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TV] 캣츠의 메모리 같았던 박란주의 마지막 독백 ②

입력 2019-10-21 0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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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모 프로듀서와 박경찬 연출의 4시간 벤치 회동
박경찬 연출 “박란주의 찬란을 보여주고 싶었다”
박란주 “용기내길 잘 한 것 같습니다” 대사에 꽂혀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박경찬 연출, 박란주 배우와의 인터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공소남) 이성모 프로듀서와 박경찬 연출님의 첫 번째 단독 미팅 자리가 대학로 카페나 술집도 아닌 공원이었다면서요. 도대체 시커먼 남자 둘이 공원에서 4시간씩이나 무슨 얘기를 그리 하신 겁니까.”

“(찬) 일단 사실입니다. 그날 둘이 처음 만난 거죠. 일단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셔서 약속을 잡고 카페에서 만났어요. 이야기를 좀 하다가 ‘밖에 날씨도 괜찮고 하니 공원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좀 더 할까요’ 하셔서 이동하게 된 겁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살아가는 우리들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려는 의도가 뭐냐’고 제가 여쭤봤죠. 웹툰이란 장르가 잘 되어 있고 독자들의 평점도 좋은데 왜 굳이 연극으로 만들려고 하시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랬더니 대표님이 본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이 이야기가 이 시대에 필요하고, 공연계가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주셨죠. 그런 모습이 진솔되게 느껴졌어요. ‘단지 상업적인 생각만으로 하려는 건 아니구나. 그럼 나도 진정성을 갖고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 거죠. 그래서 의기투합을 ….”

“(공소남)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도래가 찬란에게 하는 명대사가 있지 않습니까. 약간 오글하지만 ‘꼭 너였으면 좋겠어’. 이성모 프로듀서는 왜 ‘꼭 박경찬이었으면 좋겠어’한 걸까요?”

“(찬) 그동안 제가 쓰거나 연출한 작품을 다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감사하죠. 제가 한 작업들이 투박하지만 진솔하다고 보신 것 같아요.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공소남) 그렇군요. 다음 번 인터뷰는 이성모 프로듀서, 박경찬 연출 두 분만 따로 모시고 공원벤치에서 야방(야외방송)으로 한 번 진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란) 푸하하! 야방.”

“(공소남) 배우와 스태프들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준비한 시간과 과정이 굉장히 길고 치밀했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극중에서 폐부를 앞둔 연극부 단원들이 마지막 작품을 으¤으¤ 하며 만들어가는 과정과 닮은 것 같은데요.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나요?”

“(찬) 일단 우리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방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어떻게 담을까. 이 작품은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옳은 걸까. 그래서 배우 분들에게 부탁 드렸죠. 이 작품을 여러분이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한다고요. 나 스스로에게도 고민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지 공연하면서 난 분명 좋아서 하고 있는데 지금도 연극, 뮤지컬이란 말이 나를 설레게 하는가. 이 작품을 통해 찾고 싶었어요. 공감하고 싶었죠. 그래서 배우들과 원칙적인 질문들을 많이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란) 질문을 굉장히 많이 주고받아서. 우리 거의 시험 봤어요(웃음). 스스로에게 계속 시험을. 연출님께서 ‘숙제를 해왔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주셨죠.”

“(공소남) 웹툰 원작의 경우 주인공 찬란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개개인이 모두 각자 아픔을 갖고 있고,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치유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연극에서는 찬란 외 인물들의 사연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던데요.”

“(찬) (다른 인물들의 사연을 드러내지 못한 데에는) 물리적인 문제가 크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결국 우리가 극으로 만드는 데에 있어서 어떤 이야기를 쫓아가야 하는가. 방만해져서 나중에 종지될 때 관객들이 ‘이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야?’, ‘우린 누구를 봐야 하는 거야?’ 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찬란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야 했던 겁니다.”

“(공소남) 역시 주인공이 좋네요?”

“(란) 그러네요. 어쩌다보니 ㅎㅎ”

“(공소남) 이찬란이란 캐릭터를 무대에서 어떤 인물로 보여주고 싶었나요. 혹시 연출과 배우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었을 텐데요.”

