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아버지는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입력 2023-02-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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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가족을 위해 일어서야 했던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을 위한 응원이 담긴 전시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서울관악 하나님의 교회 전시장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방문객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하나님의 교회 주최,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
-서울·부산·대전 이어 23일 광주서 개최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도 3월 대구서 열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 어머니는 묻어두었던 이야기 하나를 꺼내셨다.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또 딸을 낳았다는 죄책감과 누구 하나라도 배 곯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큰 결심을 했다고. 그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다섯째를 부잣집에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으셨단다. 그때 아버지는 딱 한마디만 하셨다고 했다. “줄 딸 없다.” … 아버지의 한마디가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유는, 생전에 아버지 가슴속에 숱하게 묻어두었을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말들을 끝내 듣지 못한 까닭이다.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 작품 중에서)》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 그중에서도 침묵에 가려진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그렇다. 그런 아버지의 진심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이하 하나님의 교회)가 주최하고 ㈜멜기세덱출판사가 주관한 ‘진심(眞心), 아버지를 읽다’展(이하 아버지전)이다. 2019년 서울과 부산에서 열렸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전시가 지난해 9월 서울 관악구, 대전 서구에서 재개관했다.

전시에는 팬데믹으로 더 무거워진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가족을 위해 다시 일어서는 모든 아버지에 대한 응원이 담겨 있다. 어느새 13만 명이 관람했다. 23일 광주광역시에서, 4월 13일에는 경남 창원에서 개관한다.


●아버지의 일상 언어로 풀어낸 다섯 테마

전시는 아버지의 일상어를 표제로 한 5개 테마관으로 구성된다. 1관부터 5관까지 ‘아버지 왔다’, ‘나는 됐다’, ‘ …. ’, ‘아비란 그런 거지’, ‘잃은 자를 찾아 왔노라’로 이어지며 아버지의 일상 속 묵묵한 속내를 보여준다.

현대사의 격동을 헤쳐온 아버지들의 삶의 궤적을 담아낸 글과 사진, 소품 180여 점이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시인 나태주, 정호승, 하청호, 만화가 이현세 등 기성 작가의 글과 멜기세덱출판사에 투고된 독자들의 사연, 사진 등이 어우러졌다.

파독(派獨) 광부 시기(1963), 베트남전 참전(1964∼1973), 중동 건설 붐(1970∼1980년대), 외환위기(1997) 등 굵직한 사건을 관통한 아버지들의 이야기,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거사 이틀 전 자녀에게 남긴 편지 등도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이 제공한 소품 가운데, 막내딸과 손주의 아토피를 치료하고자 임종 전까지 수제 비누를 만든 아버지의 사연은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 <국제시장>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기증한 개인 소장품도 볼 수 있다.


●감동 입소문… 각계각층 호평



‘진심, 아버지를 읽다’라는 전시회 제목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 그 진심을 헤아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사실은 매 순간 사랑을 말하고 있던 아버지의 진심을 만난 관객들은 가슴 한편이 묵직해져 전시장을 나선다. 아버지전을 통해 그 사랑을 발견한 관람객 다수가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지인을 초청해 재관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N차 관람(반복 관람)’까지 이어진다는 후문이다.

서울에 사는 이미영(53) 씨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를 보고 삭막한 세상에서 사랑과 온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전의 오정애(61) 씨는 “그동안 잊고 있던 아버지의 추억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이런 자리가 없었다면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며 주최 측에 고마워했다.

박종윤(30대)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도 퇴근할 때면 종이봉투에 통닭 한마리를 꼭 사 들고 집에 오셨다. 오늘따라 그 따뜻함이 더 그립다”고 회상했다. 이가영(10대) 학생은 “평소 그냥 지나쳤던 아버지의 모습이 상기되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지친 아버지를 위로해드리는 딸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아버지전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고 포항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찾아온 노신사도 있었다. 그는 “부모님의 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 찾아왔는데 전시회에서 답을 찾았다.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한 미술협회 관계자는 “후세에도 영원히 남을 전시로 전 세계에 퍼지면 좋겠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展 〈유년의 해 질 녘〉 김용석作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展, 가족애 회복에 기여

아버지전에 앞서 하나님의 교회가 10년간 순회해온 전시가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지고지순한 어머니의 사랑을 되새기며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회복하려는 취지로 시작된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展(이하 어머니전)이다.

문병란, 김초혜, 허형만 등 여러 기성 문인과 일반인들의 글,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과 각종 소품 등 150여 점 작품에 바다같이 넓고 깊은 어머니의 사랑을 담았다. 2013년 6월 서울 강남에서 문을 연 후 전국에서 개관 요청이 쇄도해 전시를 이어가는 동안 관람객 82만 명이 다녀갔다. 팬데믹 이후 재개된 전시는 현재 경기 의정부와 경남 창원에서 열리고 있다. 3월 3일 대구, 4월 20일에는 전북 전주에서 개관한다.

어머니전에 다녀간 관람객들은 일상에서 일어난 변화를 주최 측에 전해오기도 한다. 제자의 초청으로 전시를 보고 돌아간 고교 교사는 “한 평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 당장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다”며 제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경기도의 한 공무원은 “어머니전을 보고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행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나이와 직업, 성별은 물론 국경까지 초월한 감동이 퍼지면서 미국과 칠레, 페루 등지에서도 어머니전이 열렸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자치구청은 어머니전이 지역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공로를 인정해 하나님의 교회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를 포함해 국내외 기관 등에서 표창과 감사패가 30회 답지했다.

아버지전과 어머니전은 사랑이 메말라가는 오늘날 지친 현대인을 따뜻한 가족애로 보듬어준다. 두 전시회 모두 전국에서 개관 요청이 계속되고 있어 올해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순회할 전망이다. 관람료는 무료, 토요일은 휴관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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