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어땠을까’를 떠올리게 한다. 청소년기에서 20대 초반, 짧으면 짧고 길다며 길었을 가장 찬란했던 ‘그 시절’.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김승호)는 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던 세기말 청춘들이 빚어낸 아름답고 찬란한 청춘 일기를 담는다. 현실의 벽에 울고 꿈을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용기를 얻고, 사랑과 이별을 통해 성장하는 보통의 청춘들 이야기를 한 편의 만화처럼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중에서도 모든 것에 진심인 나희도 캐릭터를 오롯이 연기한 김태리를 향한 극찬이 쏟아진다. 순수했던 ‘그 시절 우리’를 떠올리게 하는 나희도를 연기하는 김태리까지 매료시켰다고.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택한 이유는 나희도 캐릭터였어요. 대본을 본 순간 ‘이 캐릭터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매력적이었어요. 나희도의 밝은 에너지를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작품을 검토할 당시 제 에너지가 가장 밝을 때였거든요. (웃음) 사랑이 넘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빨리 작품에서 이 느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희도를 만난 거죠. 타이밍이 절묘했어요. 정말 사랑 넘치고 에너지 넘치는 친구를 만났어요.”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큰 축은 나희도와 백이진(남주혁 분)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별하는 모든 순간이다.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되면서 ‘그 시절 판타지’가 아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가장 현실적이고 단순한 진리를 보여준다. 두 청춘은 뜨겁게 사랑했고, 슬픈 이별을 택했다. 김태리는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함께 연기한 남주혁에게 크게 고마워했다.
“백이진이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나희도가 사랑스러울 수 있었어요. 나희도의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 백이진 시선에서 완성됐어요. 백이진이 없었다면 사랑스러운 나희도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백이진을 잘 연기해 준 남주혁 배우에게 감사해요. 현장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백이진이 나희도를 귀엽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어떻게 하면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했어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제가 나희도를 잘 연기할 수 있도록 함께해 준 남주혁 배우가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언뜻 김태리에게서 나희도가 보인다. 정제되지 않은 말투와 산만하지만 설명하는 것에 진심이 보인다. 아직 캐릭터에 동화된 것인지, 아니면 나희도라는 인물은 김태리 그 자체인지 헷갈릴 정도다. “나희도와는 많은 부분에서 닮았어요. 에너지가 넘치는 부분이 비슷해요. 내 모습 중 나희도와 비슷한 부분을 연기에 반영했어요. 다만, 다른 부분도 존재해요. 이를테면 나희도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말해요. ‘널 가져야겠다’라고 말하는 나희도와 달리 저는 많은 것을 고민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어요. 100%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상대방 상황과 입장, 내 상태 등을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해요. 분명 말할 수 없는 부분은 삼키고 넘겨요. 그런데 나희도는 달라요. 모든 것에 진심이고 그것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요. 그런 점에서 다른 것 같아요.”
캐릭터를 사랑하고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김태리. 그에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전작 그리고 앞으로 만날 작품들과 조금 다른 감정이 뒤섞인 듯 했다. “‘미스터 션샤인’(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 때 스태프 대부분이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함께했어요. 다들 ‘미스터 션샤인’ 촬영이 ‘스물다섯 스물하나’보다 힘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전 ‘미스터 션샤인’ 때 좋은 기억만 남아요. 이병헌 선배, 이정은 선배 등과 함께했던 기억부터 날씨, 그 당시 먹었던 음식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반면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조금 달라요. 좋은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싶지 않아요. 쉽게 흘러 보내고 싶지 않아요. 촬영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 촬영 중 힘들었던 점, 연기 고민, 촬영하면서 했던 메모 등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요. ‘스물다섯 스물하나’ 때 모든 감정을 오롯이 남겨두고 싶어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제게 그런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김태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다시 꺼내볼까. 대답은 ‘NO’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아요. 다시 보면 너무 아쉬움을 클 것 같아요. 제 연기에 대한 아쉬움 등 복합적인 아쉬움이 있을 듯해요. 나희도는 제가 연기한 나희도보다 훨씬 멋진 아이입니다. 이런 (나)희도에게 미안하고 아쉬워서라도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아요.”
김태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기억 한 켠에 담아두지만, 시청자 사이에서는 ‘N차 시청’이 늘어난다. 전 세계적인 반응도 뜨겁다. 글로벌 OTT(Over The Top·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니 감사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인기는 ‘가벼움’이 아닐까 해요. 밝고 즐겁고 경쾌하고 이해하기 쉬워요. ‘미스터 션샤인’이 너무 좋은 작품이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만큼 인기를 끌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해외 시청자 입장에서 ‘미스터 션샤인’은 시대적인 상황, 역사를 공부해야만 이해할 수 있어요. 반면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공부하지 않고 봐도 쉽게 이해가 돼요. 그래서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스터 션샤인’과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연타석 흥행’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은 김태리에게 드라마는 영화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실시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매력적입니다.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요. 오랫동안 촬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들게 되고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캐릭터처럼 말하고 연기가 보다 자연스러워져요. 2~3시간 분량의 영화는 모든 장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느슨하게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죠. 반대로 드라마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해요. 다루는 이야기도 많아요. 영화는 하나의 큰 이야기를 집중한다면, 드라마는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다뤄요. 16시간이라는 양적인 부분이 커요. 보여줄 수 있는 게 정말 많죠. 재미있는 작업 같아요.”
김태리는 진지함과 왈가닥을 오간다.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러면서도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 연기에 대한 고민은 배우로서 갖춰야 할 부분을 자연스럽게 내비친다. 차기작이 기대될 수밖에 없다. “주관이 뚜렷한 캐릭터에 끌린다”는 김태리는 이미 다음 작품 공개를 앞두고 있다. 분명한 색깔을 지닌 김태리가 다음에는 어떤 매력으로 대중과 팬들을 놀라게 할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