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시체닦이 알바→억대 빚”…최제우(최창민) 인생사 (종합)

입력 2021-01-18 22:24: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크게보기

최제우(최창민), 역술가 된 이유
“12살에 시체 닦는 장의사 알바”
일용직 노동으로 손가락 장애 얻어
최제우가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고백하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18일 방송된 SBS플러스 ‘강호동의 밥심’에서는 1990년대 아이돌 출신 역술가 최제우가 출연했다.

최창민은 1998년 데뷔해 ‘영웅’, ‘짱’ 등의 히트곡을 발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 가수뿐 아니라 시트콤 ‘나 어때’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던 중 돌연 잠적, 활동을 중단한 최창민은 최근 최제우로 개명한 소식과 함께 역술인이 돼 활동 복귀를 알렸다.


최제우는 “어느 순간 활동을 못하게 됐다. 영화로 재기를 노렸지만 잘 안 됐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역술인이 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최제우로 이름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고 나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이 와중에 우연한 계기로 역술인을 찾아가게 됐다. 그는 “역술인이 날 보자마자 ‘20대 때 죽어야했는데 왜 살 아있지?’라고 하더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20대 때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며 “(그 계기로) 내가 명리학을 공부하면 내 인생을 알 수 있을까 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는지를 알게 됐다”고 명리학을 배우게 된 계기를 회상했다.

최제우는 서울시 옥수동 한 가정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극심한 생활고에 분유를 살 여력이 안됐고, 17살 터울의 형은 커피우유를 간신히 구해 동생에게 먹이기도 했다고. 이에 최제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다. 특히 시체 닦는 장의사 보조를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12살 때 산동네다 보니 동네마다 개인 장의사가 있었다. 장의사 분과 친하다보니까 졸라서 일을 했다. 아저씨가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극구 말렸는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2주 정도 됐을 때 교통사고를 당하신 분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장기가 다 튀어나와있었다. 헛구역질 하고 토하고, 학교도 며칠 못 갔다”고 말했다.

이밖에 전단지 부착, 분뇨 처리 아르바이트 등 여러 아르바이트 경험을 밝힌 최제우는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싶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최제우는 소속사 사기로 억대 빚을 지게 된 사연도 소개했다. 그는 “소속사가 갑자기 돈이 없다고 하더라. 근데 이미 나는 회사에 인감도장을 다 넘긴 상황이었다. 그러던 상황에 다른 회사와 (나도 모르는) 이중계약이 되고 합병이 됐다. 그 후에 소속사 대표가 잠적을 했다. 내가 벌었던 돈도 그동안 정산을 안 해줬더라”고 말했다.


활동 2년 동안 5억 가량을 벌어들인 최제우. 하지만 소속사 사기로 2억 원의 빚더미에 안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합병된 회사에서는 이중계약에 대한 위약금 명목으로 밤무대 행사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자존심에 밤무대만은 오를 수 없었다는 최제우는 일부러 팔을 부러트리는 등 부상을 핑계로 스케줄을 소화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선택한 일은 일용직 노동. 최제우는 3년간 일용직 노동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1억원의 빚을 변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제우는 마음에 상처는 물론 손가락 장애까지 생겼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정말 죽을 뻔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고소공포증이 생겼다. 30대에도 생계를 위해 필요하면 일용직을 나갔는데 그 때 새끼 손가락을 다쳤다. 빨리 치료를 받지 않아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다”고 덤덤히 털어놨다.

최제우의 유일한 소원은 어머니의 행복. 그는 “어머니가 오래 사시면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이후 어머니가 보낸 손 편지가 깜짝 등장했고, 어머니의 진심이 담긴 편지에 최제우는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동아닷컴 함나얀 기자 nayamy9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