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 15년을 돌아보다 - ㈜더가치 박종신 대표

입력 2011-02-18 17: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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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아키하바라, 중국에는 북경 중관촌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용산전자상가가 있다. 데스크탑 PC, 노트북,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국내에 유통되는 그 어떤 IT 기기라도 이곳에 가면 모두 접할 수 있다. 많은 상가가 밀집한 곳이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하다.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이 우리나라, 특히 서울에 오면 꼭 들려야 하는 관광지로도 손꼽히는 장소다. 어느새 용산전자상가는 그렇게 우리나라 IT 유통업계의 중심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용산전자상가에서 ‘용산맨’으로 오래도록 살아남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한집 건너마다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특화되지 않으면 존속하기 불가능한 곳이 또한 용산전자상가다. 그런 용산에서 15년 동안 노트북 유통/판매로 끊임 없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업체를 방문했다. 15년 전 노트북 유통 사업을 처음 시작한 뒤로 전자상가 매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연간 300억 매출을 올리고 있는 ㈜더가치 박종신 대표의 말을 들어 봤다.



실패, 그렇다고 넘어져 있지 않는다

노트북 연간 판매 30,000 대. 대형 매장이 아닌 이상 달성하기 만만치 않은 수치다. 제품당 가격이 높기 때문에 평균 100만 원으로 따져도 전체 총 매출액이 300억에 달하는 셈이다. 물론, 가전제품 대기업과 비교하면 큰 규모라 할 수 없겠지만, 용산에 매장을 운영하며 그만한 매출을 올리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노트북 유통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라며 입을 뗐다.

박 대표: 처음부터 노트북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다. 당시 LG IBM에 근무하면서 용산전자상가를 알게 되었고, 머지 않아 노트북 판매가 급증할 것 같은 느낌으로 지인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90년도 초반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서며 자리를 잡은 사업주를 1세대 용산맨이라 하면, 나는 ‘2세대’라 할 수 있다.

당시 용산전자상가는 지금처럼 규모가 크지 않았고, 1998년 즈음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PC방 시장과 김대중 정권 때의 IT 육성 정책에 힘입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박 대표: 처음 96년도에 용산에서 시작한 일은 대만의 메인보드 아이윌(iwill)을 수입해 판매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97년도 처음 L/C(Letter of Credit, 신용을 담보로 먼저 제품을 받고 추후 결제하는 방식)로 제품을 수입해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IMF가 터졌다. 당시 800원 환율로 제품을 받았는데, 그 후 환율이 1,600원까지 상승해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다(L/C로 제품을 받아 추후 대금을 지불할 때는 지불 시기의 환율로 계산해야 한다). 그 때 용산의 많은 업체들이 파산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이들 파산 업체는 재고품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값으로 덤핑 처리해야 했고, 결국 800원 환율로 들여온 제품을 절반 값에 팔면서 결제 대금은 1,600원 환율에 맞춰 줘야 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결국 그렇게 첫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박 대표: 그렇게 실패의 고배를 맛본 후 98년 들어 PC방 열풍이 한창일 때 용산의 데스크탑 PC 시장을 보며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노트북이었다. 당시에는 노트북을 취급하는 사업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용산의 노트북 시장을 선점할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이에 첫 사업 실패 후, 다시 한번 과감한 도전을 했다. 그때 공급한 노트북이 소니 바이오다.



노트북 판매 시작, 그만의 성공 노하우

그 때만해도 국내에 노트북 시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국내 제조사로 삼성전자, LG전자, 삼보(현 TG삼보)에서 제품을 내놓고 있었지만, 해외 노트북 제조사의 제품과 품질 차이가 현저했다. 또한 IBM, 소니 등 외산 노트북에 대한 평판이 높아 노트북이 필요한 이들은 직접 제품을 구하려고 발품을 팔기도 했다.

박 대표: 당시 소니라는 브랜드는 컴퓨터보다는 휴대용 카세트(워크맨)로 유명했기에, 소니 노트북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더군다나 노트북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 또한 낮아서 판매 접근이 쉽지 않았다. 삼성이나 LG, 삼보 노트북이라면 제조사에서 홍보/PR 활동을 진행하지만, 외국계 제조사 제품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매장처럼 단순한 판매 활동만으로는 이 바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으리라는 신념에 용산 업체로서는 드물게 홍보/마케팅 활동을 병행하려 했다.


