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용대의 선택은 해외가 아닌 국내무대

입력 2016-10-07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태극마크를 잠시 내려놓기로 결정한 이용대. 그러나 그는 해외진출 대신 한국에 남아 배드민턴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 뛰기로 결심했다. 경기도 수원 삼성전기체육관에서 셔틀콕과 라켓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용대. 수원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태극마크를 잠시 내려놓기로 결정한 이용대. 그러나 그는 해외진출 대신 한국에 남아 배드민턴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 뛰기로 결심했다. 경기도 수원 삼성전기체육관에서 셔틀콕과 라켓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용대. 수원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드민턴 스타 이용대(28)는 태극마크를 내려놓고 텅 빈 경기장으로 가기로 했다. 은퇴나 해외진출이 아니었다. 당장 말레이시아나 중국리그에 가면 한 달만에 국내에서 받는 연봉을 벌 수 있다. 그 곳에는 수만 명의 관중도 있다. 뜨거운 박수와 함성, 화려한 조명이 코트에 쏟아진다. 그러나 이용대는 쓸쓸한 느낌마저 드는 고국, 대한민국의 배드민턴경기장을 자신의 무대로 선택했다. 대한민국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도 유료 관중은 수백 명에 그치는 그 곳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배드민턴은 직접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종목이다. 당분간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에 모두 참가할 생각이다. 우연히 경기장을 찾은 관중이 배드민턴의 매력을 느껴 다시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다.”

기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중국 우한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를 두 차례 취재한 적이 있다. 대회기간 내내 경기장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을 방불케 했다. 수백 명의 암표상, 이를 쫓는 경찰과 공안, 극심한 교통체증, 이런 가운데 경기장 안은 바로 옆 사람과 대화가 힘들 정도로 함성이 대단했다. 이용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스타 중 한명이었다.

국내에서도 이용대는 아마추어종목 운동선수 중 손꼽히는 인기 스타다. 그러나 모처럼 귀국해 참가하는 국내 대회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취재진은 한두 명, 관중은 수백 명. 그나마 이용대가 나오지 않는 경기는 수십 명.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 플레이이와 헤어핀, 그리고 호쾌한 스매싱은 똑 같았지만 박수소리는 몇 명이 쳤는지 금세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체육관이 민망하게 짝짝 들렸다. 이용대는 그 누구보다 비인기 종목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막대한 부와 인기가 보장된 해외리그가 아닌 한국을 택했다.

수원 삼성전기체육관에서 마주한 이용대의 표정은 굉장히 밝았다. 사전에 사진 촬영도 하자고 알렸더니 국가대표 유니폼, 소속팀 유니폼,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새 브랜드 ‘YD’가 적힌 운동복까지 세 벌을 준비해 놨다. “사진 기자분이 어떤 유니폼을 좋아하실지 몰라서”라며 웃었다.


-국가대표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이제 해외무대로 영영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팬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조금 과장되어 알려진 것 같다. 당혹스러웠다. 해외리그 활동은 사실 몇 해 전부터 국제대회와 국내대회가 없을 때 하고 있었다. 특별 선수 개념으로 초청돼 단기전을 뛴다. 중국리그는 주말에 열리는데 1박2일로 다녀올 수 있는 스케줄이다. 이제 해외에서 뛸 기회가 더 많겠지만 더 많은 경기를 해야 할 곳은 우리나라다.”


-소속팀(삼성전기)에서 국내 대회에 주력하겠다는 뜻인가?

“맞다. 입사 10년차인데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가 많지 않다.(웃음) 10년을 넘게 국제대회 투어를 했다. 한국보다 해외에 머문 시간이 더 많았다. 한 해 두 세 차례 국내 대회에 뛸 기회가 있었는데 부모님을 만날 시간이 그 때 뿐이었다. 바쁜 일정, 성적에 대한 부담감은 서서히 배드민턴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게 한 것 같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재미있는 배드민턴을 하자고 다짐했다.”


-잘 알겠지만 국내 배드민턴 경기장은 쓸쓸할 때가 많다. ‘이용대 선수’가 뛴다면 흥행에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관중들의 함성이 그립지 않을까?

“국제대회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은 측면도 있겠지만 성남에서 막 끝난 코리아오픈은 평일에도 관중들이 많이 오셨다. 찾기 쉬운 시간과 장소, 쾌적한 시설, 그리고 수준 높은 경기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배드민턴이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홍보와 마케팅, 경기 시간 등 많은 부분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친구를 따라서 아니면 지나가다 우연히 들르는 한분, 한분을 배드민턴 팬으로 만들고 싶다. 코리아오픈 때 작은 부상이 있었는데 7일부터 열리는 전국대회에도 참가한다.”


