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병원·부산대병원·백병원 등 권역별 전문의 팀 구성 ‘대성공’
소속 병원 달라도 모바일로 환자 공유…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가 관건”
심근경색·뇌출혈 등 골든타임 사수… 의정 갈등 속 ‘필수의료’ 대안 부상
부산온병원 전경.

부산온병원 전경.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 장기화로 필수의료 현장의 인력난이 극심한 가운데, 부산 지역 병원들이 병원 간 벽을 허물고 전문의를 공유하는 ‘인적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응급 환자들의 생명을 연이어 구해내 주목받고 있다.

부산 온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시범 시행한 ‘심뇌혈관질환 인적네트워크’ 사업이 현장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이 제도는 심장내과, 신경외과 등 필수과 전문의를 권역 단위로 묶어 하나의 ‘원팀(One Team)’처럼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환자 발생 시 모바일 플랫폼으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고, 소속 병원과 관계없이 가장 빨리 시술할 수 있는 의사가 치료를 맡는 방식이다.

제도의 효과는 긴박한 생사의 현장에서 증명됐다. 지난해 10월, 극심한 두통으로 영도구의 한 병원을 찾은 A씨(47)는 검사 결과 거미막하 출혈이 확인됐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심뇌혈관 인적네트워크’ 단체 대화방에 전원 요청이 떴다.

알림을 확인한 온병원 최재영 뇌혈관센터장이 즉시 수락 의사를 밝혔고, A씨는 20분 만에 이송돼 뇌혈관 조영술과 코일 색전술을 받았다. 시술 중 혈전이 발생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신속한 대처 덕분에 A씨는 한 달 뒤 건강하게 퇴원했다.

지난해 12월 흉통을 호소한 B씨(65)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심근경색이 의심되자 의료진은 즉시 네트워크를 가동했고, 온병원 이현국 심혈관센터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막힌 혈관을 뚫어냈다. 현장 의료진들은 ‘환자가 어느 병원 소속이냐보다 누가 가장 빨리 치료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동헌 온병원장(전 부산대병원장)은 ‘골든타임을 다투는 심뇌혈관질환 분야에서 의사가 부족한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병원 간 인력 공유’라며 ‘지역 병원들이 서로 전문의를 빌려 쓰는 구조가 정착되어야만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시범사업 평가 결과, 온병원이 포함된 팀은 성과를 인정받아 약 1180만원의 사후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대한종합병원협회는 이번 사업에 대해 ‘기존의 무한 경쟁 구조를 넘어선 한국형 필수의료의 실험실’이라고 호평했다. 다만 ‘예산 규모가 작고 사업 지속 여부가 불확실해 의료진의 안정적 참여가 어렵다’며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과 대형병원 쏠림 방지 대책을 숙제로 남겼다.

부산 | 김태현 스포츠동아 기자 localbuk@donga.com


김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