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어찌 선동열만 있겠는가! KBO리그 패전투수의 역사

입력 2017-09-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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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경기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t 위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kt가 넥센에 5-4로 승리한 뒤 승리투수 로치가 김진욱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수원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6일 경기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t 위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kt가 넥센에 5-4로 승리한 뒤 승리투수 로치가 김진욱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수원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고 한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승자에게 쏟아지고, 승자가 전리품을 독식한다. 그러나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승자의 환호 뒤에는 필연적으로 패자의 눈물이 있다.

kt 외국인투수 돈 로치(28)는 오히려 그 패배의 눈물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출발은 좋았다. 시즌 개막전인 3월 31일 인천 SK전에서 승리했고, 4번째 경기인 4월 19일 수원 KIA전에서 승리하면서 2연승 무패로 상쾌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로치는 이후 잔혹한 연패의 터널에 갇히고 말았다. 4월 25일 마산 NC전부터 8월 31일 대전 한화전까지 19경기에서 승리 없이 14연패. 잘 던져도 패했고, 못 던져도 패했다. 불운 때문에 패한 경기도 있었고, 자제력을 잃는 바람에 무너지기도 했다. 그리고는 20번째 경기 만인 6일 수원 넥센전에서 마침내 연패에서 탈출했다. 시즌 2승째에서 3승째로 가기까지 무려 140일이 걸렸다. KBO리그 역대 최다 연패 기록인 18연패까지는 가지 않고 멈췄지만, 역대 외국인투수 최다연패 기록(2010년 한화 호세 카페얀 11연패)을 넘어 신기록을 썼다. 연패를 끊은 이날 경기 후 로치는 “야구인생에서 이런 연패는 처음이다”며 “오랫동안 승리를 못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KBO리그도 역사가 깊어지면서 패배의 이야기도 알게 모르게 겹겹이 쌓여가고 있다. 1982년부터 2017년까지…. 로치의 연패 탈출을 계기로 KBO리그 패전투수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선동열 박철순의 이름만으로 야구사를 쓸 순 없다

KBO리그 역사에서 선동열은 승자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럴 만도 하다. KBO리그 개인통산 146승(132세이브 별도)을 올리며 은퇴를 했는데, 그 사이 패전은 단 40차례에 불과했다. 승률이 무려 0.785나 된다. 거의 ‘십중팔구 이기는 투수’였다는 의미다. 상대팀으로선 ‘십중팔구 질 수밖에 없는 투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 그는 ‘44연속경기 무패’를 달리면서 이 부문 KBO리그 최고 기록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에 어찌 선동열만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 이면에 패전의 눈물을 흘린 이들이 수두록하다. 특히 연패로 역사에 이름을 올린 투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롯데 김종석은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년에 걸쳐 18연패를 당해 역대 최다연패 기록을 찍었다. 이후 심수창이 LG와 넥센을 거치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에 걸쳐 타이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팬들은 심수창의 승리를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2011년 8월 9일 롯데전에서 마침내 승리를 기록하며 지독한 연패의 사슬을 끊어냈을 때 심수창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고, 그 눈물을 본 팬들의 가슴도 뜨거워졌다. 패전은 이처럼 때론 감동을 잉태하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박철순의 22연승 신화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넥센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넥센이 3-1로 승리를 거뒀다. 경기종료 후 7과 1/3이닝동안 1실점으로 호투하며 18연패 끝에 승리를 거둔 심수창이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넥센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넥센이 3-1로 승리를 거뒀다. 경기종료 후 7과 1/3이닝동안 1실점으로 호투하며 18연패 끝에 승리를 거둔 심수창이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송진우의 최다승 환호 뒤엔 최다패 눈물이 숨어 있다

승리투수를 논할 때 송진우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개인통산 200승을 넘어 210승을 올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많은 패전을 기록했는지에 대해 아는 이는 드물다. 송진우는 통산 153패로 이 부문에서도 1위에 올라 있다. 그가 210번 이길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153번의 눈물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비단 송진우만이 아니다. KBO리그 개인통산 최다패 리스트를 보면 모두 한 시절을 풍미한 최고투수들이 포진해 있다. 144패로 역대 최다패 2위인 김원형은 134승으로 최다승 5위에 이름을 올려놓았고, 161승으로 역대 최다승 2위에 올라 있는 정민철 역시 128패로 최다패 부문 4위에 자리 잡고 있다. 통산 100승을 올리면서 100패를 동시를 달성한 인물은 총 11명이나 된다.

