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캐디의 ‘겨울 골프 수난시대’

입력 2010-01-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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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빠지는 눈밭 속 볼 찾기 ‘쩔쩔’
카트마저 나뒹굴고…“울고 싶어라”
한동안 전국이 폭설로 난리였다. 골프장도 예외는 아니다. 폭설에 한파까지 이어지면서 골프장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서둘러 제설작업을 실시한 곳은 다시 영업을 시작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골프장이 영업은 꿈도 못 꾼다. 눈을 녹여주는 최근의 겨울비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초보캐디 A양의 첫 번째 겨울골프 이야기가 인터넷 캐디카페에서 화제다.

A양은 지난 12일 50대 중후반의 손님들과 함께 라운드에 나섰다. 캐디를 시작한 지 1년도 안된 A양은 이번이 겨울골프 첫경험이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 라운드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A양의 첫 겨울골프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 A양이 근무하는 B골프장은 골프백을 실은 카트를 직접 끌어야 하는 수동카트를 사용한다. 폭설로 코스 전체가 눈밭으로 변한 상태에서 카트를 끌고 이동해야 한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군다나 눈이 발목까지 덮은 상황에서는 컬러볼을 사용하더라도 눈에 파묻힌 공을 찾기란 베테랑도 운에 맡겨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A양의 수난은 공을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티 샷한 공이 분명 페어웨이로 떨어졌지만 가보면 공이 없었다. 다른 캐디들은 용케도 공을 찾았지만, A양의 눈에는 골프공은커녕, 비슷하게 생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손님도 슬슬 열이 받는다. 심기가 불편해지고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 내기까지 하고 있다면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A양은 뭐에 홀린 듯 공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급기야 참고 참았던 손님의 언성은 높아졌다. 골프장에서 공을 잃어버렸을 때처럼 화나는 일도 없다. 이럴 때 골퍼와 캐디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손님,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잘 보겠습니다.”

A양은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이나 손님에게 사과했다. 사건은 파3 홀에서 터졌다. 그린 방향으로 잘 날아간 공이 또 사라졌다. 겨울엔 그린이 꽁꽁 얼어 있어 공이 떨어지면 크게 튀어 오른다.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손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캐디와 골퍼가 아닌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다. 다음 홀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볼을 찾지 못한 것. 코스 밖으로 나간 것도 아니고 페어웨이에 잘 떨어졌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초보캐디 A양은 손님의 비위를 맞추랴, 눈밭에 숨은 공을 찾으랴 정신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 됐다.

결국 또 다른 사고까지 쳤다. 눈길에 중심을 잃어 카트가 나뒹굴었다. 소지품과 옷 등이 눈밭에 함께 흩어졌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

겨울골프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골퍼는 캐디가 원망스럽고, 캐디는 눈치만 살피게 된다. 초보캐디 A양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첫 겨울골프가 악몽이었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골퍼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겨울골프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잘 다듬어진 필드에서 라운드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겨울골프를 좋아하는 골퍼도 있다. 하지만 겨울골프에선 엄청난 자제력이 필요하다.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돌발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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