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두산신예투수홍상삼

입력 2009-05-19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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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루키“2연승은20승신호탄”
“홍삼…상? 홍…상삼이죠∼.” 발음 좋은 해설자도 말하기 전에 침 한 번 삼키게 하는 주인공이 있다. 두산의 신예투수 홍상삼(19). 이름이 하도 특이해 한때 덕아웃에서는 ‘이름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홍상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프로 1군 데뷔전이었던 2일 사직 롯데전과 두번째 선발 등판한 8일 잠실 한화전에서 파죽지세 2연승을 올렸다. 14일 목동 히어로즈전에서는 4.1이닝 4실점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눈여겨 볼만한 ‘프로 2년생신인’ 투수의 등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만났다. 겉모습과 달리 뒤끝 없고 활달한 성격이라는 첩보(?)대로 홍상삼은 밝았다. 4차원 끼까지 유감없이 발휘한 그는 “내 목표는 20승 투수가 되는 것”이라며 “꿈은 원래 크게 잡아야 한다”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파죽지세 2연승

“누구야?” 2일 사직구장. 야구팬들은 이름부터 생소한 그를 보고 의아해했다. 이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른 홍상삼은 5이닝 7탈삼진 1실점으로 롯데를 무너뜨렸다.

8일 잠실 한화전, 그가 다시 마운드에 섰다. 팀이 4연패 늪에 빠져 승률 5할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위기상황. 상대는 디아즈-김태균-이범호로 이어지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었다. 하지만 홍상삼은 두 번째 승리를 거머쥐었다. 홀연히 나타나 뚝딱 2연승을 해치운 홍상삼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14일 목동 히어로즈전을 앞둔 그의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워낙 저질러놓은(?) 일이 많아 주변의 기대가 컸다. “5게임은 뛰어봐야 돼.” 김경문 감독은 홍상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우려했다.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2회 브룸바에게 솔로홈런을 맞고 무너진 그는 4회 이택근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한 뒤 폭투 2개로 어이없는 실점을 했다.

다음날 얼굴을 맞댄 홍상삼은 “폭투…”라며 머리를 감쌌다. 컨디션에 따라 제구력이 들쭉날쭉한 게 자신의 단점이라고 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체력. 처음 경험하는 1군 선발 로테이션이 ‘사실상 신인’인 그에게는 아직 버거운 모양이다. “한화전부터 힘이 부치더라고요. 던질수록 팔이 자꾸 내려가고. 확실히 체력이 관건인 것 같아요. 앞으로 운동량을 늘리려고요.”

○야구를 포기할 뻔 했던 2군 시절

두 번 쾌투 뒤 한번의 ‘망가짐.’ 그러나 그의 심리상태는 예상보다 괜찮아보였다. 그가 이처럼 ‘담담’을 넘어 ‘덤덤’할 수 있는 건 야구를 포기하려 했던 2군 시절 때문이다.

2년전, 프로 스카우트들은 최고 구속 151km의 직구와 130km대 슬라이더를 던지는 충암고 3학년 홍상삼을 주목했다. 두산 스카우트 이복근 차장은 “워낙 기량이 좋은 선수여서 1차 지명 후보에 올랐지만 팔꿈치가 안 좋고 마운드에서 다소 산만한다는 평가 때문에 2차로 내려갔다”고 귀띔했다.

홍상삼은 결국 2008년 2차 지명 3순위(전체 20순위)로 두산에 입단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프로팀에 들어왔지만 쟁쟁한 선배들 때문에 설 자리가 좁았다. 설상가상으로 좋지 않던 팔꿈치가 악화돼 수술을 받았다. 지난 1년 2군에 머무는 동안 홍상삼의 야구인생에 최대 위기가 왔다.

“솔직히 아픈 건 괜찮았는데 정신적으로 처지더라고요. 야구하는 게 제 유일한 낙이었는데 운동하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그래서 2군 내내 놀았어요.”

홍상삼이 ‘논’ 흔적은 성적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7경기 1승 1패 방어율 6.75. 태도마저 불량했던 그는 결국 박종훈 2군 감독으로부터 “이렇게 할 거면 집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더 이상 야구를 할 생각이 없었던 홍상삼도 미련 없이 짐을 쌌다. 발길을 돌리던 그의 발목을 붙잡은 건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제가 효도는 못 해도 지금까지 절 믿어준 부모님을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마음을 다잡고 9월 (미야자키)교육 리그부터 다시 몸 컨디션을 끌어올렸습니다.”
○동네야구 하고 싶어 시작한 야구

홍상삼이 야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계기는 간단했다. 동네 친구들이 야구게임에 자신을 껴주지 않았다는 것. 자존심이 강했던 홍상삼은 친구들을 찾아가 무작정 팀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썼고, 그렇게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중학교 때까지 홍상삼의 주포지션은 투수가 아니었다. 공도 던졌지만 간간이 홈런도 치던 괜찮은 타자였다. 홍상삼이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오른 건 고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1학년 홍상삼은 팀의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3학년 때는 미추홀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혔고, 당연한 수순으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러브콜도 받았다.

그러나 홍상삼은 한국에 남았다. 한국 유망주들이 해외로 속속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왜 한국에 남았던 걸까? 내심 멋진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역시나 예상 외였다. “초등학생 때는 메이저리그 가는 게 꿈이었는데요. 크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미국은 총이 있잖아요. 총 때문에 무서워서 안 갔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참 엉뚱한 이유로 미국행을 포기한 홍상삼은 안전(?)한 한국에서 프로팀에 안착했다. 1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전지훈련 때 기량을 증명해보였고 올 시즌 첫 선발 배지를 달았다. 그의 목표는 10승, 궁극적으로는 20승 투수가 되는 것이다.

“저희 팀이 2년 연속 2등을 했잖아요. 이번에는 제가 잘 해서 우승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맞다! 제가 어제(14일) 이겼으면 김진우 류현진 선배에 이어 신인투수 3연승 기록을 세운 거라면서요.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걸.” 홍상삼은 아쉬운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친 뒤 “다음에는 반드시 이겨야겠네요”라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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