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아내들의 설 풍경] 독수공방!…“남편과의 설, 꿈도 못꿔요”

입력 2012-01-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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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의 아내 어효인 씨(아래)는 야구선수 아내로서는 신인이다. 전지훈련을 떠나는 남편을 위해 가방을 싸면서 목이 메인다. 비로소 “야구선수 아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스포츠동아DB.

두산 최준석의 아내 어효인 씨
신혼단꿈도 없이 전훈 짐 챙겨줘


롯데 송승준의 아내 김수희 씨
남편 빈자리 친정식구와 함께해


삼성 진갑용의 아내 손미영 씨
“결혼 14년차…남편 이해 해야죠”민족 고유의 대명절 설날이다.

온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 그러나 불과 어제까지 당연했던 일상이 이제는 사치가 돼버린 이들이 있다. 바로 야구선수의 아내들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그라운드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지도 않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받침목이 돼주는 사람. 곁에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있는 시간이 더 많아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사람. 스포츠동아는 설을 맞아 야구선수 아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12월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다 캠프로 남편을 떠나보낸 두산 최준석의 부인 어효인 씨, 이제 결혼 3년차에 접어든 롯데 송승준의 부인 김수희 씨, 결혼 14년차의 베테랑 주부 삼성 진갑용의 부인 손미영 씨가 말하는 설날의 풍경이다.○두산 최준석의 아내 어효인 씨

‘새내기 신부’ 어 씨는 “지금 짐을 싸고 있다”고 했다. 19일 미국 애리조나로 전지훈련을 떠난 남편을 위해 처음으로 싸는 가방. 겉으로는 최대한 덤덤한 척 하고 있지만 옷가지를 정리해 담을 때마다 아쉬움에 자꾸 목이 멨다. 연애를 할 때도 시즌중이라 경기 후 잠깐 만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게 데이트의 전부였던 두 사람이다. 그나마 시즌이 끝난 후 4개월을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늘 붙어있다 떨어지려니 애틋한 마음이 더 하다.

어 씨는 “이불 정리를 하다가 며칠 뒤에 혼자라는 생각이 드니까 실감이 나더라”며 “야구선수 아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고 애써 웃어보였다.

그래도 올해 설은 두 사람에게 뜻 깊었다. 최준석은 팀이 19일 스프링캠프를 떠나게 되면서 몇 년 만에 아버지의 차례를 지낼 수 있었다. 1월초가 아버지의 기일이었지만 늘 전지훈련 때문에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어여쁜 아내와 함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시즌 담금질을 시작했다.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어 씨도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비록 명절 때 함께 손을 잡고 친정에 갈 순 없지만 평소에 장인, 장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구는 만점 사위다. 그녀는 “오빠가 어려서부터 가족의 정을 못 느끼고 자란 때문인지 친정부모님에게 정말 잘 한다”며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한 면이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 야구선수와 사귄다고 했을 때 결사반대했던 아버지도 오빠를 보자마자 한 번에 결혼을 허락할 정도로 믿음을 주시고 있다”고 귀띔했다. 새해 소망도 오직 남편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아프지 말고 지난 시즌 부진했던 것을 모두 만회하는 것”이다.


○롯데 송승준의 아내 김수희 씨

송승준의 아내 김수희 씨는 야구선수 아내 3년차다. 연고지인 부산에 사는 까닭에 지난 2년간 서울의 친정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상이 당연하게 돼버렸다”며 담담하다. 스포츠동아DB.


김 씨는 야구선수 아내로 산 지 어느덧 3년째다. 그간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내조의 여왕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혼자 감내해야 할 고충은 컸다.

그녀는 2년간 명절 때 친정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혼 직후 곧바로 임신을 했고 남편이 롯데선수인 까닭에 늘 연고지인 부산에 머물렀다. 다행히 시댁이 부산에 위치해 자주 찾아뵐 수 있었지만 친정은 서울에 있어 좀처럼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단 명절뿐 아니다. 부모님 생신, 집안행사에 얼굴을 내비치는 게 참 힘들어졌다. 얄궂게도 시부모 생일은 스토브리그인 12월이지만 친정엄마, 아빠 생일은 시즌 도중이다. 때마다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고 멀리서나마 축하인사를 건네지만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편도 미안한 마음에 틈만 나면 아내와 장인·장모를 챙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김 씨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제는 그런 일상이 당연하게 돼버렸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한 발 물러서 남편을 배려하려는 아내의 마음이다.

장모도 사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 씨는 “엄마가 원래부터 스포츠광이었는데 사위가 야구선수라고 하니 좋아하던 축구를 잠시 접어두고 야구 공부를 시작하셨다”며 “이제는 웬만한 야구인들보다 야구를 더 잘 알고 남편과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남편이 ‘장모님이 KBO 총재를 하셔야겠다’고 장난으로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비록 몸은 떨어져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하모니인 셈이다.

물론 이번 설에도 남편은 없다. 송승준은 2012시즌 담금질을 위해 일찌감치 사이판으로 떠났다. 하지만 2년 만에 처음으로 김 씨의 부모님이 비행기를 타고 부산을 방문한다. 생후 6개월부터 공을 잡기 시작해 지금은 제법 던진다는 손자 현서(2)가 아빠의 빈 자리를 대신할 예정이다.


○삼성 진갑용의 아내 손미영 씨

삼성뿐 아니라 이제는 9개 구단 고참 포수가 된 진갑용. 그런 남편의 옆을 지키는 손 씨도 결혼 14년차에 접어든 베테랑 와이프다. 그녀는 ‘새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우리는 일반 사람들과 삶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참 고달프고 힘들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야구선수의 아내로 살면서 느꼈던 진심이었다.

결혼 초기에는 부모님의 생일, 명절 등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섭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손 씨는 “연차가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반 가정들이 이루고 사는 것, 가족을 이루고 가정에 충실하거나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해주는 부분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며 “노하우는 없다. 무조건 남편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덕분에 얻는 프리미엄도 있다. 시댁과 친정식구 모두 손 씨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현재 대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그녀를 위해 명절 등 집안행사에 면제권도 받고 있다. 실제 이번 설에 손 씨는 남편이 있는 괌으로 떠난다. 좀처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만큼 애들이 개학하기 전, 새해를 가족끼리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결혼한 뒤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새해소망이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죠. 남편이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저도 그라운드 위에서 남편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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