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계의 ‘악뮤’가 뜬 밤…이성준·이수진 아크기타듀오 콘서트[리뷰]

입력 2024-11-22 19: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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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기타 듀오가 작곡가 강경묵의 ‘두 대의 기타를 위한 도플갱어’를 연주하고 있다. 오빠 이성준(오른쪽)과 동생 이수진.                     사진제공 | 어라운드컬처

아크 기타 듀오가 작곡가 강경묵의 ‘두 대의 기타를 위한 도플갱어’를 연주하고 있다. 오빠 이성준(오른쪽)과 동생 이수진. 사진제공 | 어라운드컬처


겨울의 문턱을 밟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일신홀로 갔다. 
이성준, 이수진 남매 기타 듀오의 콘서트로, 기대감이 있었다. ‘일단’ 클래식기타 단독 연주회 자체가 희귀템인 데다, ‘이단’ 듀오의 프로그램에서 “한번 보여주마”라는 오기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작품을 연주할 때마다 남매 듀오는 마이크를 잡고 두런두런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말 토크 뮤직 콘서트 같은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오빠 이성준은 말을 잘 했다. 능청스럽기도 했다. 

이성준, 이수진 남매 듀오를 보고 있으니 불현듯 이들에게 ‘클래식 기타계의 악뮤’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어졌다. 아니, 틀림없이 누군가가 이미 붙여 놓았을 것이다.

사진제공 | 어라운드컬처

사진제공 | 어라운드컬처

아크 기타 듀오가 준비한 레퍼토리는 반가웠다. 1부는 20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인데, 작곡가들이 모두 기타리스트를 겸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심지어 첫 곡으로 연주한 ‘캘리포니아 브리즈(Breeze)’의 작곡가 앤드류 요크는 클래식 기타뿐만 아니라 일렉기타, 재즈기타, 류트 연주에도 능했다고 한다.

요크가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을 때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완성된 곡에서는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기후, 바다, 야자수의 냄새가 물씬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브리즈가 됐다는 얘기다.

1부 끝 곡인 브라질 작곡가 파울로 벨리나티의 ‘종고(Jongo)’에 대해 이성준이 들려준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두 사람은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대 음대 기타전공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데(서울대 음대는 매년 1명의 기타 전공자를 뽑는다. 심지어 거를 때도 있다), 당시 재학 중이던 동생 이수진이 군대에서 휴가 나온 오빠와 함께 ‘종고’를 연주하여 실내악 과목에서 전무후무한 A+ 학점을 받았다고 한다. 기타 바디를 손으로 두드리는 등 리듬이 흥겹고 화려한 곡이니 꼭 들어보시길. 추천곡이다.
곡의 외적인 화려함과 달리 이 곡은 원래 남미 흑인 노예들의 애환과 해방을 다룬 곡이라고 한다.

2부는 국내 작곡가들에게 위촉한 2곡이 연주됐다.
이용석의 ‘두 대의 기타를 위한 혼돈의 공간’과 강경묵의 ‘두 대의 기타를 위한 도플갱어’로,
강경묵의 작품은 음악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두 대의 기타 중 한 대의 튜닝을 일부러 어긋나게 만든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블루스 연주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시도지만, 조율이 나간 악기로 연주한다는 것은 확실히 클래식에서는 인치가 각인된 센티 측량자만큼이나 이례적일 것이다.

이 듀오는 기본적으로 이성준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반주는 이수진이 담당하는 식으로 파트를 나누고 있다. 물론 역할은 자주 체인지 된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오빠 이성준은 섬세하고 내면적인 곡을, 동생 이수진은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곡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는 연주하는 모습에서도 배어 나오는데, 별 움직임이 없는 이성준과 달리 이수진의 액션은 꽤 큰 편이다.
이성준이 기타를 꼭 껴안고 한 몸이 되는 혼연일체라면, 이수진의 경우 왕왕 기타가 연주자를 연주하고 있다. 이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다.

앙코르 연주를 마친 아크 기타 듀오가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어라운드컬처

앙코르 연주를 마친 아크 기타 듀오가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어라운드컬처

아크 기타 듀오의 이날 연주회는 현대 기타 음악의 새로운 재미와 향유법을 유익하게 공유한 자리였다. 현대음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쩔 수 없는 ‘현대적 거부감’이 12개의 현 사이로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갔다.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이렇게 부담없이 꿀떡꿀떡 삼켜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현대 독일 무조음악의 어법을 구사한 한스 베르너 헨체, 프랑스 특유의 인상주의 및 낭만주의 어법을 구사한 장 마리 레이몬드의 작품도 귀에 쉽게 감겼다. 이 작품들은 아크 기타 듀오에 의해 한국 초연됐다.

지금까지 듀오 연주에 치중해 온 두 사람은 최근 새롭게 영입한 2명의 후배 연주자와 함께 4인조 연주를 자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클래식 기타계 악뮤’의 2025년이 기대된다. 연주도 연주지만, 기타와 함께 마이크도 계속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이날, 꽤 재미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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