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의 로드 투 메이저리그 〈2〉 에피소드 2 : KBO로 컴백하는 메이저리거

입력 2024-06-13 11: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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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 경기가 열렸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에서 활약한 박찬호가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이한결 기자〉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 경기가 열렸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에서 활약한 박찬호가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이한결 기자〉




‘아저메’(아, 저 메이저리거인데요)를 넘어 ‘아저케’(아, 저 케이비오리거인데요)로!

박찬호 추신수 류현진의 금의환향은 한국 야구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미국 무대에서 성공을 경험하고 복귀하는 선수들이 국내 선수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전해주는 그들만의 노하우는 값으로 따지기 힘들 정도로 소중한 유산입니다.

과거에는 한국 특유의 수직적인 선후배 문화, 코칭스태프와 선수의 상명하복 문화가 있었다면 박찬호라는 대선배의 귀환과 최근 추신수, 류현진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과 솔선수범이 한국 프로야구 팀 분위기를 조화롭고 부드럽게 변화시키는데 큰 몫을 할 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단순히 MLB의 체계와 문화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야구만의 전통과 문화의 정체성은 가져가면서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긍정적인 면들을 취사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뒤 KBO리그로 복귀한 추신수(오른쪽)가 경기 전 SSG 하재훈이 추신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뒤 KBO리그로 복귀한 추신수(오른쪽)가 경기 전 SSG 하재훈이 추신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내가 뛰는 리그에 대한 존중이 먼저

저 역시 한국에서 선수 시절, ‘아저메’(아, 저 메이저리거인데요)라는 유쾌하지 못한 별명이 붙은 적이 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살벌한 경쟁 구도 안에서 나에게 맞는 나만의 루틴을 고수하고 지키는 방법을 선호했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예를 들면 공을 던진 후에 아이싱을 하는 단순한 과정 역시 제 판단에 의해 스스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보니 전혀 다른 문화였습니다. 일단 무엇이든 대선배가 먼저 한 후에 중고참이 하고, 신예 선수들은 선배들을 먼저 보필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처음에는 쉽게 따르지 못했고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팀 내의 문화와 관계의 존중에 대한 부분은 오히려 제가 한국 야구에 돌아와서 다시 배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되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데 있어서는 선후배를 떠나서 동료애를 가지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난 3월20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가 열렸다. 다저스에서 활약한 박찬호와 한화 류현진(오른쪽)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난 3월20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가 열렸다. 다저스에서 활약한 박찬호와 한화 류현진(오른쪽)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류현진은 이름 자체만으로도 최고 레벨입니다. 하지만 현역 메이저리그의 에이스 선수들이 KBO 마운드에서 던진다고 해도 100%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잘 던질 때도, 못 던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류현진은 결국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것입니다. 충분히 10승을 할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미 팬들의 기대치는 15승 이상에 맞춰져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팀 서포트의 영역입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서의 류현진은 LA 다저스에서나 토론토에서도 메이저리그 수비수들의 뒷받침이 잘 됐습니다. 류현진은 강속구 투수가 아니라 맞춰 잡는 선수입니다. 그만큼 팀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팬과 선수, 꿈나무를 대하는 메이저리그

메이저리거의 귀환으로 한국 야구팬들의 관심도는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리그 활성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팬들을 향한 구단과 선수의 자세입니다.

한때,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팬 서비스 자세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을 외면해 버리는 프로선수들의 모습에 야구팬들은 적잖은 실망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다행이 KBO와 선수들의 반성과 노력으로 이제는 다시 사랑받는 프로야구를 위해 모두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분위기입니다. 
1997년 17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했을 당시의 봉중근. 봉중근은 1997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36타수18안타 타율 0.500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왼손 투수로 140km대의 빠른 볼로 스카우트의 마음을 잡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사진제공 ㅣ 봉중근

1997년 17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했을 당시의 봉중근. 봉중근은 1997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36타수18안타 타율 0.500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왼손 투수로 140km대의 빠른 볼로 스카우트의 마음을 잡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사진제공 ㅣ 봉중근


팬이 없이는 프로스포츠도 없습니다. 팬들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미국 동부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이 직접 찾아와 선수 입장 게이트에서 저를 기다리시다가 준비해온 김치, 라면 등을 전달해 주셨을 때의 감동과 행복감을 저는 기억합니다. 선수 생활 평생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당시에는 한국 음식을 구하기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를 잘 알고 계신 한국 식당을 운영하시는 교민께서 한국 음식을 무료로 지원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한국 야구 선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팬들은 일면식도 없던 저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보여주셨습니다. 

프로 선수에게는 단순한 팬 서비스가 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 어린이 팬과 선수가 캐치볼을 하는 문화는 이러한 뿌리 깊은 팬서비스 정신에서 출발합니다. 사인과 사진도 소중하지만 세심한 배려를 통해서 누군가의 인생에 각인되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가 야구 꿈나무를 대하는 시스템과 문화 역시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스포츠 특성화 사립학교 IMG아카데미의 경우, 졸업생들이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IMG아카데이 출신들은 비시즌에 개인연습을 위해 학교로 돌아와 후배들과 훈련하며 멘토를 한다. 이는 미국 야구문화의 전형이다. 사진은 전미대회 우승을 한 IMG아카데미 출신들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후배들은 선배들과의 지속적인 지원과 교류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사진제공 ㅣ 봉중근

IMG아카데이 출신들은 비시즌에 개인연습을 위해 학교로 돌아와 후배들과 훈련하며 멘토를 한다. 이는 미국 야구문화의 전형이다. 사진은 전미대회 우승을 한 IMG아카데미 출신들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후배들은 선배들과의 지속적인 지원과 교류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사진제공 ㅣ 봉중근


메이저리거가 된 졸업생 선배는 비시즌에 개인 연습을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옵니다. 아카데미의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 자체가 살아있는 교육이자 비전이 됩니다. 메이저리거가 된 선수들은 자신의 후배들에게 스스로 훈련하는 모습을 오픈하며 멘토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학생들은 선배 선수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의 훈련 루틴을 가까이 보면서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합니다. 

메이저리그 차원에서 유소년 야구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은 광범위하면서도 디테일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비시즌에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미국은 넓고 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선수와 유소년 스포츠 꿈나무들의 교육 프로그램,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이러한 봉사 프로그램을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팀 역시 이러한 사회 환원 정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한국판 ‘오타니’를 키우기 위한 전제조건

한국의 경우, 유소년팀과 중․고등학교 야구팀을 모두 합쳐도 300여개 팀이 안 됩니다. 일본은 5000개가 넘습니다. KBO와 프로야구팀들이 유소년 야구 지원을 위한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유소년 야구의 풀을 더 넓히고,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 육성할 뿐만 아니라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운동을 하지 못할 위기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더욱 적극적으로 구체화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가능성이 있는 인재들이 여전히 많고 한국 야구에서도 오타니와 같은 선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봉중근/전 국가대표 투수 IMG아카데미 야구 보딩스쿨 코치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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