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용,“프리스타일축구, 12년내올림픽종목만들겠다”

입력 2008-12-13 07:41: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프리스타일 축구, 12년 안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만들겠다." 세계 프리스타일 축구계의 대부 우희용씨가 프리스타일 축구의 획기적인 발전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우희용(44)씨는 12일 "프리스타일 축구를 앞으로 12년 안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만들겠다. 또한 프리스타일 축구 세계선수권대회를 발전시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 견줄만한 대회로 만들고 싶다"는 큰 포부를 밝혔다. 프리스타일 축구란 헤딩, 트래핑, 드리블 등 각종 축구 기술을 이용해 묘기를 펼치는 것을 말한다. 이 종목을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 바로 우희용씨이다. 우희용씨는 최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렸던 세계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뒤 큰 감동을 받았다. 전 세계 44개국의 프리스타일 축구 챔피언들은 11월16일부터 18일까지 브라질 상파울루에 모여 기량을 겨뤘다. 세계적인 에너지 드링크사 ´레드불´이 주최한 이 대회의 명칭은 ´프리스타일 축구 월드 파이널 인 상파울루´였다. 레드불사는 44개국 챔피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누가 심사위원으로 초청됐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했고, 그 결과 ´미스터 우´ 우희용씨가 선정됐다. 우희용씨는 이 대회에서 44명 중 16강에 출전할 16명을 추리는 역할을 맡았다. 우희용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19년 동안 이 일을 해온 보람이 있었다. 원래 각 지역 대회는 20명 내외를 초청하는 데 그치지만 상파울루 대회는 명실상부한 세계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세월 내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스포츠문화 콘텐츠로의 발전 가능성을 봤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우희용씨는 1989년 2월, 5시간6분30초 동안 헤딩을 하면서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아 기네스북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고교 3학년 때 무릎 골절을 당해 마음 속 깊이 품어왔던 축구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6년의 재활 치료를 거친 뒤, 대기록을 수립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기록을 세운 후 우희용씨는 1990이탈리아월드컵 관전을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고, 이후 본격적으로 외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독일에서 6년, 미국에서 6년, 영국에서 6년 동안 명성을 날리다가 지난 6월 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희용씨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를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 세계프리스타일축구연맹(WFFF) 본부를 두고, 프리스타일 축구의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 서류 제출은 끝났고 내년 1월이면 사단법인이 된다"고 말했다. 우희용씨는 지난 2004년에 이미 영국에서 세계연맹을 설립했다. 우희용씨를 영웅시하고 있는 영국 축구계는 세계연맹의 장(長)인 그에게 귀화를 권유하고 영국에서 활동할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조국을 택했다. 우희용씨는 "한국에도 프리스타일 축구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회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 프리스타일 축구의 발전을 위해 할 일이 많다며 의욕을 보였다. 우희용씨는 1997년 세계 최초의 프리스타일 축구 웹사이트 우사커닷컴(woosoccer.com)을 개설, 10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뉴시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