용산전자상가 등의 제품 유통 업체가 제품 홍보와 마케팅 업무까지 처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품 판매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널리 알려야 판매가 급증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생각과 판단은 당시 시장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했다.

박 대표: 지금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활성화 되어 있던 ‘PC통신 동호회’를 적극 활용했다. 용산을 직접 찾는 소비자보다 PC통신 내 온라인 사용자가 컴퓨터 구매에 있어 절대적인 입심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였다. 이 때부터 소니 노트북 동호회에 신제품 판매 소식을 알리고, 할인 행사나 동호회 활동을 지원했다. PC통신이 당시의 새로운 청년 문화로 자리잡게 되자 판매고에 있어서도 점차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동호회 지원 활동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홍보 활동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사후지원, A/S다. 당시에는 해외 제조사가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지 않은 시절이기 때문에 고객지원 서비스를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한 현지 직수입 노트북이 대부분이라 키보드도 한글 자판이 아닌 일본어, 영어 자판 그대로를 판매할 수 밖에 없었다.

박 대표: 소니 노트북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고심했던 또 하나의 문제가 노트북 키보드였다. 키보드의 일본어 문자를 한글로 바꿔야 했던 것이다. 이에 우선 급한 대로, 키보드키캡을 하나씩 다 때어 마킹 제거기로 벗겨내고, 한글과 영어 문자 스티커를 구해 하나씩 하나씩 붙여서 다시 마킹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노트북 한 대당 꼬박 2시간씩 걸렸다. 모든 제품을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니 몇날 며칠을 꼬박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고장으로 인한 A/S 요청은 해당 제품을 일본으로 직접 보내서 수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니 노트북 판매가 호조를 보일 무렵, IBM이 제조하는 명품 노트북 씽크패드(2005년 레노버가 IBM 노트북 사업부를 인수해 지금은 레노버 씽크패드다)를 추가로 들여와 판매했다.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노트북을 접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직도 씽크패드 X 시리즈가 가장 ‘노트북다운 노트북’이라 생각한다. 씽크패드 공급을 시작한 후, 월 100대 정도였던 판매량이 월 2,000대를 넘어서는 순간 느꼈던 가슴 벅참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용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용산전자상가와 제조사의 관계

얼마 전 IT동아 기사에서도 소개했지만 제조사와 유통사의 관계는 파트너라 하기도, 경쟁사라 하기도 애매하다. 그렇다면 박 대표가 생각하는 두 업체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관련기사: http://it.donga.com/plan/4355/)

박 대표: 기사에 언급된 대로, 제조사가 유통사에게 ‘밀어내기’식으로 제품을 떠넘기는 관행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서로 상생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나는 지금까지 해외 노트북 제조사와 파트너로 사업을 제휴하며 어려움은 같이 해결하려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노트북 시장에서 제조사와 유통사는 향후 10년을 바라보고 함께 일을 한다. 이는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노트북 유통사도 그러하다. 때문에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조사와 유통사 간의 제휴 계약 건을 구두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증명 서류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 그리고 계약 내용도 면밀하게 검토하여 향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를 정확히 확인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제조사가 ‘갑’의 위치를 악용해 ‘을’의 유통사에게 수긍할 수 없는 정책을 강요하는 관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정책이나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향한 메시지, ‘보다 가치 있는 세상을 위해’

박 대표: 얼마 전, 노트북 유통을 시작해서 지은 ’노트박스’라는 사명을 ’더가치’로 바꿨다. 개인적으로 ‘노트박스’라는 이름이 노트북 전문 유통업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 마음에 들었지만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때는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앞으로는 보다 ‘가치’있는 제품을 다양하게 취급해 보고 싶은 생각에 ‘더 가치’로 변경했다. 이에 노트북뿐만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와 같은 모바일 기기도 접근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미 KT 대리점 운영도 시작했다. 용산전자상가도 이제는 생존을 위한 방법으로 ‘저렴한 가격에 많이 파는 것’에 고립될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가치’ 있는 세상을 향해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다.


태블릿 PC, 스마트폰은 이동통신사와의 연계가 중요한 제품이다. 이동통신사의 통신 기술 발전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제품군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트북 유통사로서 안정적인 단계에 이르러 편안한 수익 모델을 고수할 법한데, 박 대표는 다른 목표를 향해 기꺼이 도전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또한 그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실패한다 해도 주저 앉지 않을 것이라 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좌절했다면 지금의 ‘더 가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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