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동. 파리|뉴시스
펜싱 단체전에선 4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뤄 3명이 주전으로 뛰고, 나머지 한 명은 후보로 피스트 뒤편에 대기한다.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기 위해선 한 번이라도 피스트에 올라야 하기에 후보 선수가 출격할 타이밍을 잡는 게 매우 중요하다.
2012런던올림픽부터 2024파리올림픽까지(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로테이션으로 미개최)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3연패를 달성한 대한민국도 후보 선수의 활약에 큰 힘을 얻었다. 2020도쿄올림픽 결승에선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오상욱(대전광역시청)-김정환(KBS 해설위원)을 뒷받침한 김준호(KBS 해설위원), 이번 파리올림픽에선 오상욱-구본길-박상원(대전광역시청)의 히든카드로 나선 도경동(국군체육부대)이 주연 부럽지 않은 조연이었다.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한 김준호. 뉴시스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겠지만, 메달 색깔이 걸려있는 결승전에서 후보 선수의 중압감은 상상 이상이다. 함께 시상대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경기에 나서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분석이 덜 된 까닭에 히든카드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기존 멤버들이 만들어놓은 흐름을 깨트릴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원 찬스 맨’이다. 본인의 차례가 올 때까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상대 선수의 패턴을 분석하는 작업은 필수다.
김준호와 도경동은 이 중압감을 이겨낸 것을 넘어 대표팀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준호는 이탈리아와 도쿄올림픽 결승에서 35-20으로 앞선 8라운드에 등장해 5-1의 압도적 스코어를 더했다. 도경동은 더 압박이 큰 상황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발휘했다. 30-29로 앞선 7라운드에 구본길 대신 피스트에 올라 1점도 내주지 않고 5연속 득점해 승부를 갈랐다. 한국의 결승 상대였던 헝가리는 후보 선수로 등록한 차나드 제메시를 경기에 내세우지 않았다.
선수와 지도자들은 “단체전과 개인전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의 실력뿐 아니라 상대 선수와 매치업을 고려한 배치 등 팀플레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번 피스트에 오를 때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후보 선수의 역할도 여기에 포함된다. 남자사브르대표팀은 그 디테일까지 잡은 것이다. 괜히 세계 최강이 아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