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수가 또다시 사면초가에 놓였다. 소속팀 알 나스르(사우디)는 팀을 무단이탈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천수를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이고, 이천수는 급여지급을 장기 연체한 구단을 이미 FIFA에 제소해놓은 상태다. 무단이탈을 둘러싼 분쟁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칫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축구를 접어야할지도 모를 이천수의 불안한 입지다.
필자는 작년 여름 이천수가 전남과 마찰을 일으키며 사우디행을 결행할 당시 칼럼을 통해 적잖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의 사우디행은 이천수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한국선수들의 중동진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취지에서였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이번엔 급여를 장기연체한 알 나스르의 잘못이 크지만 계약서 검토단계에서 꼼꼼하지 못했던 선수 측도 전혀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천수 본인보다는 계약을 검토하고 만일의 경우 대비책까지 마련해야 할 대리인 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14개 클럽 가운데 급여를 제때 지급하는 곳은 이영표가 속한 알 힐랄 정도다. 알 힐랄 역시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메인스폰서인 모바일리(Mobily)가 후원금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시즌 초반 급여지급이 연체됐을 정도이니 다른 구단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이천수가 뛰었던 알 나스르는 제다의 알 이티하드와 더불어 선수급여 미지급과 이적분쟁 등으로 FIFA에 가장 빈번하게 제소된 클럽 중 하나다.
분쟁의 가능성이 큰 만큼 선수보호를 위해 대리인은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계약서를 보진 못했지만 이천수의 경우 별다른 선수보호 장치 없이 도장을 찍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미 설기현을 통해 사우디클럽들의 문제점을 파악한 필자는 작년 여름 이영표가 알 힐랄 클럽에 입단할 당시 이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무척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난다.
급여의 절반 정도를 미리 사이닝보너스로 확보하는 것은 물론, 정해진 급여일에서 3회 이상 지급이 연체되면 바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연봉을 12개월로 분할하지 않고 시즌 종료와 더불어 연봉지급이 완료되도록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요구를 관철시키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역사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아라비아 상인들을 상대로.
하지만 어렵더라도 처음에 확실히 해두면 나중에는 훨씬 편해진다.
이번 이천수와 알 나스르의 분쟁으로 인해 중동클럽들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사우디의 몇몇 클럽들이 악명이 높다는 것이고, 불행히도 이천수가 입단한 곳이 그중 하나였다.
프로연맹이 거액의 예산까지 배분하며 클럽들의 용병수급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는 카타르나, 두바이-아부다비 등 중동의 비즈니스 허브를 보유한 아랍에미리트(UAE)는 많이 다르다고 봐도 된다. 사우디 역시 선수연봉에 관한 한 유럽을 능가하기 때문에 계약 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다만 이천수-알 나스르의 분쟁은 중동진출을 꿈꾸는 한국선수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소중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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