“(란) 일단 저는 웹툰을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었죠. 리딩도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연출님께서 ‘웹툰 속의 찬란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이 인물로 두 시간 가까이 네가 찬란의 삶을 살았을 때 관객에게 얼만큼의 시너지를 줄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고민이 됐죠. 밋밋하지는 않을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웹툰 속의 찬란이가 저에게 도전이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한 만큼 그 결을 살려서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그 인물로서 되어지는 장면이 있고 불편해지는 장면도 있더라고요. 대본을 보니 왜 연출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확 와 닿았죠. 그때부터 같은 방향의 찬란을 만들기 위해 연출님과 노력했던 것 같아요.”

“(찬) 찬란이란 캐릭터는 사실상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이죠. 상처가 많은. 강하게 맞서 싸우기 보단 내몰린 채 따라가는. 극의 전반부는 수동적인 찬란의 모습입니다. 저는 상황만 가져오고 박란주란 찬란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이 작품을 연극으로 올리는 이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림체가 아닌 입체적으로, 다방면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로. 그게 더 매력적이니까요. 박란주라는 배우에게 찬란의 환경을 준다면 어떤 인물을 그려낼까. 어떻게 이겨낼까.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란주 배우도 진정성 있는 배우니까 틀림없이 이 상황 속에 본인을 집어넣어보고 수많은 방정식을 돌려봤을 거거든요. 그래서 가장 잘 맞는, 박란주식 찬란을 표현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공소남) 전반부는 이찬란이 약간 밋밋하게 보여질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찬란이 입체적인 인물로 각성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란) 그 밋밋하다고 말씀드린 부분은 아마 웹툰 속의 찬란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 연극에서는 초반부터 찬란이 좀 입체적이라고 느껴지거든요. 자기 목소리를 좀 낼 수 있는 이미지죠. 각성의 순간은 물론 있죠. 아무래도 연극부 동아리 멤버들을 만나면서부터 … 그리고 도래와의 연락을 통해서. ‘그래 나도 한번 용기를 내서 마음 가는 대로 해봐?’ 하는 데서 1차적 각성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공소남) 학교 다닐 때 이찬란 스타일은 아니었겠죠. 혹시 화려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진 스타일이었을까요?”

“(란) 어 … 저는 찬란이 과였던 거 같아요(웃음). 진이처럼 옷에 관심이 많고, 보여지고 꾸미는 거 좋아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죠. 그런데 그걸 뭐 즐기면서라기보다는 혼자서 좋아하는? 찬란과 진이 합쳐지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찬란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이기적인 면도 있고, 할말 다하는 것도 그렇고.”

사진제공 | Con.T


“(공소남)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 기나긴 찬란의 독백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작품의 명장면이자 이 작품이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쏟아내는 장면이죠. 이 독백을 하기 전에 어떤 생각이 드나요?”

“(란) 독백장면 직전부터 끝날 때까지 관객 분들이랑 - 다는 아니더라도 -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해요. 사실 조명 때문에 잘 안보이긴 하는데. ‘나한테 해주는 얘기같아’ 라는 생각이 드시게 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허공이 아니라 객석을 둘러보면서 시작합니다. 대사 한 글자 한 글자 잘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때그때 어떤 단어에 저도 훅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걸 미리 정해놓지 말자’고 하죠. (극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역사를 갖고, 그 말을 진솔 담백하게 전해드리기 위해 저로서는 애쓰고 있답니다.”

“(찬) 사실 배우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이런 장면을 만들기 힘들어요. 뮤지컬로 치면 프리마돈나가 긴 시간 한 곡을 집중해서 불러주는 장면이거든요. 연출에게 박란주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사실 연습실에서 이 장면을 많이 해보진 않았어요. 박란주 배우에게도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를 별로 안 드렸고요. ‘우리가 장면을 잘 쌓으면 찬란이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했던 건데 거기에 부합되게 박란주 배우가 잘 해줘서 감사할 뿐입니다.”

“(공소남) 이 독백장면은 뮤지컬로 치면 ‘캣츠’의 ‘메모리’와 같은 것이로군요.”

“(란) 오오~”

“(찬) 바로 그렇죠.”

“(란) 오늘부터 너무 부담될 거 같은데요 ㅎㅎ”

“(공소남) 박란주 배우의 출연작을 보면 은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무한동력’, ‘찌질의 역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인데요. 혹시 웹툰 마니아인가요?”

