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범호는 프로입단동기들도 이름을 몰랐던 철저한 무명이었지만 끝없는 노력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살려 해외무대 진출에 성공했다.
‘꽃범호’가 걸어온 길
이범호는 대구 수창초등학교 4학년 때 박기혁(롯데)과 함께 야구에 입문했지만 경운중과 대구고를 거치는 동안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 시절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경북고 배영수와 대구상고 장준관이 초고교급 투수로 각광받았다. 내야수도 대구상고 박기혁과 이영수가 버티고 있었다.“고향팀 삼성은 배영수를 1차 지명했어요. 저야 서운할 것도 없었죠. 당연했으니까. 그런데 한화가 2차지명 1번에 저를 뽑더라고요. 그게 더 기뻤어요.”
대구고 3학년 때 팀은 전국무대 3전패. 자신을 보여줄 기회도 없었다. 그러나 묘하게 당시 한화 정영기 스카우트(현 한화 2군 감독)가 대구고를 방문할 때마다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프로 지명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하늘이 그를 도왔다.
2000년 입단해 간판 3루수 강석천의 백업멤버로 가끔씩 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석에서는 헛스윙, 수비에서는 실책을 연발했다. 당시 한화 사장은 “방망이도 못 쳐, 수비도 못 해, 하다못해 얼굴이나 잘 생겼으면 몰라”라며 혀를 찼다. “왜 저런 놈을 2차 1번에 뽑았느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는 묵묵히 땀을 흘렸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가난과 싸웠던 그는 야구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2004년 주전 3루수로 생애 처음 3할타율(0.308)과 23홈런을 뽑아냈다. 2006년 WBC 예선에서 주전 3루수 김동주가 부상으로 나가면서 그는 국가대표 주전 3루수로 입성했다. 그리고 실수 없이 팀의 4강 진출에 힘을 보태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2004년은 야구를 알게 된 시절이고, 2006년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2006년 WBC 때 일본은 야구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죠. 그때부터 일본 진출의 꿈을 키웠어요. 한화와 팬들에게는 너무 죄송해요. 그래서 더 성공하고 싶어요.”
김태균이 황태자라면, 이범호는 잡초다. 김태균이 천재타자라면, 이범호는 노력형이다. 그는 가난에서 출발해 야구인생의 꽃을 피웠다. 이젠 부와 명성을 얻었다. 무명, 그리고 2인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장이 ‘못난이’라고 했던 그 선수가 팬들 사이에서 ‘꽃범호’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다시 ‘후쿠오카의 꽃’이 되기 위해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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