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위에서 곰장어 익는 소리와 소주 한 잔 털어놓고 지르는 ‘캬아’의 이중창을 들어보셨는지. 부산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핑계가 생겼다     AI 이미지

불판 위에서 곰장어 익는 소리와 소주 한 잔 털어놓고 지르는 ‘캬아’의 이중창을 들어보셨는지. 부산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핑계가 생겼다 AI 이미지



[스포츠동아 | 양형모 기자] 그렇다. 이 코너의 일차 목적은 여행이 아닐지 모른다. 공연이 먼저고, 여행은 그 김에 붙는다. 왜 그러냐고 묻지 마시라. 콘셉트가 그러니까.

‘공연한 여행’의 출발선은 늘 무대다(전시일 수도 있다). 어딘가를 보기 위해 떠나는 대신, 공연 하나를 찍어두고 최대한 가볍게 동선을 짠다. 그 주변에 들러볼 만한 곳, 밥 먹을 자리 한 곳을 얹는다. 그렇게 ‘공연한 하루’가 만들어진다. 첫 번째 여행지는 부산이다. 날짜도 박았다. 12월 31일 수요일. 2025년과 작별하는 날이다.

서울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지막날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산도 괜찮은 선택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공연이 있고(심지어 무료다!), 바다를 걷고, 밥을 먹고, KTX를 타고 올라와 2026년을 맞는다. 단순하고 또렷한 하루다.


12월 31일 오후 2시, 부산콘서트홀에서 클래식부산의 ‘아듀(ADIEU) 2025 송년 콘서트’가 열린다. 부산콘서트홀 개관 원년을 시민과 함께 마무리하는 송년 감사 무대다. 지휘는 김광현 클래식부산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맡고, ‘2025 클래식 부산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소프라노 김소율, 테너 이태흠, 첼리스트 홍승아가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프로그램도 친숙하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모음곡,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낯익은 오페라 아리아와 영화음악이 더해진다. 클래식이라고 해도 부담없이 귀로 넘길 수 있는 곡들이다.

이 공연이 더 반가운 건 전석 무료라는 점이다. 부산콘서트홀 누리집을 통해 사전 신청으로 좌석이 배정되고, 공연 당일 오전 11시부터는 현장에서도 선착순 발권이 이뤄진다. 박민정 클래식부산 대표는 “부산콘서트홀 개관 첫해를 시민과 함께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달맞이 언덕 문탠로드                 사진출처=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

달맞이 언덕 문탠로드 사진출처=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옆 동백섬에 위치한 누리마루 APEC하우스         사진출처=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옆 동백섬에 위치한 누리마루 APEC하우스 사진출처=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


공연이 끝나면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 될 것이다. 바로 저녁으로 넘어가기엔 아직 여백이 남아 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구상할 수 있는 장소로 달맞이길 문탠로드를 추천한다. 해운대 쪽으로 이동해 걷기 시작하면 클래식 공연의 여운이 자연스럽게 사색으로 이어진다. 색이 차분해진 겨울바다, 소나무 사이로 내다보이는 수평선이 당신의 생각하기를 도울 것이다.

부산 여행자들의 소울푸드, 돼지국밥               사진출처=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

부산 여행자들의 소울푸드, 돼지국밥 사진출처=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


문탠로드를 걷고 나면 하루는 거의 정리. 이제 남은 건 밥이다.
기본값은 부산여행자들의 소울푸드 돼지국밥이다. 해운대나 이동 동선 인근의 오래된 돼지국밥집에 앉아 뜨거운 국물 한 숟갈을 넘긴다. 연말이라고 특별한 메뉴를 찾을 필요 없다. 혼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날의 국밥은 배를 채우는 음식이라기보다 한 해를 닫는 역할에 가깝다.

국밥으로는 아쉽거나, 일행이 있다면 남포동으로 이동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해운대에서 바로 부산역으로 가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남포동으로 방향을 튼다. 광복로 큰길을 벗어나 국제시장 안쪽이나 보수동 방향 골목으로 들어가면 연말 밤치고는 차분한 공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곰장어 골목은 매우 부산다운 선택이다. 불판 위에서 곰장어 익는 소리와 소주 한 잔 털어놓고 지르는 ‘캬아’의 이중창. 오래 머물지 않아도 밤이 넉넉히 채워진다. 조금 더 조용한 식사를 원한다면 국제시장 안쪽 노포들도 괜찮다.

밥을 먹고 나면 부산역. KTX를 타고 올라오면 하루는 깔끔하게 접힐 것이다. 공연 하나, 걷기 좋은 길 하나, 맛있는 밥 한 끼.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한해 닫기가 아닐까. 공연한 여행이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