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프리토킹]메이저리그의작은거인들

입력 2008-11-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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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추가 맵다.’ 사실 이 말은 현대야구에서 좀처럼 통하기 힘든 속설이 됐다. 갈수록 작은 선수들은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아마추어 드래프트 때부터 스카우트들의 시야 밖으로 벗어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90년대 후반 눈앞에서 만난 그렉 매덕스의 신장을 보고 적잖게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프로필에 기재된 그의 신장은 6피트로 183cm가량이다. 하지만 그를 실제로 만나보기 전 TV 화면으로 본 그의 모습은 보통 키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고, 운동선수들이 흔히 행하는(?) 신장 늘리기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놀람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전에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를 꼼꼼히 체크하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곁에서 곁눈질로 그가 체크하는 사항을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평가 부분은 비밀이라며 보여주지 않았지만 신체조건을 체크하는 사항은 실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란 표현이 적합했고, 수십 가지에 달하는 선수의 조건을 기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발목의 두께까지 빼놓지 않고 적고 있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조건이면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했고 실제로 그런 선수들에게 높은 영입 순위를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거인’들은 점점 더 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보스턴 인내로 키워낸 페드로이아 단신 극복, 데뷔 2년만에 AL MVP 올해 아메리칸리그(AL) MVP에 뽑힌 더스틴 페드로이아(보스턴 레드삭스)는 키 175cm로 메이저리그 야수의 평균신장보다 10cm 이상 작은 선수다. 지난해 데뷔와 동시에 신인왕, 바로 이듬해인 올해 MVP에 오르며 엘리트코스에 진입한 블루칩 선수다. 1982년 신인왕, 이듬해 MVP를 수상한 ‘철인’ 칼 립켄 주니어와 같은 코스로 접어든 선수이니 페드로이아의 성장은 경이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사실 그런 그가 고마움을 표시해야할 선수는 역시 170cm의 초단신(?) 데이빗 엑스타인일 수도 있다. 보스턴 마이너 시스템의 선배였고 역시 유망주로 꼽혔던 엑스타인은 고질인 신장 이상과 작은 체격으로 결국 방출됐지만 LA 에인절스가 영입해 견고한 유격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페드로이아가 지난해 초반 2할 언저리의 타율로 극심한 부진에 빠졌을 때 우승후보인 보스턴에서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페드로이아에게 기회를 줬다. 그 이면에는 예전 엑스타인에 대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구단 수뇌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NL사이영상 린스컴도 180cm 슈퍼사이즈 틈새서 거인 우뚝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에 빛나는 팀 린스컴(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역시 키가 180cm에 불과하다. 국내 프로야구 기준으로도 큰 축에 들어가지 못하는 단신의 메이저리거다. 100마일에 가까운 강속구를 아마추어 시절부터 뿌렸지만 몸을 비트는 특이한 투구폼과 왜소한(?) 체격이 문제가 됐다. 그를 드래프트하려는 팀들은 거의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미래의 마무리감 정도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의 소속팀 샌프란시스코는 선발투수로 그를 바라봤고 결국 데뷔 2년 만에 사이영상의 주인공이 됐다. 린스컴 역시 소속팀은 다르지만 휴스턴의 에이스 로이 오스월트를 연상시킨다. 183cm의 오스월트는 96년 드래프트 당시 좋은 공을 가진 투수였지만 신체조건의 불리함으로 23라운드에 지명될 정도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8년 동안 20승 2차례를 포함, 벌써 통산 129승을 거두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꾸준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 180cm로 메이저리그 투수 기준으로는 단신에 속한다. LA 다저스는 내야를 보강하겠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페드로가 에이스 투수였던 형 라몬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진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93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들라이노 드실즈와 맞트레이드하고 말았다. 이는 사상 최악의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MVP·사이영상 최근 20년 중 180cm 밑도는 선수는 6명 뿐 과거에도 물론 단신으로 빼어난 성적을 올린 선수들이 많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좌투수 최다승(363승)을 기록한 워렌 스판은 183cm였다. 1960년대 양키스의 에이스 화이티 포드도 178cm로 작았고, 한 시즌 최다타점(191) 기록을 아직도 보유 중인 핵 윌슨은 168cm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뛰던 시대는 최소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서 80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시와 현재의 메이저리그 평균신장 차이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무관심 딛고 실력만으로 생존 ML의 진정한 블루칩 자리매김 최근 20년간의 시즌 MVP나 사이영상 수상자 중에 180cm를 넘지 않는 신장의 소유자는 올해 페드로이아를 포함해 2002년 미겔 테하다(178cm), 2001년 스즈키 이치로(175cm), 1999년 이반 로드리게스(175cm), 1991년 테리 펜들턴(175cm), 1990년 리키 헨더슨(178cm) 등 6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중남미계와 동양계를 제외하면 페드로이아와 펜들턴이 유이하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이들은 자신보다 월등한 체격 조건을 가진 선수들을 실력으로 압도했다. 스카우트의 무관심을 딛고 일어난, 갈수록 보기 어려운 메이저리그의 ‘작은 거인’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낸다. 송재우 | 메이저리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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