀었다. 나도 힘들었다”며 처음으로 진솔한 대화를 시작했다. 동생은 “형이 교도소 들어갈 때부터 내 인생도 바뀌었다. 20대부터 53살이 된 지금 내 생활은 없었다. 모든 초점이 형에게 맞춰져 있었다”고 지금껏 쌓아왔던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가족만을 보며 수용 생활을 버텨냈던 장동익 씨는 “지혜롭게 살면서 극복하다 보면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주변 사람들 보란 듯이 좋은 모습으로 사는 게 내 희망이고 그림이다”라며 동생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기를 바랐다. 동생은 형의 진심에 공감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에 만족하며 크게 미소지어 훈훈함을 더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동익 씨, 최인철 씨는 이후 감형, 수감 21년만인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석방됐다. 재판과정에서부터 출소 이후까지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던 두 사람은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특히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25일 방송된 채널A ‘아이콘택트’에서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 씨가 막냇동생과 눈맞춤을 가졌다. 사건을 담당한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이 스페셜 MC로 함께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도로상에서 차량에 타고 있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되고 함께 있던 남성은 격투 끝에 도망친 사건이다. 당시 장동익 씨는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장동익 씨는 친한 친구가 사건 장소 근처에서 불법 운전면허 교습소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공범으로 지목돼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당시 딸 아이가 2살이었다. 장동익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찰들은 장동익 씨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을 가했다.
장동익 씨는 “나흘간 고문당했다”며 당시 경험담을 이야기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장동익 씨는 1급 시각 장애로 인해 자신이 쓴 진술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고문의 고통으로 허위 자백을 써 내려간 진술서를 인정했다. 장동익 씨는 “(고문당하는 상황에서) 범인이라면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하더라. 그때 손가락 움직인 게 후회됐다. 움직이지 않았다면 내 고통으로 끝났을 텐데“라며 자책하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후 장동익 씨는 2013년 모범수로 감형됐지만, 같은 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삶을 바친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하며 희망과 고통이 한 번에 찾아왔다. 그러나 장동익 씨는 꼭 살아나가 살인자 가족이라고 낙인찍힌 가족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장동익 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살인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힌 장동익 씨 가족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에 눈맞춤방에 소환된 막냇동생 장성익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동생은 기둥 같았던 형 장동익 씨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장동익 씨 수감 이후, 어머니에게는 형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장동익 씨를 위해 매일 밥상을 차렸고, 수천 장의 사건 기록을 보유해 재심 청구를 앞당겼다. 동생 역시 그런 어머니를 도와 20살 때부터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며 평범한 일상들을 포기해야 했다고. 동생은 자신의 사정도 모르고 힘들게 면회를 하러 갈 때면 잔소리만 하던 형이 야속했다며 속마음을 전했다.
동생은 재심이 결정되고 “몇십 년간 안되던 게 하루 만에 되니까 멍했다”며 허탈했던 당시를 고백했다. 재심 재판을 마치고 모두가 기뻤던 순간, 장동익 씨가 종종 하던 잔소리에 동생은 무의식적으로 폭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박준영 변호사 역시 그날 폭발한 동생의 모습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족 고통은 더 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눈맞춤방에서 마주한 형제, 형 장동익 씨는 동생이 갑자기 울분을 폭발한 이유를 전혀 몰랐고, 이에 동생은 “형은 나를 얼마나 아냐”고 물었다. 형을 대신해 형수 남편으로, 조카 아빠로도 살아왔던 동생은 “난 막내였던 적이 없다”며 “내가 왜 그랬던 것 같아?”라고 질문했다. 장동익 씨는 동생의 폭음을 걱정해서 했던 소리였지만 동생은 “내가 그럴 사람 아니잖아. 난 잔소리로 들린다”고 전했다.
동생은 “집안 때문에 힘들어도 이야기를 못 했고, 혼자 술로 풀었다. 나도 힘들었다”며 처음으로 진솔한 대화를 시작했다. 동생은 “형이 교도소 들어갈 때부터 내 인생도 바뀌었다. 20대부터 53살이 된 지금 내 생활은 없었다. 모든 초점이 형에게 맞춰져 있었다”고 지금껏 쌓아왔던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가족만을 보며 수용 생활을 버텨냈던 장동익 씨는 “지혜롭게 살면서 극복하다 보면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주변 사람들 보란 듯이 좋은 모습으로 사는 게 내 희망이고 그림이다”라며 동생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기를 바랐다. 동생은 형의 진심에 공감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에 만족하며 크게 미소지어 훈훈함을 더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동익 씨, 최인철 씨는 이후 감형, 수감 21년만인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석방됐다. 재판과정에서부터 출소 이후까지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던 두 사람은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특히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