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본 ‘제2 홍명보’ 조용형

입력 2010-07-0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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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 4학년때 시작큰 영향준 은인도 4명10번 메시-포를란못잊을 공포의 킬러나의 현재 축구인생딱 전반전 끝난 상황

남아공 월드컵에서 중앙 수비수로 좋은 활약을 펼쳐 ‘제2의 홍명보’라는 평가를 받은 조용형이 남아공에서 기념품으로 가져온 부부젤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고양=홍진환 기자

지난달 26일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 경기장. 한국 축구대표팀은 16강전에서 우루과이를 만나 1-2로 아쉽게 졌다. 하지만 이날 등번호 4번을 단 태극전사의 플레이는 마치 현역 시절 ‘아시아의 리베로’ 홍명보(올림픽대표팀 감독)를 보는 듯 인상적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우루과이 공격수 디에고 포를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은 “특히 4번의 플레이가 눈에 띄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세계적인 공격수 포를란이 지목한 4번은 ‘제2의 홍명보’로 불리는 조용형(27·제주)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를 2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그의 에이전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 스페셜 넘버 4

조용형에게 숫자 4는 특별한 의미다. 그는 “원래 좋아하는 숫자였는데 프로에 온 뒤 계속 4번을 달고 뛰면서 더 애착이 간다”며 웃었다. 축구를 처음 시작한 것도 초등학교 4학년. 육상부였던 그를 눈여겨본 당시 축구부 감독의 권유로 운동화를 바꿔 신었다.

축구 선수로서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도 4명이다. 먼저 부평동중 시절 그를 지도했던 신호철 감독. 조용형은 “감독님께선 당시 혹독하다 싶을 만큼 기본기를 강조했다. 지금 나의 장점은 그때 모두 습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첫 프로 팀인 부천 SK 사령탑이었던 정해성 현 대표팀 수석코치와 부평고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이천수(오미야), 대표팀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이영표(알 힐랄) 등도 그가 꼽은 사람들이다.

○ 공포의 숫자 10

수비수들에게 10은 공포의 숫자다. 보통 팀 내 공격의 핵심이 10번을 단다. 월드컵을 거치면서 그에게도 10번은 잊지 못할 숫자가 됐다.

먼저 태극전사들에게 패배의 쓴맛을 안겨 준 아르헨티나의 10번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조용형은 “드리블이 좋고 무게중심도 낮고 빠르다는 걸 알면서도 눈뜨고 당했다. 메시만 신경 쓰다 다른 쪽 선수를 놓친 것도 안타깝다”고 했다. 또 “수비수는 보통 공격수의 첫 번째 볼 터치를 보고 수준을 가늠하는데 메시의 볼 터치는 인간의 경지를 넘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루과이의 10번 포를란도 잊지 못할 상대. 조용형은 “경기 당일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결국 도움도 기록하고 자기 역할을 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그리운 숫자 23

23명의 태극전사들은 월드컵을 치르면서 가족처럼 특별한 사이가 됐다. 조용형에게도 마찬가지. 그는 “최고의 선후배들과 월드컵이란 무대를 함께 밟았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이라며 웃었다.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오범석(울산) 차두리(셀틱) 등이 일부 누리꾼의 ‘악플’에 시달릴 땐 자기 일처럼 힘들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전 실축 한 번으로 비난을 받은 ‘절친(절친한 친구)’ 염기훈에겐 “그때 골을 넣었으면 엄청난 인터넷 댓글 대신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며 농담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나 역시 얼마 전까지 ‘자동문’이라는 등 비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 그리고 45

대표팀 캡틴 박지성은 최근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지금 축구 인생에서 후반 20분을 뛰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형은 어떨까. 잠시 생각하더니 “전반 45분 끝나고 딱 후반 시작할 무렵”이라고 말했다. “전 뒤늦게 빛을 봤어요. 전반 30분이 지나서야 제 플레이를 하게 됐죠. 후반엔 좀 더 큰 무대에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양=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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