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신드롬’은 우연이 아니었다.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드호텔 서울에서 열린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연출 유인식 극본 문지원) 기자간담회. 행사는 배우들 없이 유인식 감독과 문지원 작가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의 편견, 부조리에 맞서 나가는 우영우 도전이 따뜻하고 유쾌하게 담고 있다. 지난 8회 자체 최고시청률이 15%(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 전국 13.093%)를 기록하며 인기 고공행진 중이다.
이날 유인식 감독은 인기 실감에 대해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 잘 알려지지 않은 채널에 편성이고, 소재가 굉장히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확보할 수 없었다. 음식으로 따지면 평양냉면 같다. 입소문을 타면 좋겠다 싶었지, 초반부터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몰랐다. 10년간 연락 없던 지인부터 고등학교 은사까지 연락해오더라. 굉장히 울컥했다.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문지원 작가는 “주변에 연락이 많이 온다. 카페에서도 버스에서도 작품 이야기가 많더라. 하루하루 매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친모 재회 장면이 신파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에 집중하던 사람이라 기존 드라마 문법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기존 문법과 다른 표현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보다 캐릭터 상황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3년 전 어느 날 제작사 에이스토리 PD들이 나를 찾아와 영화 ‘증인’을 잘 봤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지우(김향기 분) 캐릭터가 성인이 돼 변호사가 되는 게 가능하다 생각하느냐고 묻더라. 16부작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냐더라. 나는 가능할 것 같고, 내가 집필하면 잘 쓸 것 같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관 연결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한 소리겠지만, 무엇을 하나 만들고 나면 그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이 평행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다. 우영우는 영화 ‘증인’을 관람하지 않을 것 같지만, 반대로 ‘증인’ 속 지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재미있게 보고 있을 것 같다. 지우가 우영우 말투를 따라 해도 유일하게 비난받지 않을 것 같다. 이 모습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영우는 우영우대로, 지우는 지우대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자폐 스펙트럼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룬 배경은 무엇일까. 문지원 작가는 “내가 자폐 진단을 받았다거나 가족이나 지인 중에 자폐 스펙트럼 성향을 지닌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릴러 장르를 구상하던 ‘사건 목격자가 자폐인이면 어떨까’에서 출발했다. 자료조사를 하면서 자폐인들이 지닌 많은 특성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닫고 놀랐다”고 말했다.
문지원 작가는 “독특한 사고방식, 엉뚱함, 강한 윤리 의식이나 정의감, 올곧음, 특정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 엄청난 기억력, 시각과 패턴으로 사고하는 방식 등이 특성을 보인다. 모든 자폐인이 이런 특성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자폐 스펙트럼으로 인해 강화되는 이들이 있다. 굉장히 호감을 느끼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스릴러를 기획하다가 톤이 바뀌어 영화 ‘증인’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다. 여러 파생 콘텐츠까지 양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작품 인기에 편승하려는 패러디 콘텐츠가 등장해 논란이다. 유인식 감독은 “그런 사례(패러디 논란)가 있다고 들었다. 나 역시 작품을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편치 않다. 다만, 일상에서나 유튜브상에서 우영우 캐릭터를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자폐 비하를 의도하지 않고 행동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보고 따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 속 우영우 캐릭터 행동은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흐름의 맥락이다. 이게 아닌 작품 외적으로 보일 때에는 다른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는 플랫폼에서는 더욱 그렇다. 희화와 패러디를 누군가 정의할 수 있을까 싶지만, 사회적인 합의나 시대적인 감수성 차원에서 공론화되면 기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유인식 감독은 ”박은빈도 행동에 조심스러워한다. 작품 외적으로 우영우 캐릭터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시청자가 어떻게 작품을 수용하고 해석하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아니지만, 문제의식은 필요하다. 지혜로운 시청자들이 토론과 공론화를 통해 기준점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극 중 ‘권모술수’라 불리는 권민우(주종혁 분) 캐릭터가 언급한 역차별 부분도 논쟁거리다. 이에 대해 문지원 작가는 “대형 로펌에 우영우라는 인물이 던져지면 그 주변 인물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했다. 우영우는 배려와 양보가 필요한 약자인 동시에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강자다. 주변 인물들 심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최수연(하윤경 분) 같은 반응도 있고, 권민우 같은 반응도 있다. 우영우를 둘러싼 여러 입장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려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이 묻어나올 수 있다. 다만, 최대한 내 생각을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창작자가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면 시청자나 관객은 굉장히 빠르게 그 내용을 느끼고 시시하게 바라본다. 따라서 뭘 말하려고 하기보다 메시지를 담았을까 봐 경계하는 편이다. 따라서 최수연이나 권민우 캐릭터 반응은 의도한 부분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작품 제목 속 ‘이상한’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지원 작가는 “‘이상하다’는 말은 낯설고 이질적이고 피하고 싶은 부정적 의미도 있지만, 이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한’이 우영우를 설명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6위에 랭크됐으며, CNN 등에서 조명하기도 했다.
문지원 작가는 “넷플릭스를 통해 다른 나라 시청자들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걱정을 했었다. 작가가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양이 많고, 한국어로 말맛을 살려야 온전히 전달되는 말장난도 많다. 법적 용어도 한국 법과 세계 법이 달라지는 부분이라 이게 그렇게까지 인기 있을 거로 생각하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인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고 이를 내게 묻는다면, ‘재미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서는 제 것을 재미있게 봐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안다. 그런 점에서 뿌듯하다”고 했다.
유인식 감독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전편을 동시에 업로드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방송하는 것과 똑같은, 우리나라 방송 일정대로 올라오는 드라마가 생중계되는 느낌이잖나. 해외 시청자들이 좋아해 주는 부분이 참 신기하고 놀랍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비슷한가 생각도 들기도 한다. 동시대에 사람들이 지금 어찌 보면 비슷한 갈증과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다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오징어 게임’처럼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작품 속 로맨스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문지원 작가는 “우영우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영우는 자기 세계에 집중하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다른 사람을 자기 세계에 초대하는 부분은 성장이라는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우영우 로맨스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우영우와 이준호(강태오 분)가 함께하는 순간을 액자 넣어 기념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며 “전반부에는 설레는 감정에 집중했다면, 후반부에서는 깊은 고민을 다룰 예정이다. 현실적인 부분은 담는다. 이준호가 자폐를 지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겪을 수 있는 등의 내용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시즌제에 대해서는 유인식 감독이 답했다. 유인식 감독은 “시즌제가 되면 좋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시즌제가 되려면 사업적인 측면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이 논의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중반부를 넘어 후반부에 접어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관전 포인트에 대해서는 “전반부에서는 ‘우영우가 진짜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무게가 실려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우영우가 훌륭한 변호사가 될 수 있는가’, ‘훌륭한 변호사는 무엇인가’를 우영우 스타일로 찾아간다. 각 인물도 자신 인생에 대한 고민과 변화를 맞는다. 구교환을 비롯해 예상하지 못한 배우가 등장해 열연을 펼칠 예정”이라고 했다.
‘우영우 신드롬’은 우연이 아니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문제 인식을 던졌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후반부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다룰지 주목된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