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 기자의 투얼로지] 영화처럼 즐기는 ‘낭만의 칙칙폭폭’

입력 2019-09-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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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군산선의 임시역 임피역 앞을 지나가는 레일크루즈 해랑. 군산|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군산선의 임시역 임피역 앞을 지나가는 레일크루즈 해랑. 군산|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슬로우 투어’의 진수, 레일크루즈 ‘해랑’

서울-군산-여수-서천 ‘1박2일’ 코스
침대는 기본…카페칸 와인 등 무료
승무원이 아카펠라·가야금 연주도


여행에서 교통수단은 목적지까지 빠르고 편하게 이동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여행 목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크루즈 여행이 대표적이다. 거대한 크루즈 선박에 숙박, 레스토랑, 엔터테인먼트, 레저, 쇼핑 시설을 갖추고 이것을 이용하는 경험이 여행의 핵심 콘텐츠가 된다.

레일크루즈는 이런 바다 위 체험을 땅으로 옮겨 기차로 즐기는 여행이다. 소설과 영화에 자주 등장한 유럽의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를 비롯해 호주의 인디안 퍼시픽, 인도의 팰리스 온 휠스, 아프리카의 로보스 레일, 골든 이글 트랜스 시베리안 익스프레스 등이 유명한 해외 레일크루즈다.

우리나라에도 ‘기차여행의 백미’라 할 레일크루즈가 있다. 2008년 10월부터 운행하고 있는 ‘해랑’이다. 가을의 정취가 한창 무르익어가는 9월 중순, 해랑을 타고 서울역을 출발해 군산-여수-서천을 거쳐 돌아오는 1박2일 여행에 참여했다.

사진제공|코레일관광개발

사진제공|코레일관광개발


● 카페칸서 와인 한잔, 레일크루즈의 낭만

사실 1박2일 일정이라지만 부지런 떨면 KTX를 타고 당일 왕복할 수도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이런 곳을 아기자기한 동선으로 하룻밤을 자며 돌아보는 데 해랑 여행의 묘미가 있다.

아침에 서울역서 출발해 첫 기착지 군산으로 가는 동안 카페칸서 커피를 즐기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KTX를 타면 쏜살같이 지나가는 통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차창 밖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피곤하면 객실로 가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아니면 카페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맥주나 와인을 즐기면서 한가로운 여유를 만끽할 수도 있다. 여정의 여백이 핵심인 슬로우 투어의 전형이다.

열차 기착지에는 지역 명소를 돌아보는 버스투어가 기다린다. 투어를 마치고 다시 기차로 돌아오면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해랑은 기차 내에 간식과 음료 서비스는 있지만 정식식사 서비스는 없다. 대신 기착지의 지역 맛집을 안내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기차로 돌아오면 객실서 따뜻한 샤워도 할 수 있다. 개운한 몸으로 침대에 누으면 리드미컬한 열차 진동이 자장가처럼 잠을 재촉한다.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해랑 라운지칸 선라이즈에서 신나는 북 연주를 선보이는 승무원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해랑 라운지칸 선라이즈에서 신나는 북 연주를 선보이는 승무원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승객관리, 투어가이드, 공연 퍼포머까지 1인3역 승무원

이번 여행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1인3역을 해내는 해랑 승무원들의 뛰어난 능력이었다. 기차 안에서 승객의 요구사항을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역할은 기본. 기착지에 내리면 버스투어를 하는 동안 관광명소에 대한 설명부터 안내를 하는 여행 가이드로 변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객들을 위해 라운지칸에서 진행하는 각종 공연이나 이벤트도 이들 승무원들이 담당한다. 아카펠라 합창부터 가야금 연주, 북 합주에 이르기까지 꽤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해랑에서 가장 비싼 스위트룸. 냉장고, 와이드평면TV, DVD플레이어 등을 갖추고 있는데, 1호차에만 1량 3실로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코레일관광개발

해랑에서 가장 비싼 스위트룸. 냉장고, 와이드평면TV, DVD플레이어 등을 갖추고 있는데, 1호차에만 1량 3실로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코레일관광개발


● 편의시설 부족, 객차 업그레이드 절실

국내 유일 레일크루즈인 해랑이 요즘 고객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만족시키려면 풀어야 할 과제도 있었다.

우선 시급한 것은 객차 업그레이드다. 1호차 23실 54명, 2호차 24실 72명 정원으로 운영하는 해랑은 2003년 로템에서 제작한 무궁화호 객차와 식당차를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관리를 꽤 잘하기는 했지만 16년이 된 무궁화급 객차이다 보니 한계는 존재했다. 여기에 객실 와이파이나 USB 충전 같은 편의시설이 부족했고,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비품도 꽤 비싼 상품 가격에 비해 고급스러움이 떨어졌다.

차내 엔터테인먼트도 현재처럼 승무원들의 ‘열정 봉사’ 무대 외에 아이들을 위한 완구나 교재, 개인 VR기기 같은 다양한 서비스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서천|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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