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스포츠동아 DB
필자는 작년 여름 이천수가 전남과 마찰을 일으키며 사우디행을 결행할 당시 칼럼을 통해 적잖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의 사우디행은 이천수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한국선수들의 중동진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취지에서였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이번엔 급여를 장기연체한 알나스르의 잘못이 크지만 계약서 검토단계에서 꼼꼼하지 못했던 선수 측도 전혀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천수 본인보다는 계약을 검토하고 만일의 경우 대비책까지 마련해야 할 대리인 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14개 클럽 가운데 급여를 제때 지급하는 곳은 이영표가 속한 알 힐랄 정도다. 알 힐랄 역시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메인스폰서인 모바일리(Mobily)가 후원금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시즌 초반 급여지급이 연체됐을 정도이니 다른 구단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이천수가 뛰었던 알 나스르는 제다의 알 이티하드와 더불어 선수급여 미지급과 이적분쟁 등으로 FIFA에 가장 빈번하게 제소된 클럽 중 하나다.
분쟁의 가능성이 큰 만큼 선수보호를 위해 대리인은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계약서를 보진 못했지만 이천수의 경우 별다른 선수보호 장치 없이 도장을 찍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미 설기현을 통해 사우디클럽들의 문제점을 파악한 필자는 작년 여름 이영표가 알 힐랄 클럽에 입단할 당시 이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무척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난다.
급여의 절반 정도를 미리 사이닝보너스로 확보하는 것은 물론, 정해진 급여일에서 3회 이상 지급이 연체되면 바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연봉을 12개월로 분할하지 않고 시즌 종료와 더불어 연봉지급이 완료되도록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요구를 관철시키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역사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아라비아 상인들을 상대로. 하지만 어렵더라도 처음에 확실히 해두면 나중에는 훨씬 편해진다.
이번 이천수와 알 나스르의 분쟁으로 인해 중동클럽들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사우디의 몇몇 클럽들이 악명이 높다는 것이고, 불행히도 이천수가 입단한 곳이 그중 하나였다.
프로연맹이 거액의 예산까지 배분하며 클럽들의 용병수급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는 카타르나, 두바이-아부다비 등 중동의 비즈니스 허브를 보유한 아랍에미리트(UAE)는 많이 다르다고 봐도 된다. 사우디 역시 선수연봉에 관한 한 유럽을 능가하기 때문에 계약 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다만 이천수-알 나스르의 분쟁은 중동진출을 꿈꾸는 한국선수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소중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쎈 사장 김동국.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