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geterian’ 한강 작기의 ‘채식주의자’ 영문판 커버. 사진제공ㅣ호가스 프레스

‘The vegeterian’ 한강 작기의 ‘채식주의자’ 영문판 커버. 사진제공ㅣ호가스 프레스


한국 문학이 영어권에서 ‘핫’하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돼 해외 문학 시장에서 잇따라 주목받고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이후 편혜영, 정보라 등 새로운 이름들이 영미권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 소식을 알렸다. K-컬처와 K-푸드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한국 문화가 이제는 K-문학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수출상담관 전경. 사진제공ㅣ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난해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수출상담관 전경. 사진제공ㅣ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국제 출판계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K-문학’을 조명하는 특별 세션이 열렸다. 특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더해지며 현장 분위기는 한층 뜨거웠다. 국내 대형 출판사들도 글로벌 마케팅 전담팀을 꾸리고, 해외 에이전시와 협력해 판권 수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같은 K-문학 붐의 이면에는 번역가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가인 데버라 스미스에게도 관심이 집중됐다. 1987년생인 그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런던대 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인 2012년, ‘채식주의자’ 번역을 시작해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한강과 공동 수상했다.

스미스는 ‘소주’, ‘선생님’ 같은 단어를 음차 그대로 옮기며 한국 고유 문화를 살리려 했다. 그는 “영어에 없는 뉘앙스를 옮길 때 번역가의 창의성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2015년에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겠다며 독립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를 설립했다. 이후 한강 외에도 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해외에 알리고 있다.

시장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올해 출판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년보다 27억6700만 원 늘어난 355억9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국내 독서 생태계 기반 강화와 함께, 도서 해외 수출 프로그램도 대폭 확대해 제2의 한강을 배출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나섰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한국 문학 특유의 섬세하고 내밀한 정서가 다른 문화권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려면, 단순한 번역을 넘어선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일시적인 작가 중심 주목을 넘어서, 한국 문학 전체의 지속적인 해외 진출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도서 수출 확대를 위해 국가별 수출 코디네이터를 운영하고, 번역·감수비와 포트폴리오 제작을 지원하는 등 체계적인 ‘K-문학 브랜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한강 작가 코너. 사진제공ㅣ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난해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한강 작가 코너. 사진제공ㅣ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문가들은 이러한 노력이 일회성 붐에 그치지 않고,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사에 지속적으로 자리 잡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K-문학은 지금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세계 무대를 두드리고 있다. 한 편의 소설, 한 권의 책이 다른 언어와 다른 삶을 만나는 순간, 문화의 진정한 힘이 드러난다. 이제는 ‘읽히는 한국’을 넘어 ‘기억되는 한국’을 향한 길이 열리고 있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