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호기심 천국|이종욱은 강심장?] “관중이 차면 내 방망이는 미친다”

입력 2010-10-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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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경기만 나서면 펄펄
준PO 1∼4차전 10안타 4타점 활약
관중 2만명 이상일때 득점권타율 1위



약간의 긴장은 경기력 향상
흥분감 생기면 도리어 집중력 상승
마인드 컨트롤 등 해결방식이 관건

양궁대표팀은 굵직한 국제대회 직전 꼭 잠실야구장을 찾는다. 소음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위해서다. 수 만 명의 관중이 뿜어내는 열기는 평범한 선수들이 쉽게 감당해 내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한 해 농사가 판가름 나는 포스트시즌(PS)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무대체질’인 선수도 분명히 있다. 가을만 되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사실 이들은 이미 페넌트레이스부터 ‘구름 관중’위의 ‘빛’으로 가을잔치의 복선을 깐다. 대표적인 선수가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PO) 1∼4차전에서 0.555(18타수10안타) 1홈런 4타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두산 이종욱(30)이다.


○ 페넌트레이스 2만 명 이상 득점권 타율 1위 이종욱, 가을에도 강하네!

이종욱은 4일까지 PS통산타율(50타석 이상)에서 0.362(141타수 51안타)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자신의 통산타율(0.300)보다 6푼이상 높다. 1위는 한국시리즈에 선착해 있는 박정권(29·SK)으로 0.423(52타수 22안타). 2위는 이종욱의 준PO 리드오프 상대인 김주찬(29·롯데)으로 0.396(48타수 19안타). 하지만 두 선수는 이종욱보다 표본수가 적어, 안타수에서는 이종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PS활약 덕에 이종욱은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2007년 한화와의 PO에서 0.545(11타수 6안타 1홈런 3타점), 2008년 삼성과의 PO에서 0.517(29타수 15안타 3타점)로 2년 연속 PO MVP 수상. 부상으로 받은 최고급 LCD TV를 나란히 처가와 본가에 안겼다.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이종욱이 정규시즌부터 멍석만 깔리면, 두산의 효자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스포츠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이종욱은 2001시즌 이후 관중이 2만 명 이상인 경기에서 득점권타율(50타석 이상)이 가장 높은 선수다. 무려 0.439(82타수 36안타)에 이른다. 2위는 스타기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종범(40·KIA)으로 0.415(53타수 22안타). 이번 준PO에서 두산 김경문(52) 감독의 조커로 맹활약하고 있는 임재철(34·두산)이 0.400(50타수 20안타)으로 3위인 점도 이채롭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중수가 많은 경기에서의 호성적은 해결사의 조건 중 하나로 꼽힌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에 따르면, 모든 가을사나이의 대부인 ‘미스터 옥토버’레지 잭슨(64·전 양키스) 역시 관중이 많은 경기에서 방망이가 더 매서웠다고 한다. ‘타짜’기질이 명명되는 방식이 다소 다를 뿐, 이종욱은 봄·여름에도 꾸준히 가을을 위한 복선을 숨겨두었다.


○ 떨리지 않는 선수는 없다. 적절한 긴장과 긍정은 ‘가을 사나이’의 힘

이종욱은 “나도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는 무엇인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몸이 굳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했다. 방출과 신고 선수 설움을 겪었던 그로서는 당연한 결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중이 많으면 약간의 흥분감이 생겨 도리어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그의 증언은 스포츠심리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약간의 긴장은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정설. 체육과학연구원(KISS) 김용승 박사는 “불안감이 높아지면 심박수가 올라가는데, 이 때 적정수준의 상승은 신체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박태환(21·단국대)이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결선을 앞두고 커피를 통해 카페인을 섭취하고, 대기실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소위 사이키업(psyche-up)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다.

큰 경기에서 떨리지 않는 선수는 없다. 문제는 그 부담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다. 신인시절인 1999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에서 0.385(13타수 5안타)를 휘둘렀던 임재철은 “그 때부터 큰 경기에서 잘하면 나를 더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비를 할 때도 내게 공이 오기를 바랐다. 더 멋진 수비를 보여주면 되니까”라고 했다. 태국에서 열린 경기에서 ‘타일랜드’ 응원소리를 ‘대한민국’ 함성으로 들었다는 베이징올림픽 여자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임수정(24·수원시청)처럼 철저히 ‘자의적’인 해석이다. 이종욱 등 ‘승부사’들의 가슴속에는 불안요소조차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윤색해내는 ‘인지재구성’의 작동이 멈추지 않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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