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피플] ‘대표팀 마당쇠’ 장현수 “내 월드컵 키워드는 겸손 & 당당”

입력 2018-01-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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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수는 한국축구의 대표 마당쇠다.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가장 많은 A매치 출전시간을 기록하며 빗장을 굳게 잠갔다. 그의 시선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018러시아월드컵을 향하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중국서 난 남 주기도 돈 주기도 아까운 존재로
경기 뛰는 모습 바라는 어머니 권유로 도쿄행
탁 트인 잔디, 정상적으로 뛴다는 사실에 행복

A매치 비난? 내가 생각해도 만족 못할 때도
스스로를 이겨라…최문식 코치 말씀 되새겨


“미치도록 축구가 고팠다. 다시 뛰면서 길도 찾았고, 날 되찾았다.”

태극전사 장현수(27·FC도쿄)가 되돌아본 2017년이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소속 팀과 무대를 중국 슈퍼리그에서 일본 J리그로 옮겼다.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여정에선 대단한 롤러코스터도 탔다. 이 와중에 숱하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팀이 원하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좌우 풀백과 중앙수비, 수비형 미드필더, 포어-리베로까지 5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그를 향한 평가와 시선은 다양하지만 벤치에서의 신뢰도는 상당히 높다. 지난해 가장 많은 A매치 출전시간(1123분)을 기록했다. 13경기 중 12경기를 풀타임 소화했다. 2016년에도 가장 긴 출전시간(790분)을 찍었다. 전임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에 이어 신태용(48) 감독 체제에서도 입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힘들었다. 고통이 엄청났다. 특히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의 삶을 경험하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최근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현수는 “중국(광저우 푸리)에서의 난 나태했다. 사력을 다해 뛰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는 느낌을 다시 받고 싶었다. 뭘 해도 활력이 없었다. (2017년 7월) 도쿄 이적은 내 생애 가장 좋은 선택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돈이 보장하지 않는 가치를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기록 습관을 들인 휴대폰 메모장의 한 페이지.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아픈 어제를 당당히 이겨낸 장현수는 이제 행복한 오늘, 아름다운 내일을 바라본다. 특히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생애 첫 월드컵은 한 계단 도약할 도전의 무대다. 뛰고 있음에 감사하고, 짜릿한 승리의 쾌감과 뼈저린 패배의 아픔을 느낌에 감사하며 그는 초록 그라운드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하며 희망의 땀을 흘리고 있다.

축구대표팀 장현수.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 아팠던 어제

-2017년을 어떻게 기억하나?


“광저우에서 계속 출전시간이 줄었다.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다. 몸 관리를 하는 것과 실전 투입은 다른 문제다.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문득 어머니가 ‘경기를 뛰고 힘겨워 누운 아들이 그립다’고 하시더라. 도쿄 복귀도 말씀하셨다. 일본으로 가면 중국에서보다 누릴 수 것들은 줄겠지만 스스로 가치를 높이자는 권유였다.”


-지난해 여름 도쿄로 복귀했다.

“2012년 갓 입단했을 때는 너무 어렸다. 철저히 도전자였다. 상대를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덤볐다면 지금은 주변을 파악할 줄 안다. 냉정해졌고, 침착해졌다. 상황 대처도 빨라졌다.”


-광저우가 쉽게 신분을 풀어주지 않았는데.

“돈을 위해서라면 중국에 남아야 했다. 그런데 그럴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 없다. 구단과도 많이 싸웠다. 점점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고, 간헐적으로 찾아온 출전 기회조차 사라졌다. 당시 난 ‘남 주기도, 돈 주기도 아까운’ 존재였다. (스토이코비치) 감독을 찾아가 ‘제발 나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자존심이건 뭐건 다 내려놓았다.”


-일본에서는 행복을 찾았나.

“당연하다. 지금은 축구선수가 아닌가. 언젠가부터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장 힘겨웠던 그 때를 잊지 말자는 의미다. 또 그라운드를 향해 목례하는 습관도 얻었다. 탁 트인 잔디에 들어서는 건 내가 정상적으로 뛴다는 얘기니까. 그냥 모든 것이 행복하다.”

축구대표팀 장현수. 스포츠동아DB



● 태극마크

-A매치에 나설 때마다 많은 비난을 받곤 했다. 서운함은 없나.


“왜 아무렇지 않았겠나. 나도 감정이 있는데. 다만 건설적인 비판과 응원을 동시에 해주시길 바란다. 내가 (손)흥민이처럼 멋진 플레이를 하는 것도, (기)성용이 형처럼 듬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온 힘을 다 쏟는다. 나와 동료들 모두 똑같은 마음과 자세로 뛰고 있다.”


-대표팀이 언급될 때마다 수비불안이 등장한다. 또 리더의 부재도 거론된다.

“외부에서 보기에 부족하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본다. 다만 주장 완장을 찬 이만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리더가 돼야 한다. 12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동료들과 미팅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상대를 이기기보다 자신을 극복하고 상대를 넘자’고. 2014인천아시안게임 당시 8강 한일전 하프타임 때 최문식 코치님이 해주신 말이다. ‘스스로를 이기고, 남을 이기라’고. 너무 강렬했다. 날 컨트롤해야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법이다.”


-전형적인 멀티 자원이다. 플레이 기복도 있었다.

“솔직히 여기저기 뛰는 상황이 쉽지 않다. 전혀 다른 위치와 역할이다. 한편으로는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것은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무수히 많은 악평이 나왔다. 만약 상처를 많이 받는 성향이라면 크게 무너졌을 수도 있다. 다행히 잘 담아두지 않는 성격이다. 꽤 좋은 장점이라고 본다.”

축구대표팀 장현수. 스포츠동아DB



● 월드컵

-어지간한 연령별 무대는 다 거쳤고, 이제 월드컵만 남았다.


“며칠 전에도 부모님이 같은 말씀을 하셨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영광이자 대단한 위업이다. 그것도 경기까지 뛴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자주 한다. 외부에서 날 인정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내 자신이 먼저 뿌듯해지지 않겠나. 대단히 뿌듯할 것 같다.”


-월드컵을 위해 어떤 부분을 채우고 있는지.

“지금은 푹 쉬고 있다. 축구 생각도 최소화하려 한다. 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소속팀 소집이 12일이다.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매진하려 한다. 동계 훈련은 굉장히 중요하다. 부상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밟고, 꾸준히 실전에 나서면 몸이 많이 올라올 거다. 큰 대회를 앞두고 찾아온 부상이 얼마나 힘든지 2012런던올림픽 직전 경험했다. 뭐든 건강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어떨까.

“이미지 트레이닝을 정말 많이 한다. 아마 쉽지 않은 과정의 연속일 거다. 대표팀 훈련캠프에서의 하루하루, 그리고 매 순간이 또 다른 전쟁일 수도 있다. 물론 본선에서는 더욱 무시무시한 경쟁이 발생할 거다. 나와 동료들의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순간이다. 도전자로서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준비하고 당당히 부딪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아직 경험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중압감이 클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감은 잃지 않으려 한다. 처음의 설렘, 월드컵 첫 경험이 너무 기다려진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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