“(란) 와아, 정말 그러네요. 정말 일부러는 아니고요. 사실 전 웹툰을 즐겨보진 않아요. 옛날사람이라, 푸하하! 넘기는 맛이 좋기 때문에 대본도 파일보다는 종이로 된 게 좋더라고요. 그런데 작품이 들어오면서 관련된 웹툰을 찾아보는 일이 많아졌어요.”

“(공소남) 공연제작사 대표나 연출자들이 웹툰을 보다가 여주인공 얼굴로 박란주 배우가 자꾸 떠오르나 봅니다”

“(란) 제가 밋밋하게 생겨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무한동력’도 그렇고 ‘찌질의 역사’도 그렇고 순정만화 여주인공 같은 그림체는 아니거든요(웃음).”

“(찬) 굉장히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란) 푸하하하! 그래서 그런지 오버랩이 되시나 봐요. 그리기 쉬운 얼굴이라.”

“(공소남) 요즘같이 자극적인 시대에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간 요리 같은 이 작품을 사람들이 왜 좋아할까요?”

“(찬) 제가 평양냉면을 좋아하는데요. 그런 거 아닐까요? 자극적인 소재, 강렬한 미장센 … 이런 것들이 물론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자극하는 면이 있지만 세상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듯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니까요. 소외된 사람, 약자의 입장에서 한번쯤 바라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분명 대학로에서 자행되어져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공소남) 평양냉면의 비유가 확 와 닿네요.”

“(찬) 실은 지금 제가 먹고 싶어서, ㅎㅎ”

“(공소남) 이 작품에는 명대사, 입안에 머금고 싶은 대사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대사, 어떤 장면을 좋아하시나요?”

“(란) 너무 많아요. 제 대사뿐만 아니라 각 인물들 입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죠. 근데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요새는 극이 끝나고 관객 분들께 사인해드릴 때 써드리는 말이 ‘용기내길 잘 한 것 같습니다’예요. 무대 위 대사는 아니고 음향으로 나오는 제 속마음 같은 대사죠. 모두들 용기를 내셨으면 해서 이 대사를 써드려요. 저도 이 작품을 용기내서 하길 잘 한 거 같기도 하고. 요새는 이 대사입니다.”

“(찬) 전 진이가 찬란에게 해주는 대사요. ‘찬란아 너무 애쓰지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애쓰는 시대 같아요. 애를 쓰지 않으면 지탄을 받는. 저희라는 존재는 태어나서부터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어느 순간부터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거죠. 그런 아픈 시대, 외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대사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공소남) 찬란은 어느 타이밍, 어느 순간에서 도래에게 마음을 열었을까요?”

“(란) 마음을 연다는 것 자체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찬란이 도래라는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확 열게 되는 건 아주 늦다고 봅니다. 진실을 꾹꾹 담아서 남기는 문자가 있죠. 그 문자를 보고서 비로소 ‘요만큼’ 남은 틈까지 열어젖히는 ….”

“(공소남) 도래의 문자가 너무 길더라고요. 연출님 의도시죠?”

“(찬) 남자는 항상 여자를 우러러봐야하기 때문에요(웃음).”

사진제공 | Con.T


“(공소남) 후반에 가면 다섯 명의 연극부 부원들이 일제히 어깨동무를 하고 관객을 등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연극에서 참 보기 힘든 연출 아닌가’ 싶었는데 이게 원작의 장면 중 하나더군요. 이 장면을 굳이 무대에서 보여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찬) 그 장면이 좋았어요. 예전에 선배님 해주신 말씀이 있었죠. ‘배우는 등으로도 연기해야 돼’라고.”

“(란) 와아 ….”

“(공소남) 정말 명언 같습니다.”

“(찬) 어깨동무라는 거, 어려서 해보고 거의 안 해본 것 같아요. 손을 잡거나 팔짱은 껴도. 친구들끼리 어깨동무를 한다? 어깨동무 하고 있는 그 이미지가 크게 와 닿았어요. 어려서부터 죽마고우, 친구들의 우정. 그런 게 한 컷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연출자의 생각이었거든요. 과감한 선택이었죠.”

“(공소남) 긴 시간 동안 공소남TV를 위해 함께 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가 앞으로도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찬·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직접 보시고 위로를 받으시고, 이 이야기 가운데에서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보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인터뷰 영상은 네이버TV, VODA, 카카오TV의 ‘공소남TV’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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