-국가대표로 올림픽 금메달과 동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년 넘게 세계랭킹 1위도 지켰다. 대표팀을 잠시 떠나기로 한 이유가 국내활동이라는 점이 놀랍다.

“남자복식으로 금메달을 못 딴 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단 그동안의 노력에는 후회가 없다. 최선을 다했다. 운동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땀 흘릴 때 느낌이 좋다. 배드민턴은 치면 칠수록 재미있다. 그러나 일년 내내 랭킹 포인트를 관리하고 무조건 성적을, 그것도 1등을 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재미를 점점 잊어버리게 된 것 같다.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며 최선을 다하겠다. 관중들에게도 그 재미와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다. 배드민턴은 직접 보면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다.”

이용대. 수원|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이용대. 수원|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스스로 대표팀을 잠시 떠났지만 아시안게임, 올림픽이 다가올 때마다 분명 이용대라는 이름이 다시 나올 것 같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대표팀에서 제가 필요하고 기회가 된다면 후배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이후 배드민턴은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리우올림픽은 대부분 베테랑들이었다. 중국도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선수층이 굉장히 탄탄하다. 중국을 꺾을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현역 선수로는 언제까지 활동할 생각인가. 그리고 그 이후의 계획은? 지도자를 해도 굉장히 잘 할 것 같다.

“이현일(36·MG새마을금고)선배는 여전히 최정상급 단식 선수다. 이현일 선배처럼 몸 관리를 잘 하고 열심히 운동한다면 복식 선수이기 때문에 30대 후반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바람이 있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사실 직접 뛰는 게 더 즐겁다. 배드민턴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몸이 버텨준다면 마흔 살까지 현역이고 싶다.”


-이용대 앞에는 박주봉(일본대표팀감독), 하태권(요넥스감독), 김동문(원광대교수) 등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다. 이용대가 역대 최고의 선수는 아닐지라도 역대 배드민턴 선수 중 최고의 스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운이 좋았고, 좋은 시기에 선수생활을 한 것 같다.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 특히 제 이름을 건 학생대회(이용대 올림픽제패기념 전국학교대항 선수권대회)도 있다. 과분한 사랑을 어떻게 보답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그동안은 해외로 왔다갔다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실천을 못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 라켓 구입 등 힘든 점이 많았다. 김동문 교수님이 선수시절에 학생이던 제게 라켓을 선물해줬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배드민턴은 라켓, 셔틀콕, 운동화 등 소모품이 많다. 최대한 많은 꿈나무들이 라켓값 걱정 안하고 운동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국내대회에 주력하면서 해외활동도 함께 한다. 말레이시사와 중국리그는 어떤가.

“12월과 1월에 해외 리그에 참가할 것 같다. 사실 굉장히 대우가 좋다. 관중들의 뜨거운 반응도 느낄 수 있다. 그 환경과 시장이 솔직히 많이 부럽다. 굉장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국가대표팀을 떠나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었다. 그러나 이제 국내 배드민턴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이용대 선수의 플레이를 볼 수 있게 됐다. 배드민턴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다. 항상 먼 나라에 떨어져있는 아들이 혹여 부상이라도 당할까 노심초사하며 응원했던 부모님도 이제 좀 더 편안한 마음이실 것 같다.

“사실 이곳도(삼성전기체육관) 입사 10년차인데 머문 시간이 300일도 안 되는 것 같다. 올림픽 끝나고 줄곧 팀에서 훈련하고 있는데 가장 오랜 시간 머문 것 같다. 너무나 편안하다.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관중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하겠다. 10년 동안 비행기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서 마일리지가 굉장히 많이 쌓였다. 빨리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다. 편안한 비행되실 수 있도록 마일리지 다 쓸 계획이다.”

작별하며 악수를 나눈 그의 손바닥은 굳은살로 딱딱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총총걸음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문뜩 명쾌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느껴졌다. 20대 청년은 환한 빛을 쫓아 떠나지 않았다. 쓸쓸한 배드민턴경기장에 직접 즐거움을 가득 담기 위해 더 힘든 길을 택했다.


● 이용대


▲생년월일=1988년9월11일

▲키·몸무게=180㎝·74㎏

▲출신교=화순초~화순중~화순실업고~경기대

▲소속=삼성전기

▲주요경력=2006도하아시안게임 남자복식 동, 단체전 은·2008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 금·2009세계개인선수권 남자복식 은·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복식 동, 단체전 은·2012전영오픈 남자복식 금·2012런던올림픽 남자복식 동·2014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금, 남자복식 은

수원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