선수 시절 송진우.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선수 시절 송진우.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장명부, 시즌 30승 신화와 시즌 25패의 악몽

고(故) 장명부는 1983년 삼미에 입단하자마자 30승을 달성하는 신화를 썼다. 당시 팀당 100경기를 치르던 시절. 30승뿐만 아니라 그해 60경기에 등판해 427.1이닝을 던지고 36경기를 완투한 것 역시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전설이다. 그러나 30승을 거둔 그해에 장명부가 최다승뿐 아니라 16패로 최다패 투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장명부는 KBO리그 첫해의 혹사 탓인지, 이듬해부터 승리보다 패전이 더 많은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1984년에 13승20패(물론 이해에도 45경기에 등판해 15완투를 기록하긴 했지만)로 주저앉더니, 삼미가 청보로 넘어간 1985년엔 30승만큼이나 깨지기 어려운 한 시즌 25패(11승)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역대 시즌 20패 이상은 장명부만 2차례 작성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장명부는 1986년 창단팀 빙그레로 이적해 역대 최다패 공동 5위인 18패(1승)를 당한 뒤 유니폼을 벗었다.

원년인 1982년 삼미 김재현과 롯데 노상수의 19패가 그 사이 역대 3위에 있다. 이후 2002년 롯데 김영수와 2007년 KIA 윤석민은 팀의 암흑기 속에서 18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21세기 한 시즌 최다패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이전에 장호연은 OB 입단 첫해인 1983년에, 이상군은 빙그레 창단 첫해인 1986년에 불운까지 겹치며 17패를 당한 아픔을 자양분 삼아 훗날 100승 투수로 발돋움했다.

선수 시절 故 장명부-KIA 윤석민(오른쪽). 사진|동아일보DB·스포츠동아DB

선수 시절 故 장명부-KIA 윤석민(오른쪽). 사진|동아일보DB·스포츠동아DB



● 역사상 936명의 자랑스러운 패전투수들

야구는 오묘하다. 때론 공 1개로 승리투수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공 1개로 패전투수가 되기도 한다. KBO리그 역사에서 공 1개로 승리투수가 된 것은 1990년 롯데 김청수(7월 26일 마산 빙그레전)가 최초였다. 그리고 올 시즌 두산 이현호(4월 29일 잠실 롯데전)와 LG 정찬헌(7월27일 잠실 넥센전)까지 역대 18명의 투수는 단 1개의 공으로 승리투수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

반면 공 1개로 패전을 기록한 것은 올해 KIA 박지훈(5월 14일 인천 SK전)과 LG 진해수(8월 5일 잠실 두산전)까지 총 15차례 발생했다. 그 중 류택현과 강영식은 생애 2차례나 1구 패전투수의 멍에를 쓰기도 했다. 류택현은 1구 승리투수와 1구 패전투수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1982년 이후 KBO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1군에 등판한 투수는 9월 6일 현재 총 1222명. 그 중 1승이라도 올린 투수는 840명이고, 1패라도 당한 투수는 936명으로 집계됐다.

승리는 달콤하다. 패배는 쓰라리다. 그러나 쓰디쓴 1패일지라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이 역시 개인의 역사이자 추억이 된다. 패전 역시 값진 훈장이다. KBO리그 역사에서 1군에 등판한 1222명의 투수 중 134명은 1승 또는 1패조차 얻지 못하고 이름 없이 유니폼을 벗었으니까.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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