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원을 키운 건 ‘레딩의 눈물’

입력 2011-06-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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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 섬 소년 지동원이 세계 최고 무대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4년 전 레딩 유학시절의 아픔을 딛고 이뤄낸 결과라 더 뜻 깊다. 지동원이 지난 7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스포츠동아DB

이적료 38억·연봉 11억 선덜랜드행…지동원 성장스토리
고1 때 청운의 꿈 품고 떠난 레딩 유학길

출전기회조차 못잡고 1년만에 눈물 귀국

K리그서 절치부심 대표팀 에이스로 우뚝

아시안컵서 4골 폭발 유럽의 눈 사로잡아
4년 전 영국 레딩. 큰 키에 앳된 얼굴의 소년이 거구의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토스트를 먹어 가며 선진축구를 배우려 애쓰던 소년이 어엿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로 성장했다.

전남 드래곤즈가 지동원(20)의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 이적을 22일(이하 한국시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3년. 구체적인 계약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적료 350만 달러(38억원), 연봉은 11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지동원은 한국인 8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이청용이 2009년 볼턴에 입단할 때(당시 21세) 세웠던 최연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기록도 새로 썼다.

지동원은 24일 0시 요르단과 2012런던올림픽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2차전을 마친 뒤 곧바로 영국으로 날아가 메디컬테스트를 받는다. 이후 귀국해 신변정리를 한 뒤 6월 말 선덜랜드 전훈지인 독일로 이동할 예정이다.

4년 전 눈물젖은 빵 먹던 레딩 유학 시절의 지동원(왼쪽 두 번째)


○추자도 촌
놈이 프리미어리거로

지동원의 고향은 제주도 최북단의 작은 섬 추자도다.

그는 도내 달리기 대표였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등 떠밀리듯 초등학교 5학년 때 도 대표로 육상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화북초 코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배구선수 출신 아버지 지중식(51) 씨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지동원은 오현중 시절 다섯 차례나 득점왕에 오를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며 광양제철고에 스카우트됐다.

고1 때는 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 5기생에 선발돼 2007년 8월부터 2008년 6월까지 레딩 유스팀에서 뛰었다. 남태희(발랑시엔)가 동기다.

선덜랜드 입단이 확정된 뒤 지동원은 가장 먼저 4년 전 레딩 유학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고생을 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지동원은 2008년 3월 스포츠동아에 영국 생활 체험기를 보낸 적이 있다. 너무 다른 음식과 언어, 문화에 고생했던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어를 못해 매일 똑같은 햄버거만 사 먹었다는 일화를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지동원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좀처럼 주어지지 않던 출전기회였다. 한국에서는 최고 유망주 대접을 받았는데 축구 종가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1년간 유학생활 후 희비가 엇갈렸다. 레딩은 남태희에게 계약을 제의하면서도 지동원을 외면했다.

결국 지동원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남태희는 계속 남아 2009년 프랑스 1부 리그 발랑시엔에 입단했다.


○4년 전 실패가 전화위복


한 번 실패가 지동원에게 약이 됐다.

지동원은 일단 K리그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야 했다. 2010년 전남에 우선지명을 받아 K리그 무대에 입성해 첫해 8골 4도움을 올렸다. 윤빛가람에 밀려 신인왕을 타지는 못했지만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우뚝 섰다.

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지동원을 주목했고 올 초 아시안컵을 통해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구자철(볼프스부르크)과 함께 한국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4골을 넣었다. 아시안컵 맹활약은 유럽 진출의 발판이 됐다. 유럽 스카우트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고 결국 꿈에 그리던 EPL 행을 이뤄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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