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째 한 이불…아직도 “자기야~”
안하리라 그토록 다짐했건만 또 배구 얘기만 했다. 화제를 돌렸다. 코트가 아닌 집에서의 신 감독이 궁금했다. “지금껏 한 번도 ‘여보’라고 부르지 못했어요. ‘자기’라고 하는데 그런대로(?) 행복한 편이에요.” 전씨의 표현이다.
시즌이 되면 5개월 이상 가정을 포기해야만 하는 감독의 숙명. “가장 불행한 여자가 세끼를 꼬박 집에서 먹는 남편을 둔 사람”이라고 타박하는 신 감독에게 전씨는 “말은 저래도 가정적이죠. 여행도, 외식도 자주 하고…. 딸들은 연습장의 아빠 모습을 이해못해요. 매섭고 날카롭고. 낯설다는 말이 맞아요. 지금도 아빠와 말같은 덩치의 딸들이 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래요..” 흐뭇해하던 신 감독 대뜸 한마디 던진다. “(딸들이)다 용돈 뜯어내려는 거야.”
쇼킹한 스토리도 있다. 신 감독은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유독 가정용품 및 식품 코너를 좋아한다. 옷을 고르다가도 슬쩍 사라져 전기 밥솥을 만지고 있다는 게 전씨의 설명.
“주방 용품 마니아예요. 얼마전엔 떡 만드는 기계를 사왔는데 한번도 쓰지 못했죠. 사먹을 수 있는데 왜 저리 이상한 취미를 갖고 있는지.” 발끈한 신 감독. “내가 집을 너무 비웠나. 편하게만 살아서 그래. 그 좋은 걸 왜 사용 안해?”
내친김에 전씨는 재미있는 얘기를 더해줬다. 신 감독은 자주 ‘오늘의 명언’을 선수들과 전씨에게 전해준단다. 인터뷰전 숙소를 잠시 다녀온 신 감독은 이날도 어김없이 한 장 뽑아왔다. ‘남편은 밖에서 데려온 아들.’ 멋쩍어진 신 감독은 벌개진 얼굴로 “내가 그만큼 당신한테 소중하다는거야. 그냥 잘해줄 것을, 왜 고자질해?”
천생연분. 재미있는 가족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코트를 응시하던 여우, 예상을 뒤엎는 신 감독과 세 가족의 알콩달콩 이야기. 어색하지 않은 부조화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스토리는 앞으로 계속된다. 쭈∼욱.
신치용 감독...?
1955년 경남 거제에서 출생한 신치용 감독은 어릴적 마도로스(선원)를 꿈꿨지만 배구계에 입문했다. 성지공고를 거쳐 성균관대(74학번)를 졸업한 신 감독은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뒤 80년부터 95년까지 한국전력 코치, 91년부터 94년까지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했다.
95년 신생팀 삼성화재로 옮겨 97년부터 2005년까지 겨울리그 9연패 신화를 이뤘고, 2002년엔 대표팀 감독을 맡아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V리그를 또 한번 평정함으로서 10번째 우승 금자탑을 쌓았다. 농구 선수 출신 전미애 씨와의 사이에 혜림(26), 혜인(21) 2녀를 뒀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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